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들은 임기 4년을 전 후반기로 나눠 두 곳의 상임위에서 활동한다.
한 상임위에서 2년간 직을 수행하는 동안 상임위 회의와 국정감사, 예결산 심사, 정책토론회, 세미나, 소속 기관 및 유관단체 행사, 민원인 면담 등을 마주하게 된다.
평균적 학력에 회의장에서 졸지만 않으면 최소한 본인 상임위와 관련된 복잡한 현안과 다양한 해결 방안에 대해선 어느덧 전문가로 변신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임기 중 두 곳의 상임위를 경험하게 되니, 3~4선 중진 반열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국정 전반을 꿰뚫게 된다.
이렇게 10~20년간 언론-시민단체의 견제와 감시를 견뎌내고 유권자들과 동료 의원 및 소속 당원들의 마음을 얻게 되는 선량이 비로소 일국의 지도자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그룹 내에서 또 치열한 경쟁을 거쳐 극소수의 당 대표 혹은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코스가 선진국들의 정치문화다.
우리도 오랜 기간 정치권에서 국민들과 교감하고 검증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분들과 평생 다른 분야에 있다 갑자기 정치권에 호출돼 청와대에 들어간 분들 사이엔 국정 성과에 있어 일정한 편차가 존재한다.
국민들의 정치권 밖 ‘새 인물’에 대한 갈증과 선호는 일차적으로 현역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나, 이승만 박정희의 의회 경시에도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소위 ‘영도자’ 입장에선 말 많고 절차만 까다로운 국회가 탐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여론조작을 통한 ‘일하는 지도자와 훼방 놓는 국회’의 선명한 대비는 의회 따위는 무시하고 싶은 독재자들 입맛에 딱 맞는 구도였다.
# 정치권에 ‘한동훈’이라는 또 한 명의 스타가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불과 1년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정권의 핍박’을 받아 한직을 떠돌던 검사가 느닷없이 집권당의 최고 지위에 오르고 대선후보 선호도에서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역시 다이나믹 코리아가 아닐 수 없다.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기까지는 야당 의원들의 집중 견제에 ‘일전불사’ 논전을 벌인 탓도 있으니 그의 등장은 일종의 ‘자의반타의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 등 보수세력은 위기에 빠진 여권을 구할 기수로 한동훈을 선택한 셈인데, 무리수라는 비판이 많다.
우선 특정 정치인들과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 여론을 모아가는 정치는 그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그는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보수언론에서도 ‘하필 또 검사냐’라고 지적하는 검사 출신이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을 단 하루도 경험하지 못한 전직 공무원에게 총선을 앞둔 집권당을 맡긴 대한민국 보수. 그들의 용기는 무모함일까 결단력일까.
하긴 여권 일각에선 ‘윤석열 시즌2’를 기대한다는 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민주당은 한 전 장관과 윤 대통령 부부와의 특수관계를 들어 ‘한동훈 비대위’가 ‘인요한 혁신위’의 실패를 복기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눈치다.
용산과 국민의힘이 여론의 가장 큰 비판을 받아온 수직적 관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오히려 직할체제가 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누가 알겠는가.
1987년 6월항쟁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 12·12 군사반란 세력은 ‘6·29 선언’으로 기사회생 한 바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윤 대통령과 모종의 극적인 상황을 전격적으로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이 73년생 50대 초반의 ‘강남 우파’ 한동훈을 앞세워 대대적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킬 경우, 공천을 앞두고 계파별 신경전에만 집중하는 야당과 차별화에 성공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마냥 손 놓고 있어도 될까, 정말?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