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춘천 문화기행(1)
모처럼만에 영암을 떠나 연가를 내고 찾은 곳은 춘천이다. 남도에서 물경 다섯시간을 차로 달려야 도달하는 그곳이지만 내게는 퍽 낯익은 곳이다. 이십여년 동안 꼬박꼬박 그곳에 출석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다. 2006년 무렵에는 광주의 북구문화의집에서 운영하는 미루나무 인형극단과 함께 여름날 아마추어 인형극제에 출연하러, 2013년부터는 춘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1당백 프로젝트 라는 문화인력 양성 프로그램의 컨설던트로 참여했다.
일당백 프로젝트는 대학생 또래의 20대가 자신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활동을 전개한 후 그 결과를 100명과 공유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진지한 계획과 실행력이 요구되는 이 활동에는 100만원이 지원되는 것이었다. 단독으로 수행하거나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몫이 내가 하는 역할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느끼는 것은 참 대단한 도시 춘천이다 라는 공감이다. 이를테면 우리 나라의 현대화된 축제의 발상지로서 춘천 인형극제를 손꼽을 수 있다. 분명한 개막 동기는 아직 모르지만 춘천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럴만도 해! 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과 인접한 도시, 물과 안개로 가득한 도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대학생들의 MT코스, 가족들의 소풍코스 등으로 이미 정평이 난 이 도시는 도시 이름 앞에 “낭만”이라는 수식어가 절대적으로 미사여구가 아닌 곳으로 포지셔닝이 된 것이다.
문화가 풍부한 도시
하니 춘천을 찾는 이들에게 문화참여와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도시 자체에 활력소일뿐만 아니라 춘천에 가보고자 하는 방문 의사를 지닌 이들이 곧장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동기 요인이 되는 것이었다. 인형극단과 함께 서너 차례 춘천까지 설레임을 가지고 찾은 나 자신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인형극제가 자리잡아 가자 새롭게 등장했던 축제가 바로 춘천 마임축제였다. 온갖 함성과 악다구니에 노출된 세상에 말없이 몸짓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로서의 마임은 초기 시각예술의 분야로 치부되던 것에서 점차 연극과 공연예술이 다원성을 지닌 파격적인 장으로서 춘천이란 도시를 상기 시켜주었다. 연이어 전개된 프린지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로 춘천이란 도시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성한 도시인지를 알리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여름 춘천은 정말 기대 만발한 도시였고, 이런 모습이 시나브로 전국에 전달된 것이다. 그럼에도 춘천은 이것을 세상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축제가 열리고 수많은 매니아들은 그런 춘천을 찾아와 명동 닭갈비를 먹고, 소양강 처녀를 바라보고, 막국수로 입가심을 하며 도시에 젖어드는 것이다. 8월 땡볕의 춘천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도착했다. 기초문화재단의 신입 직원들에게 업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일정이 있어서 찾은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던 터라 점심 무렵 당도하니 식당에서 후배가 반갑게 맞아준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마주한 밥상은 황태구이 정식이었다. 더덕과 황태가 신비롭게 조화를 이룬 밥상 앞에서도 연신 남도 사람에게는 이건 상차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어쩌다 남도는 밥상의 풍성함과 미각의 강자가 되어 있는지 이틀내내 이런 말을 들어야 될 것 같아서 더욱 안절부절해진다.
점심을 마치고 베어스 타운이라는 호텔에 짐을 풀고 2023년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된 춘천의 속살을 찾아 나섰다. 시민문화활동공간 사업을 담당하는 탁영희 활동가와 함께 구석구석 문화의 접점을 형성하는 곳을 향했다. 먼저 몸풀기로 나선 곳은 장학리에 위치한 소울 로스터리 카페였다. 수많은 노송들을 사이에 두고 카페가 개방형으로 들어선 곳이었다.
기하급수적 늘어난 커피 전문점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커피를 애호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요즘 트렌디한 카페 문화의 발신지는 강릉의 테라로사를 비롯한 안목항 일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인접한 춘천도 이러한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터이다.
게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커피 전문점은 전라도의 담양만 해도 카페가 250개가 넘을 정도로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본디 녹차를 즐겨 마시던 필자도 십여년전부터는 아예 다구 셋트를 손대지 않고 덮어두고 맛있는 원두를 찾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지내는 터이다.
