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연극 ‘모란꽃’
5·18 연극인 고 박효선 창작 여성 중심 오월극

연극 ‘모란꽃’. 토박이 제공
2016년 연극 ‘모란꽃’. 토박이 제공

 2023년 9월 2일 토요일, 동구 인문학당에서는 조금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연극인 고 박효선이 1993년 발표해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 ‘모란꽃’이 시민 낭독극으로 올려졌다. 이번 공연은 동구 인문 도시 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동구 출신이자 동구에서 활동했던 고 박효선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 2편이 무대에 올랐다. ‘금희의 오월’은 전문 극단이 공연했고(9월 16일, ‘토박이’ 공연), ‘모란꽃’은 시민 낭독극으로 올라갔다.

 ‘모란꽃’은 5·18 광주민중항쟁 지도부의 홍보부장이었던 연극인 고 박효선이 창작한 ‘오월극’ 중 하나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투쟁의 일선에 섰던 여성 이현옥이 세월이 지난 후, 심리극 형식을 빌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풀어내는 극이다. 주인공 이현옥은 당시 투쟁에 참가했던 여러 여성들의 삶이 투영된 인물로서 한 명의 실존 인물은 아니다.

 ‘모란꽃’에는 심리극을 이끌어 나가는 감독(심리학 교수)과 주인공 이현옥, 그리고 심리극을 이끌어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 자아들이 등장한다. 이번 시민 낭독극에는 감독과 이현옥 역을 제외하고 총 네 명의 시민 배우가 보조 자아 역할을 했다. 보조 자아들은 이현옥의 가족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안기부 요원이나 계엄군, 시민군이나 광주 시민 역할을 맡아서 한다.

 이현옥은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다니던 스물두 살의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전남대학교 앞에 있는 이현옥의 자취방에, 시위하던 대학생이 들어와 계엄군에게 짓밟히는 걸 보면서도 무서움에 몸을 사리던 그녀는 임신 8개월의 젊은 여인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는 상황에 맞닥뜨린 후, 드디어 투쟁에 함께 한다. 그때의 심경을 담은 대사는 지금 들어도, 고통과 분노를 일으킨다.

 “난 만삭이 다 된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천길만길 날뛰는 것을 보았어요. 살고 싶어 차가워지는 엄마 배를 치고 때리고 …… 아, 아, 난 뱃속에 있는 아기를 살려야 한다고 소리쳤지요 …… 돼지나 소도 새끼를 뱄을 땐 죽이지 않았다는데 …… 그러나 아이를 살려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뱃속의 아기는 조용해졌습니다. …… 저는 울며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렇게 거리에서 항쟁을 시작했던 이현옥은 국가로부터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다. 코드명 모란꽃이 그녀에게 부여된 가짜 신분이었다. 자신은 간첩 모란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다가 이현옥은 지독한 고문을 받는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현옥은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나중에 이현옥은 아이를 입양하여 키운다. 여성이 주인공인 서사여서인지 이렇게 ‘아이’는 연극 ‘모란꽃’의 핵심 하나를 구성한다.

 5·18을 다룬 극은 대부분 남성 중심의 서사가 강하다. 국가 폭력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항거하는 것 자체가 선이 굵은 이야기다 보니 그렇게 흘러갔다고 보인다. 지금도 그런 상황에는 별 이변이 없다.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남성 중심의 서사가 뚜렷한 오월극이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 항쟁이 발발하고 겨우 13년이 지났을 때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오월극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고 박효선이 오월 항쟁을 연극으로 풀어내는 것에 생을 다 바쳐가며 얼마나 골몰했는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게 하는 근거가 된다. 지금 박효선은 없지만, 극단 ‘토박이’는 박효선의 그런 정신을 40년째 지켜오면서 오월극 중심 극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시민 배우들이 참여한 이번 ‘모란꽃’이 놀랍게도 전문 극단 못지않은 감동을 안겼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특히 주인공 이현옥을 맡은 배우의 열연은 감동적이었다. 감독 역을 맡은 시민분의 열연도 잊을 수 없다. 나머지 보조 자아 역들은 서투르긴 했지만, 진정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프로 극단의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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