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나눠지지 않는 사회 됐으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0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이동권 예산 시위를 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0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이동권 예산 시위를 하고 있다.

  백발의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그는 바닥을 기어다니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염원했던 1980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전남도청 앞에서….

 평등을 외쳤던 그의 처절한 외침은 경찰의 제지로 10여분 만에 끝내 외마디 비명에 그쳤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장애인들의 권리에 가장 먼저 앞장서고 있다. 지하철, 공항, 길거리 등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그가 등장하는 곳이면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선다. 주인공은 박경석(6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장애인의 목소리를 최일선에서 대변하고 있다.

 수도권에 살지 않아도 박경석 대표를 주축으로 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는 유명하다. 지하철 출입문에 드러 눕거나 사다리를 한 칸씩 머리에 쓰고 상반신에는 쇠사슬을 두르는 등 다소 과격한 표현 방식으로 출근시간 지하철 탑승 시간을 지연시켜 시민들의 볼멘소리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과격한 시위를 하는 탓에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 사회에 불만을 갖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박 대표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그것도 해병대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칠 만큼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었다.

 그토록 건강했던 청년 박 대표는 24살이었던 1983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 사고를 당해 하반식 마비 장애를 갖게 됐다.

 사고 이후 5년 동안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 박 대표는 “개인의 노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31살의 나이에 숭실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993년도에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설립해 교사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출근길 시위는 계속된다 

 박 대표는 제2의 인생의 목표로 ‘평등’한 사회 구축을 다짐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나눠지지 않고 평등한 권력을 갖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며 “1980년 전두환은 총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2023년은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이 시민의 권리를 갈라치고 있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는 이동을 해야한다. 다수의 장애인들이 그렇듯 집을 나서는 것부터 제약이 따른다.

 버스는 저상버스의 낮을 보급률로 탈 수 없고, 전용차량 역시 부족하다. 때문에 지하철을 타곤 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교통수단이 발달했다지만 지하철 역시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하나라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박 대표가 목소리를 쉬지 않는다.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해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이들이 왜 막아야 했는지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시위를 한다는 비난의 화살만 쏟아질 뿐이다.

 이들이 시위의 대상을 ‘지하철’로 삼은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1999년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이규식 씨가 지하철역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중상을 입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01년 1월에는 70대 장애인이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결국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당시 3급 장애인이었던 그는 휠체어 리프트에 탑승해 이동하던 중 이를 지탱하던 철심이 끊어지면서 7m 아래로 떨어져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박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개인으로서가 아닌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해 함께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22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박경석 대표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박 대표는 “22년 동안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는데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라며 “시민인 장애인을 차별하고,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 권력의 문제다”고 질타했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지하철에서 목소리를 외쳤다는 이유로 “발목을 잡는다”는 표현은 권력이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를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해놓고 이동할 권리를 수십년간 이야기 했는데도 지금까지 보장하지 않은 국가, 지자체장이 문제”라며 “시민의 발목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한 행동이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장차연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시청 앞에서 이동권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박경석 장차연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시청 앞에서 이동권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 불편 야기 아닌 안전 담보 투쟁

 박 대표가 외치는 이동권 투쟁은 단순히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안전을 담보로 한 절실한 싸움이다.

 이들의 외침은 지난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법이 제정만 됐을뿐,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난 2008년부터 장애인 차별 금지법까지 시행되고 있으나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7월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전국 어디서든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에 명시된 것이 실현이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대표는 “법에 의해서 명시된 권리가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야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할 일들이 굉장히 다양하다”며 “기본적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동권 문제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잣대로 한번에 모든 예산을 쏟아부어 시외버스를 자유롭게 타고 다니고, 비행기도 편히 타고 다니는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 가장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은 휠체어에 탑승한 채 시외버스를 타고 다닐 수도 없고,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많은 것들을 비장애인들이 편리 이용하는 것처럼 한번에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특별교통수단, 광주로 말하면 새빛콜의 문제만이라도 우선 개선을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법적으로 광역이동을 지원하게끔 의무화가 됐는데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광역이동이 법적으로 의무화 됐지만 현재 광주에서는 새빛콜을 이용해 전남까지 평일 하루 3명, 주말에는 1명만 이용이 가능하다. 그마저도 광역이동 제도로도 전북 등 타지역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개선하기 보다 현 시스템부터 먼저 바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5·18도시 광주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해야”

 박 대표는 “광주~전남이라도 잘해야 다른 지역의 이동도 가능한 것이다”며 “문제점들을 아무리 지적해도 그것으로만 끝나고 예산으로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광주~전남까지도 못가는데 다른 지역을 가라고 하면 코웃음도 안나온다”고 밝혔다.

 서울을 주요 무대로 삼는 그가 최근 광주를 찾아 옛 전남도청 복원식 현장에 온 이유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박경석 대표는 “1980년 5·18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 복원은 단순히 건물만 복원시키는 보여주기식 행사여선 안된다”며 “43년 전의 민주주의와 지금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개선되고 발전됐는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장애인의 이동권 조차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그 민주주의는 전두환이 총칼로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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