근자에 발견한 나의 커피 성지는 화순 도곡온천 가장자리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전문점인 ”부띠크 그레이어“라는 카페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다양한 맛으로 변주하여 준비해주는 4가지 커피향은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향이 입안에서 머금은 듯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여튼 소나무가 울울한 곳에 비는 내리고 외부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마치 솔숲의 향과 커피향과 인간의 내음이 버무러지며 말끔해지는 경험을 하게 했다. 초당옥수수를 가미한 커피가 이 집의 명물이었다. 기나긴 시간의 노정이 이 공간을 거침으로서 새롭게 활력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인 탐방의 여정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은 강원대학교 앞의 일반 주택이었다. 깔금한 외관을 가진 이곳은 과거 하숙을 겸한 일반 주택에서 카페를 거쳐 지금은 “인생공방 기록장”이란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소설을 쓰는 윤한 대표의 안내를 받았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 보거나 사색하기에 좋도록 공간의 안배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본디 있었던 대학가 주택의 정서가 좋은 메니저를 만나 글로 복원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 창원에서 왔다는 분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공간성이 일종의 명소 혹은 장소화 됨으로서 다양한 이들을 이곳으로 초대하거나 절로 오게 하는 묘한 힘 같은 것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휴대폰의 문화가 발달하며 많은 이들이 문장의 힘을 상실한 시기가 지금인데 과감하게 문장의 힘을 밀고나가는 패기가 참으로 대단했다.
문장의 힘
아무래도 글 짓는 작가이기 때문에 더 이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임을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글쓰는 방, 음악을 듣는 방, 커뮤니티 공간 등의 짜임새에 비해 활발한 운영이 쉽지 않다는 운영자의 고민을 들으며 담양 책방에서 운영했던 “말술학교”같은 구조를 얘기해 드렸다. 취향 공동체의 모임을 일상화 혹은 정례화 하는 것이 이슈를 생산하고 밀도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 아닌가 라는 나의 사적인 견해였다. 선배 세대로서의 경험을 뜨겁게 경청해주는 이에게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일이 참 오랜만이구나 라고 느껴질 무렵 나는 말을 멈추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문장은 다듬어지지 않게 되고 무조건 목적을 이루는 대화로 짧고 단조롭게 변하게 되었다.
언어의 조탁은 시인이나 글쟁이들의 몫이고, 학교의 교육은 문법이라는 재미없는 것에 집중하는 불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기록장의 과감한 시도가 문장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이자 생각의 장으로 부쩍 성장하고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음 행선지를 찾아 일어났다.
이번에는 시내의 소양로4가에 있는 춘천예술촌이다. 과거 정보사의 관사였던 것을 춘천시가 매입하여 이곳을 예술인들의 레지던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광주로 치자면 화정동의 청소년문화의집과 같이 철통 보안이 요구되는 공간이 민간인에게 개방되어 활용하도록 한 것이 이색적이다. 시각예술을 비롯하여 문화예술교육관련 작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음악가 등이 입주하여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는 창작활동의 산실로 운영되고 있음에 저절로 응원의 이야기가 터져나오는 곳이었다.
이곳은 춘천문화재단의 김현정 선생님이 운영하고 있었다. 운영의 어려움은 작가들의 다양한 요구에 다 응해주지 못한 것의 한계도 있지만 같이 전시하고 공유할 마당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굳이 창작과 전시의 동시성이 한 곳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꼭 화이트 큐브만이 전시의 모든 것이란 생각을 버리자고 여기 중정처럼 너른 잔디밭과 광장이 있고 담장과 건물 외벽 또한 좋은 전시공간으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했다.
아울러 예술촌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에서는 단층인 이곳이 내려 보이는 경관을 조성하고 있으니 지붕을 경관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조언을 드렸다. 공공미술의 영역이 환경미화 작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내력에도 집중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미래를 담아내며 메시지를 발신하고 공유하는 것이 예술촌의 임무가 아니냐면서 말이다.
도시의 잠든 공간을 깨워나가는 “모두의 살롱” 시리즈는 내적이나 외적으로 모두 편안한 접근성을 전제하는 것이 모토로서 작동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예술촌은 본디 건물이 가진 군사문화의 형태가 견고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완화해 가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살롱을 방문하고 이제 세 번째 공간으로 움직였다. (이어집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