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사법화가 거침없이 추진되고 있고, 이를 막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당사자들은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그 시발점은 15년 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이다.

 학교 폭력이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 전부를 학교폭력법에 근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 학교 내의 모든 활동이 사법적 관점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계기가 된 법률이다.

 물론 이 법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학생들의 품행이 날로 거칠어지는 양상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학교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기도 했다. 이후 사법적 체계에 따라서, 수사단계에 해당하는 학폭전담반이 교내에 설치되고, 재판부에 해당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단계별로 구성하여 법원의 소임을 수행케 했다.

 SPO(학교전담경찰관)인력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인력과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있었다. 최근에는 2700명의 퇴직 경찰과 교원을 투입하여, 학교폭력전담조사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고위 관료들의 임명 과정에서, 자녀 학폭 처리 과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고, 최근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교사들의 악성 민원의 상당 부분이 학교 폭력 처리 과정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 업무가 교육하는 교사의 본질적 측면이나 제도적 한계 때문에 업무수행이 쉽지 않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다. 결국 전담 조사관이 도입되면서, 수사단계에서부터 사법화가 완성되는 양상이다. 교육과 학교의 사법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교육 본질 “공동체 회복” 주장 왜 실패할까?

 이런 논의를 할 때마다 이런 주장이 늘 등장했다. 교육공동체로서 신뢰가 숨 쉬는 따뜻한 학교, 인권이 살아 숨 쉬는, 권리와 의무가 조화로운 교육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학교의 자율성과 교육의 본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교육의 사법화를 막기 위해 지난 12년 동안 진보 교육 진영을 중심으로 학생 자치, 회복적 생활교육, 참정권교육, 인권 친화적인 학교문화, 인권 조례, 존중과 배려, 권리와 의무 교육 등 다양한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거대한 사막화 앞에 한 그루 나무를 심자는 주장처럼 초라하기만 했다. 왜 교육의 사법화라는 거대한 비교육적 사막화에 맞서 교육의 본질적인 학교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패하고 있을까.

 첫째, 생활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 탓만 했을 뿐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때마다 사법적 외주화만 강화됐다. 교원단체들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생활교육 전담 교사의 증원이나 교원 양성 과정의 혁신이 없었다. 상담이나 심리, 관계 역량, 생활교육 역량 등의 혁신을 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런 일들은 교사들이 지금까지 알아서 다 해왔던 일인데 왜 갑자기 못하겠다 하냐? 소명 의식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낭만적인 인식이 앞섰다. 이미 학생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외면한 것이다.

 둘째, 이러한 인식은 교과 중심의 전통적인 우리 학교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인서울’을 중심으로 피라미드형, 입시 블랙홀로 구조화된 학교 생태계는 소외된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파괴적이고 반사회적 양상을 방치했다. 공부 못하면 온전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싸늘한 학교문화를 오랫동안 묵인해 온 온 탓이다.

 셋째, 학부모의 교육 참여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간섭 또는 훼방꾼 정도로 인식한 탓이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와 교육 책임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교육계 내부에서도 학부모의 교육 참여를 제도화하고, 의무화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녀를 학교에 맡기고, 일정 부분 방치해 왔다. 최근에 늘봄 학교 등 교육복지정책들이 강화되면서, 학교에 맡기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점점 자녀 교육의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한 아이를 한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모든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표적으로 학교 폭력, 즉 생활교육 영역에서는 사법화가 가속되고 있고, 한편으로는 각종 복지정책과 돌봄, 심신의 건강 등 교사로서 감당하기 힘든 영역들을 중심으로 외주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종의 교육의 외주화다. 더욱이 광풍처럼 불고 있는 디지털 교육환경 구축 운동은, 교사에게 존재론적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부분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일종의 전문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공교육 시스템에서 맞춤형을 요구하는 다양한 요구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흔들리면서 꽃 피우는 학교 의미 허용돼야

 종합적인 외주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육계의 목소리와 지자체, 학부모, 교육 당국이 학교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교육 당국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학교 폭력 전담 조사관 같은 불안정한 인력으로 땜질만 하는 정책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서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아이들은 서로 다투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위로하고 부대끼며 성장한다. 학교는 이런 기제를 마음껏 허용하며, 결국은 스스로 이겨낼 힘을 길러주는 곳이다. 흔들리며 아름다운 꽃으로 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허용해 주는 곳이다. 성장의 본질에 대한 두터운 울타리가 필요하다. 이 울타리가 무너지면, 결국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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