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에 위기가 닥치면 ‘비대위’나 ‘혁신위’를 띄워 이를 돌파하곤 한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도 2010년 이후로만 총 열차례나 비대위를 꾸렸다.

 김무성 비대위로 시작해 2011년 정의화, 2012년 박근혜, 2014년 이완구, 2016년 김희옥, 인명진, 2018년 김병준, 2020년 김종인, 2022년 주호영, 정진석 비대위 등이 뒤를 이었는데 대부분 지방선거나 총선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구성됐다.

 이 중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비대위는 ‘박근혜 비대위’가 유일하다. 이 비대위는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당시 홍준표 지도부가 출범 5개월 만에 붕괴되면서 등장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당색을 기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경하는 등 파격적 조치와 과감한 외부 비대위원 인선으로 주목받았다. 요즘 신당설이 나오는 이준석 전 대표도 이때 비대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현역 의원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인적 쇄신을 단행,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얻어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박 위원장은 ‘당 중 당’이라는 친박계 수장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기 때문에 전권을 쥐고 혁신 작업을 이끌 수 있었다.

 # 민주당 계열 정당에선 역시 2016년 ‘김종인 비대위’가 기억에 남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2015년 12월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분당 수순을 밟자 문재인 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카드’를 승부수로 띄웠다.

 2016년 1월 김종인은 낮은 지지율로 위기에 몰린 민주당 비상대책위 수장으로 부임, 공천권을 거머쥐었다.

 김 대표는 “친문·운동권 정당으로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며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이 와중에 친노 좌장으로 꼽힌 이해찬과 인지도가 있었던 정청래가 컷오프되는 등 현역 26명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그 결과 4·13 총선에서 민주당은 123석을 차지, 당시 새누리당을 한 석 차이로 제쳐 1당을 거머쥐었고 그 1년 후 민주당은 정권을 잡았다.

 김종인은 자신을 향한 당내 비판에 한때 당무 거부로 맞섰고 문재인 대표가 자택까지 찾아가 간곡히 만류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당 장악력을 확보한 것인데, 이후 그는 ‘여의도 짜르’로 불리게 된다.

 그런 천하의 김종인도 광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나온 ‘차기 대선 출마’ 요청에 애매한 입장을 보인 이후 친문 주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충격적 패배를 당한 국민의힘이 순천 출신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 과정에서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윤희숙·천하람 등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이들은 모두 혁신위 활동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며 제안을 거절했다.

 당황한 인 위원장은 “TK(대구·경북)·PK(부산·경남)의 스타는 (총선 때) 서울에 왔으면 하고 희망이 없더라도 뚝심과 용기가 있는 계백 장군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며 “김기현 대표도, 주호영 의원도 스타들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에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천권이 없는 혁신위의 한계에다 이른바 영남권 물갈이 주장도 ‘친윤 후보군’을 위한 밑자락 깔기 아니냐는 것이다.

 ‘짜르 김종인’의 경우처럼 여권 핵심이 권한과 힘을 실어주는 것도 아니고, ‘2012년 박근혜’처럼 당내 지지그룹도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예측 아닐까.

 다만 이 같은 여당의 혁신 움직임이 민주당 공천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있다. 특히 호남지역 경선에 나선 다선 중진들에겐 아무래도 불리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인요한 혁신위는 첫 공식 외부일정으로 30일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한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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