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핵가족·핵사회 시대가 왔다. 코로나가 지나며,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취약해 졌다고 한다. 꼭 코로나 때문이겠는가? 지난 70여 년 간 대한민국의 초고속 성장은 많은 것을 주었고, 많은 것을 잃게 했다. 풍족해졌으나, 사람들은 바빠졌다. 편리는 얻었으나, 불안은 늘었다.
기회의 땅인지, 불평등의 땅인지,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 들었다.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서울·수도권에 똬리를 틀었고, 좁은 땅에서 개인은 숨 가프다. 사람의 밀도는 비정상적으로 높아졌으나, 사람의 온도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아파트 옆집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도, 아파 죽어도, 맞아 죽어도 철문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옆집의 물리적 거리는 1미터지만, 심리적 거리는 안드로메다 보다 멀다. 눈 인사라도 하고 지내면 그나마 가까운 이웃이다. 이것이 도심 속 개인과 개인의 모습들이다.
가족도 때론 갈등 속에 산다
우울, 불안, 각종 정신 장애, 중독, 은둔형 외톨이, 자살 등…. 매일 가슴 아픈 뉴스, 무서운 뉴스, 섬뜩한 뉴스들이 사회 면 한 꼭지를 채운다. 각종 문제들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나, 국가 차원에서 손쓰는 수준은 미약하다. 한계도 있다. 그 아픔과 고통, 피해의 전부를 개인의 행, 불행(운, 불운)으로 돌리기에는 그 감당해야할 바도 너무 크다.
어찌 살아야 할까? 핵개인의 시대라는데!
설령 조부모-부모-본인 형태의 가족 구조 틀 안에 산다 해도, 그 안에서 모든 걸 자급자족, 자체 해결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간 돌봄이 때론 과잉으로(조부모, 부모의 지나친 관심), 때론 역부족으로(동시다발로 발생할 수 있는 노인 돌봄 부담으로)올 수 있는 가족사들이 주변에 널렸다.
그 많은 정신과, 상담 센터에 고민을 들고 나와 꺼낸 이야기의 상당수는 “가족 내 문제”다. 어째 이런 일이?
그나마 버튼 하나 누르면 달려와 주는 112, 119에 고마워해야 할까?
그렇다. 개인으로도 취약한데, 가족으로도 취약하다.
주변에 함께 할 가족이 있다 해도, 그것이 때론 고통의 원흉이 되기도 한다. 부모 자식 간의 갈등, 부부 간의 갈등, 형제 간의 갈등!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지고, 엮여진 관계에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따져 물을지 모르나, ‘아깝기에, 아끼기에, 편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한다. 과잉으로 요구한다. 더 심한 경우 비극적 소설 같고 드라마 같은 일들도 일어난다.
폭력, 소외, 고립은 가정 밖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당사자 끼리 만의 문제도 아니다. 당대 만의 문제도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갈등 상황을 자주 노출하고, 이는 부정적 학습 효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물림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형제 간에도 출생 순위에 따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임은 분명하다.
이혼도 많다. 대한민국 이혼율 1위가 의미 하는게 뭘까? 그만큼 한국의 커플들이 호전적이어서? 그만큼 가정 유지가 팍팍해서?
이유가 어찌되었든, 가정이 있고, 부모-자식이 있어도,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고, 함부로 하고, 이런 저런 사연으로 아픈, 슬픈, 고픈 이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홀로 선 개인들! 자발적 핵개인이든, 비자발적 핵개인이든, 고립형 핵개인이든, 오픈형 핵개인이든,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 했고, 어쨌든 개인은 살아 남아야 한다.
독립성이 강한 핵개인, 혹은 처절히 핵개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 이들은 그나마 낫다. 자포자기형 핵개인로 존재할려는 양, 방문 걸고 나오지 않는 은둔형 핵개인도 있다. 그들도 엄밀히 말해 핵개인이다. ‘슬픈 핵개인, 아픈 핵개인, 고립형 핵개인’
“그럼에도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면이 불편하고, 한 공간에서 일하는게 불편하고, “전화도 불편해!, 문자가 편해!” 이것이 요즘 트랜드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실제 폰포비아(전화 공포증)도 상당수 존재한다. 줌(zoom)과 카카오톡, 메신저, 텔레그램이 편하다는 이들, 줌마저도 얼굴 화면을 켜지 않는 게 편하다는 개인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사회가 각박해져서? 아님 진화의 과정인 건가?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 핵개인, 핵가족, 핵사회, 어떻게 존재하든, 결국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위로 받고, 치유 받는다. 특히 지금처럼 불안지수 높은 핵개인 시대엔 더더욱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주고, 관심 가져주고, 돌봐주고, 물어주고, 들어주고, 그 기능(?)을 퇴화 시켜선 안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교감’들을 거세시키지 말자.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최후의 생존법이다.
조윤정 (사)여성비전네트워크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