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연극 ‘소리 놀이:해와 바람’
이솝 동화 해와 바람, 관객참여형 연극

‘소리 놀이:해와 바람’.
‘소리 놀이:해와 바람’.

 폭염이 뜨겁던 지난 8월 5일 서울 성북정보도서관에 있는 ‘천장산 우화극장’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1인극이 공연되었다. ‘창작극단 이야기 양동이’가 만들고, 천정명(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소속)이 연출한 이번 극은 관객참여형 무대였는데, 소리를 이용한 공연이었다. 제목은 ‘소리 놀이 : 해와 바람’이었다.

 ‘해와 바람’은 기원전(BC) 그리스에 살았다고 알려진 이솝이 지은 동화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는지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한다는 내용이다. 나그네가 세찬 바람에는 외투를 굳게 여미고 따뜻한 햇볕에는 외투를 벗어서 결국 내기에는 해가 이긴다.

 극의 주인공은 쏠이라는 아이다. 쏠은 후미진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집에서 할머니와 사는 소녀다. 밝고 맑고 명랑한 쏠은 뭔가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서 오늘도 분주하다. 채반에 곡식알을 담아서 비가 오는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빗자루를 이용해 소리를 만들기도 하면서 논다.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공모하는 ‘소리를 이용한 드라마’를 만들어보기로 한 쏠은 동화 ‘해와 바람’을 가지고 드라마를 구성한다. 쏠(배우)은 관객 중에서 참여자를 뽑는다. 해역과 바람역 그리고 나그네역 이렇게 세 명의 지원자가 필요한데 어린이극이므로 극단 측에서는 되도록 어린이 지원자를 원했겠지만, 필자가 본 공연에서는 한 명의 어린이만 지원했다. 다른 공연에서는 세역 모두 어린이가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것 같은 작은 여자 어린이는 쏠이 보여주는 대사 카드를 보고 해역을 지망했다. 나그네역과 바람역은 어른 여성들이 지원하여 소리 드라마를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세 명의 지원자가 역에 맞추어 카드를 보며 대사를 하는 동안 관객은 쏠의 지휘하에 미리 연습하였던 바람 소리 같은 것을 낸다. 이 모든 과정은 녹음되고 드라마 구성이 끝나면 관객과 함께 녹음된 것을 듣는다.

 관객참여형 연극을 많이 봐왔지만, 관객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참여한 연극은 처음이었다고 해야겠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다가도 나중에는 신나서 참여하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려온 어른들의 참여는 신선하고 놀라웠다. 아이를 빙자하여 연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닌가 싶게 어른들은 열심히 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창작극단 이야기 양동이’는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물건들로 내는 소리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의 연극으로 재창작했다. 이런 아이디어가 마냥 참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창작극단 이야기 양동이’의 ‘소리 놀이 : 해와 바람’은 꽤 성공적이었다. 배우와 관객과 스태프가 소통하는 진정한 연극 마당에서 한바탕 놀이가 이루어졌다.

 동화가 되었든, 연극이 되었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지점이 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번 극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해와 바람’의 이야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받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연극이 그런 것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았다.

 녹음되어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해맑게 웃던 아이와 그 가족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고 어른이고 내면의 순수함이 배어 나오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단순한 플롯의 아동극이었을 뿐인데 정화된 느낌으로 충만해지는 무대였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지원금으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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