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작은책들]‘오! 당근’ 천미진 글·강효진 그림

 천미진 작가가 글을 쓰고 강효진 작가가 그림을 그린 ‘오! 당근’(2021, 키즈엠)은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내용의, 편식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훈을 담은 책이다. 열심히 밭에서부터 자란 채소들이 고된 길을 건너 우리의 식탁까지 올라오는데, ‘너’는 당근이 싫다며 외면하는 것이다. 당근이 어떤 채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당근이 슬피 울면 ‘너’는 조금은 생각을 바꿔본다. 그리고 당근이 노력하겠다고 하는 만큼 그를 알아가보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오! 당근’이 가진 미덕이다. 무작정 싫다며 편식을 하기 전에, 조금 더 알아보기로 약속하자는 것. 하지만 같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그림책의 묘미 아닌가. 오늘은 ‘다른 이야기 찾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아끼는 것들을 너에게 다 줄 거야.

 땅에서 얻은 향긋한 마음과

 해님이 전해 준 빛나는 기운을

 너를 위해 모두 가져왔어.

 (…)

 내가 왜 싫어?

 (…)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더 천천히 다가갈게.

 ‘오! 당근’ 중에서.

 당근은 ‘너’를 위해 내가 여기에 왔다고 말한다. 많은 아이들이 달갑지 않아 하는 채소가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당근이 나를 만나기 위해 밭에서 크고, 도시를 지나, 식탁까지 왔다가 ‘싫다’는 말에 거절당하니 슬퍼한다는 것은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어쩌니 하는 주제들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이야기다.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세상과 조금 더 연결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까? 물론, 아이와 어른은 다른 존재이기에 완전히 같은 뜻을 담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달갑지 않아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 당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는 과연 이 채소들이 얼마나 채소같은가,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맛과 상황에 따라 편식을 하고, 어른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편식을 한다. 이 취향은 본능적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의해 구성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의해 구성된 취향은 얼마나 잘 닦여있느냐가 기준이 된다.

 얼마나 깔끔한가, 얼마나 모양이 비슷한가, 무게가 동일한가, 이상하지 않게 뿌리가 잘 뻗었나, 그리고도 길게 이어지는 기준들이 있다… 사람들마나 하는 말이 다르다. 어떤 기준은 믿을 수 있고 어떤 기준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누구는 비싼 것이 믿음직스럽다고 하고, 누구는 직거래가 믿음직스럽다고 한다. 결국 이것은 이 시대의 어른들이 제각각 자신의 믿음과 신뢰에 어떤 이유를 중심추로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에 편견을 둘지 말이다.

 세상에는 “상품”이 되지 못한 채소들이 참 많다. 도매급 기준에 맞추지 못한 “상품”들을 울며 못 쓰게 처분해버리는 농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도 뉴스에 오래 오르내린 주제다. 소비자들이 깔끔하게 닦이고 소독된 채소들만을 믿고 싶어하기에 농민들도 대규모인, 기계 중심인 농사를 짓게 된다. 그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더한 깔끔함을 아름답게 광고하고, 그럼 ‘우리’의 편견은 더욱 공고해져 더 많은 깔끔함을 바란다. 하지만 결국 흙은 닦여져나가고 흠집은 깎여나간다. 그것은 공장에서 이루어져도, 부엌에서 이루어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기후위기가 세계의 큰 이슈가 되어가며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와 그것을 길러내는 과정에서도 애쓰고 있다. 소농이 중요하다, 윤작이 중요하다 같은 말들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상품성’이 있을 정도로 예쁘지 않은 채소들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다. 누군가는 어머니 지구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지구는 하나의 몸이다. 어린이들이 그들 몸의 건강을 위해서 편식을 버려야 한다면, 어른들은 우리가 사는 몸의 건강을 위해 편견을 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 ‘오! 당근’에서 결국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것은 ‘너’가 아닌 ‘당근’이다. 이 그림책을 읽는 오늘의 ‘우리’는 어떨까. 당근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만 있어도 괜찮을까? 정말로, 그러고 싶을까?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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