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행사장 어리둥절 ‘서비스’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2004년 4월16일. 광주드림 창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워낙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광주교대 학생들이 무슨 시위를 했었던 것 같다.

 김창헌 기자의 눈엔 교대 학생들 시위 방식이 너무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처럼 학생들이 줄줄이 서고, 한줄씩 앉아 1, 2, 3 숫자를 세고.

 광주교대에 간 김에 김 기자는 광주교대부속초등학교도 한 번 둘러봤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갔다.

 보통 다른 언론사 교육담당 기자들은 교육청으로 가는데 광주드림은 기자를 학교 현장으로 보냈다.

 여하튼 ‘그냥’ 김 기자가 가본 날, 광주교대부속초등학교에선 4개 학교 교사들이 모여서 배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경기는 뜨거워서 교사들은 활력이 넘쳤다. 그런데 그 한켠 앞치마를 두르고 탁자 위 음식물과 빈 병들을 치우는 여성들이 분주했다.

 김 기자는 처음엔 그냥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저 분들은 누굴까?”

 궁금증에 대한 답은 곧 찾을 수 있었다. 앞치마가 단서였다. 그 앞에 ‘광주OO어머니회 봉사단’이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옆에서 엿들은 대화를 통해서도 ‘그들’이 학부모임을 알 수 있었다.

 “앞치마를 안 두르시면 불합격입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들려온 한 교사의 발언은 더더욱 확신을 줬다.

 이때부터 김 기자의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따까리’ 모양새인데…. 교사들은 손 하나 안 대고 모든 걸 학부모들이 준비하고 정리하고….”

 체육 행사가 끝나고도 학부모들은 떠나지 않았다. 강당에선가 밥겸술겸 ‘뒤풀이’가 진행되었는데 그곳에서도 학부모들의 수고가 계속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이미 사진도 찍어놨겠다” 학부모들이 왜 교사들 시중을 드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취재가 시작된 것이다.

 김 기자의 신분이 이때 탄로났다. 일순 즐거웠던 체육대회 ‘뒤풀이’ 흥도 깨졌다.

 뒤늦게 “기자구나” 알게 된 이들은 묵묵부답. 다짜고짜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얘기된 사안입니다.” 교사들의 항변이 이어졌다.

 “사람이 살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

 “학부모와 교사가 이웃사촌인지 모르냐?”

 학부모들 의시 역시 교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걸 가지고 왜 그러냐?”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선생님은 ‘갑’, 학부모는 ‘을’이란 걸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광주교대부속초등학교는 당시에도 입학경쟁률이 센 곳이어서 교사들의 권위는 여느 학교보다 높았던 게 사실이다. 이를 당연시하는 학부모들이라면 “뭐가 문제냐?”는 반응은 어쩌면 상식적인 것이었을 터.

 예비 교사들인 교대생들의 반응은 어떨까?가 궁금했다.

 취재 현장인 광주교대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김 기자는 한 10명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잘못된 관행이다”고 답한 학생은 1명뿐이었다. 나머지 9명의 생각은 교사들, 학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뭐가 문제냐?”

 이 같은 내용이 지면에 보도됐다. ‘예비교사’들의 놀라운 답변도 ‘박스기사’로 나갔다.

 “잘못된 관행”이라는 확신이 컸고, 이를 깨야 한다는 사명감의 발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우선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김 기자는 관련 보도에서 학부모가 학교에 얽매인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학부모회의 법제화’를 제시했다.

 보도 이후 학부모 10~20명이 광주드림으로 찾아와 항의했다.

 항의 전화도 빗발쳤다. “우리가 좋아서 한 일이다”는.

 창간 초기 벌어진 한바탕 소란은 광주드림의 정체성을 구체화한 계기가 됐다. 교육 현장에서 ‘실력’ 아래 짓눌려 ‘인권’을 주목하고 환기시킨 역할을 한 것이다.

 덧붙여 창간 초기, 지역 언론계에서 애써 무시하고 있던 광주드림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한 계기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원문 기사] 교사들 행사에 앞치마 동여맨 학부모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