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너희는 이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 아니야” 각인

지난해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을 연재한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교수진이 올해 다시 칼럼을 이어갑니다. 본란은 넓은 범위에서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찰을 시도합니다. 사업단은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열린 가족, 신뢰와 조화의 공동체 문화를 연구·확산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픽사베이 이미지.
픽사베이 이미지.

 일 년 전의 일이다. 만둣국(dumpling soup)이 미국 야후 실검 1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만둣국은 한국인이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새해에 떡국과 더불어 가장 애호 받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만둣국이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실검 1위에 올랐다는 것은 필자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그 계기는 한 한국계 미국인 앵커가 새해에 먹는 미국 남부 음식을 소개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여러 음식을 소개하는 끝에 그 앵커는 다른 한국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은 만둣국을 먹었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것이 발단이었다.

 방송을 본 한 시청자는 해당 방송사에 항의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 사람은 굉장히 아시아적이었어요. 한국인인 거 티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 앵커는 이 음성 메시지를 자신의 인스타에 올렸고, 이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응원했고 여러 방송사들에서 이 사건을 관심 있게 다루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한 흑인은 방송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좌중을 웃겼다. “시청자는 한국인인거 티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요? 내가 흑인인거 티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나요?”

 시청자의 항의는 앵커가 “아시아인처럼 행동”한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계 앵커는 누구처럼 행동해야 했는가? 그 시청자는 미국사회는 ‘백인 중심’의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애초에 이민국가로 출발한 나라이다. 미국사회가 ‘백인 중심’의 사회라는 사고, 그것에 기초하여 소수민족 출신의 앵커는 자신의 출신배경과 관련된 음식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는 다분히 차별적이다.

 미국 야후에서 만둣국이 실검 1위 오른 사연

 만둣국이 실검 1위로 떠 오른 것은 바로 미국사회 내에 이런 차별적 시선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계 앵커의 만둣국 이야기가 조만간 백인이 미국사회에서 주류의 지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미국사회 일각의 두려움을 촉발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만둣국과 다양한 문화와 공존을 지지하는, 그럼으로써 한국계 앵커와 다양한 인종과 연대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만둣국이 싫은 시청자는 만둣국을 안 먹으면 그만이고, 한국계 앵커가 보기 싫으면 티브이를 다른 채널로 돌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의 ‘개인적’ 선호를 주류집단이라는 이유로 소수자집단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근거로 제시할 수는 없다.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일상적 차별은 비단 미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미국사회에서는 밖으로 표출되어 공공연하게 논의된다. 시선을 유럽으로 돌려보자. 선진이민사회로 불리는 독일에서도 의도되지 않은 일상적 차별이 존재한다. 교통 캠페인에 참여한 한 터키계 독일인 아이가 시장의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식장에서 시장이 물었다. “학생은 어디에서 왔니?” 학생은 당연한 듯이 자신이 태어났고 지금도 다니고 있는 학교가 있는 작은 동네 이름을 말한다. 그러자 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시장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곳 말고 네가 애초에 어디서 왔니?” 그 시장은 그 학생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 그의 부모의 출신 나라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객석의 사람들의 웃음의 의도를 몰라서 그리고 시장의 질문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해 당황해 한다.

 그 아이는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이런 질문은 매우 낯설고 차별적이다. 아이는 친구들이 있고 자신이 태어난 작은 동네를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커가고 있었다. 그 작은 마을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시장의 질문은 부드러운 어투와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아이를 ‘타자화’시키고, 그 아이의 정당한 소속감을 허물어버렸다. 아이는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교육을 받고 자라나지만, 독일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더 ‘터키아이’가 되어갔다.

 ‘내가 이 사회에 소속된 사람이 맞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미 한국사회에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고 이른바 ‘다문화가족’이 등장한지도 30년이 지났다.

 우리는 이러한 인종차별적 편견과 시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한국에서도 이주 배경을 가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너무나 쉽게 노출된다. “너 어디서 왔니?”

 그 아이는 당연한 듯 답한다. “담양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마치 그 아이가 당연히 담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되묻는다. “아니 너 진짜로 어디서 왔니?” 아이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그 아이가 어느 듯 성장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의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너 어떻게 한국어를 그렇게 잘 하니?” “너 진짜 한국사람처럼 한국어 한다.”

 그 학생은 더 이상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한다. 이 학생의 제1언어는 한국어다. 이런 질문들은 그 아이를 주눅 들게 만든다. ‘내가 이 사회에 소속된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이 이 사회에 정당하게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것이 “너 어디서 왔니?”라는 일상적 질문이 차별적인 이유이다.

 그러한 질문은 다문화가족의 자녀로 하여금 “너희는 한국 사람이 아니야”, “너희는 이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이 아니야”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그들이 그러한 질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났거나, 아니면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의 모든 시간을 보낸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차별적인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인종차별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밖으로 명료하게 드러나는 혐오적 표현이나 노골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당연시 되는 판단들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대희(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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