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화들짝 놀라 내딛던 오른발을 가까스로 비켜낸다.
땅에 드러누운 가냘픈 육신이 눈에 밟혔음이니, 내 무게 중심을 이동케 한 ‘뉴런(신경세포)’에 감사하다.
망사처럼 투명하고, 유려하고, 길쭉하니 날렵한 두 날개 딱 달라붙어 정갈하다.
오물오물 여섯 다리 ㄱ자로 모아 몸통에 붙었으니, 마치 염을 한 망자처럼 처연하다.
한여름 그들에겐 천국이었을 땡볕 속, 자유롭게 날던 세상과 어찌 작별했을까.
백제가 무너지듯 한순간에 낙화하는 동백을 닮고 싶었음인가.(김훈 자전거여행)
날다가 그대로 고꾸라졌으리. 운명처럼….
마지막 비행이었구나.
어느새 그런 계절이구나.
7년여 유충으로 1~2달 성충으로
날개 펴고 자유롭게 하늘을 누볐을 희열이 너무도 짧았음을 애달파한다.
땅속에서 유충으로 7년여를 보낸다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 마침내 펼친 화려한 자태인데.
약속된 영화가 1~2달뿐이라니 기막히다. 가혹한 운명을 스스로는 알고 있었던 건지.
<7년 땅속 벌레의 전생을 견디어 / 단 한 번 사랑을 죽음으로 치러야 하는 / 저 혼인비행이 / 처절해서 황홀하다…>(복효근 시 ‘매미’ 중)
문 닫은 베란다로도, 소음 큰 자동차로도 덮이지 못하도록 목청껏 갈구한 건 삶이었을까, 죽음이었을까.
‘시끄럽다’ 귀 막았던 호들갑 인생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사상 유례없는 폭염이라 하루빨리 이 여름 끝나기만 기원했음을 탓한다.
여러해살이 삶들의 이기심이었을 뿐이니 부끄럽다.
그래서 그리 숨 막히게 토했더냐. 제 몸을 던져 외치던 뜨거운 소리들….
<처서 무렵 매미 소리는 / 강철 빛깔이다 / 골무만 한 몸통에서 / 가슴팍 열어젖혀 쟁명히 울어대는 / 매움 매움, 저 매미 소리는 / 하늘과 땅 사이 나 아니면 울 게 없다는 / 아니 아니 하늘과 땅 사이 울 것 투성이인데 / 아무도 울지 않아 내가 대신 운다는 / 매미가 쓰는 호곡론(好哭論)이다> (조재도 시 ‘매미 소리’ 중)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처서(23일)를 맞았다. 가을의 문턱이라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네이버 지식백과)는 절기라.
높은 가지를 흔들었던 네 소리에 묻혔던 울음이겠구나. 이제부터는. 귀뚜루루루…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고 /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소리 /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안치환 노래 ‘귀뚜라미’ 중)
주어진 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다 갔음을 기억하련다.
시간의 흐름 따라 쇠잔해지는 생명의 질서는 누구게나 동일한 법.
하여 먼저 흙으로 돌아가 애벌레 키울 너의 소멸을 찬미해도 좋으련,
그러하니 잘 가시게.
네가 굵고 짧고 가볍게 놓아버린 세상에서, 몸도 마음도 무거운 나는 다시 폭염을, 폭우를, 폭설을 견뎌야 하리니….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