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 체포동의안 가결과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민주당 입장에선 각본 없는 드라마 끝에 나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된 셈이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검찰로선 영 뒷맛이 씁쓸한 그림이다.
하필 한가위 명절 직전에 터져 나와 여권을 크게 당황케 했다.
이 대표는 이제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됐으며 각종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마무리 될 지는 적어도 몇 년은 더 지켜봐야 한다.
검찰과 이 대표의 신경전 1라운드는 이로써 이 대표가 조금은 더 유리한 상황으로 마무리 됐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국민의힘은 아직 메시지가 정제되지 않고 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보면 논리적으로 모순 투성이”라고 비판한 것 까지는 그렇다 치자.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고 보면서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결론지은 부분이 모순이라는 게 박 의장의 주장인데, 일부 법조인들도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의장이 “국회뿐만 아니라 법원도 아직은 제1야당이 권력”이라며 “‘재명수호’ 판결이고, ‘황제 판결’이란 말이 나온다”고 덧붙인 것은 과했다.
여권 주요 당직자가 3권분립이라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대놓고 부정했기 때문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논평에서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 힐난한 것은 우리 정치권의 수준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만 하다.
# 망외의 소득을 거둔 민주당 안팎에서 체포동의안 가결의원을 색출하자는 비민주적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총선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지금 수도권 민주당 강세지역과 호남에선 자칭타칭 친이재명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친명 강경파는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한 보복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정청래 최고는 의원총회에서 “검찰과 한통속이 된 민주당 가결파 의원들도 참회하고 속죄해야 한다”며 “반드시 외상값은 계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비명계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원외 친명 인사들도 ‘반개혁 세력 몰아내자’, ‘물갈이 분위기를 만들자’는 등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친명계 모 의원은 “가결표 던진 의원 중에 공개적으로 라디오 나가서 떠든 사람들은 시범 케이스로 징계할 만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 아무튼 이재명 대표는 기사회생, 일대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방탄 프레임’이라는 족쇄가 사실상 풀린 만큼,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이끌고 나아가 내년 4·10 총선 준비에 전력할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이 대표가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격화된 내분을 수습하는 일이다.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내놓은 명분 없던 부결 촉구 입장문이 계파 갈등을 더욱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당을 분열로 내몰고 있는 강경 친명 세력의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사실 영장 기각으로 이미 방탄 프레임 자체가 깨진 상황에서의 당내 책임 공방은 별 의미도 없다.
이 대표가 영장 기각 뒤 여권을 향해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정치로 되돌아가기 바란다”고 말한 것은 적어도 당내 계파문제에선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려져야 마땅한 말이다.
체포동의안 가결 와중에 친명 일색으로 바뀐 당 지도부 또한 비주류가 적절히 배합된 통합 지도부로 재편토록 하는 게 좋다.
총선 승리와 대권 재도전이라는 이 대표의 목표를 위해선 ‘개딸’(개혁의 딸)로 호칭되는 열혈 지지층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묵묵히 민주당 상황을 지켜보는 광범위한 중도층 지지도 반드시 필요함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