민주당 광주시당 ‘역사 왜곡 반대’ 현수막 부착 유감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광주 서구 풍암동에 게시한 홍보물 사진. '역사왜곡 반대! 전라도천년사 바로쓰기'라고 쓰여 있다. ⓒ박용준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광주 서구 풍암동에 게시한 홍보물 사진. '역사왜곡 반대! 전라도천년사 바로쓰기'라고 쓰여 있다. ⓒ박용준

역사학계는 '정의의 사도'들의 모임이 아니다.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학문 집단이다. 우리가 역사학자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그들의 학문적 능력과 양심이지, '우리가 바라는 역사'를 써 주는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설가'나 '역사 대중서 작가’이다. 아니면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 세력들이거나. 그 때문일까, 어떤 이들은 자기가 바라는 역사를 역사학계에서 써 주지 않는다고 몹시 화를 낸다. 그리고는 실제 역사를 탐구하는 대신 '소설'과 '역사 대중서'에 열광한다.

 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전라도 천년사』 논란’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라고 불리는 지역에 대한 방대한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선사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지역의 총체적인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주로 시·군 단위에서 전개되어 온 향토사 편찬 사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광주·전남·전북 3개 시·도를 아우르는 대규모 편찬사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반면 연구 용역이 지역의 학맥에 편중되었고, 서술 방향이 전라도의 위상과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에 치우쳤으며, 지역 정치인들이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 등에서도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엄정한 비판 기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학술적인 비판에 앞서 일부 ‘역사 대중서 작가’와 그를 추종하는 자칭 지역사회 ‘원로’들이 『전라도 천년사』의 내용을 식민사관이라 날조하고는, 편찬위원들을 넘어 역사학계 전체에 대해 ‘친일’ 몰이를 조장하여 난장판이 되어 버린 탓이다.

 역사학계에 ‘친일’ 몰이를 하는 이들은 ‘역사학자’라 불릴 만한 전문성이나 엄밀함, 즉 역사 연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 및 영향력을 이용해 스스로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들의 ‘권위’ 앞에서 지역의 학계와 교육계는 아직 침묵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분서갱유’ 학문 탄압 마음먹었나

 물론 역사학자 중에는 지자체나 정권 등 권력을 추종하는 ‘어용 학자’들도 일부나마 존재한다. 그렇지만 역사학계 전반이 식민사관을 계승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선동이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타율성론·정체성론·당파성론·반도적 성격론은 물론, 임나일본부설 등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일제 및 권위주의 정권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쓰여진 역사교과서는 일본 등 주변국으로부터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했을 때 우리 역사학계는 오히려 민족주의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일전의 칼럼에서 식민사관 극복 및 과거사 문제 규명에 주력해 온 역사학계가, 그들이 학문적 근거를 제공해 준 지역 사회 일각으로부터 오히려 ‘식민사관의 하수인’이란 비난을 받게 된 상황을, ‘배신당한 역사학’이라 명명하였다(참조:<배신당한 역사학>).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광주 북구 일곡동에 게시한 홍보물 사진. '역사왜곡 반대! 전라도천년사 바로쓰기'라고 쓰여 있다. ⓒ박용준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광주 북구 일곡동에 게시한 홍보물 사진. '역사왜곡 반대! 전라도천년사 바로쓰기'라고 쓰여 있다. ⓒ박용준

 그런데 역사학계가 또 한번의 배신을 당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이하 광주시당)이 ‘역사왜곡 반대! 『전라도 천년사』 바로쓰기’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불씨로 역사학계 전반에 대한 근거 없는 ‘친일’ 몰이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역사학계에 대한 ‘친일’ 몰이에 나선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올해 5월 3일 전라도 지역 국회의원 6명이 ‘광주·전남·전북 국회의원 일동’을 자칭하며 기자회견을 열어 ‘『전라도 천년사』 절대 반대’를 주장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광주시당이 같은 내용을 지역 당론으로 공식화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때마침 일부 시민단체가 8월 7일 ‘『전라도 천년사』 폐기 촉구 항의 집회’를 주최한다고 한다.

 광주시당은 어쩌다 ‘『전라도 천년사』 폐기’를 주장하며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을까? 과연 광주시당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역사왜곡 반대’가 전부일까? 더불어민주당 및 광주시당을 둘러싼 정치역학을 함께 살펴 보자.

 더불어민주당은 지역 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전라도 천년사』 폐기’를 요구하는 지역 사회의 소위 ‘원로’들의 인적 구성 역시 해당 정당의 일원 혹은 지지자와 상당 부분 중첩된다.

 또한, 해당 정당은 일본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경도된 정부·여당을 비판해 왔다. 그 때마다 진영을 친일·매국 세력으로 비난하는 한편 ‘역사 정의’를 외치며 ‘민족주의 감성’에 호소하여 차별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런 구도 속에서 광주시당이 『전라도 천년사』는 역사왜곡이라 주장하고, 더 나아가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면, 광주시당이 지역 내 지지자들을 규합할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이 추구해 온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얻으리라 계산한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왜곡 반대”에 담긴 민주당 정치적 함의

 지역에서 입지를 유지 및 강화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5·18 왜곡 처벌을 외치며 입법까지 하는 등, 역사왜곡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던 정당이었다. 그러한 정당이 고작 가짜뉴스나 퍼뜨리는 세력에 현혹되고, 그에 동조까지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정당이 공당으로서 견실함 및 신뢰성을 지니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전라도 천년사』 폐기’ 운운하며 역사학계에 대한 전면 부정에 나서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에 대한 정치 권력의 개입으로 여겨진다. 정치 권력이 입맛대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에 반대하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웠음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와 같은 내용을 지역 당론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역사의 학문적 객관성을 지키자며 추진했던 관련 정책 및 활동의 정당성마저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제 역사학은 정당에게도 배신당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이 5·18 관련 각종 논쟁,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등 역사 관련 사안을 마주하여 원내·외에서 당론을 전개하는 데에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하여 수혜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를 전면 부정하는 이들의 주장에 편승하려는 행위는, 역사학계에 대한 부정을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자기 부정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합리적인 학문이 아닌 비합리적인 망상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는 역사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역사교육계는 역사학계와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며, 일부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에 맞서 더불어민주당과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역사학의 탄압자를 자처하기로 했고, 양심 있는 역사교사들에게도 등을 돌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결정과 이후 발생하게 될 모든 사태에 대하여, 정당으로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박용준(역사교사·자유역사교육자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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