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사 표현하고 다른 의견에 꼭 반응해야

미네르바 수업장면.
미네르바 수업장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기간 동안 고등학교 물리 교사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 있는 신생 여자 고등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 여학생에게 물리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불과 5, 6년 전에 여고생이었던 나는 여고생 물리 수업 분위기가 어떨 것인가를 너무나도 잘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걱정이 되었다.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교과 내용을 충실하게 준비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전달한다면 교사로서의 역할을 못할 리는 없겠지만, 그런 수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생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교감하고, 가끔 웃음도 터져 나오는 수업, 학생들의 자유로운 질문이 제기되어 때로는 내가 당혹해질 수 있는 수업. 그야말로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수업이 가능할 수 있을까?를 두고 몇 날 몇 일을 고민하다가 두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하나는 50분 수업 시간을 40분으로 10분 단축하는 것이었다. 사실 고등학교의 50분 수업 시간은 집중하는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매우 지루하고도 아주 긴 시간이다. 만약 학생들 대부분이 지루함을 느끼는 수업이라면 가르치는 교사에게도 정말 힘들고 탈출하고 싶은 시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과감하게 남겨놓은 10분의 시간 동안 여러 소설 속 이야기를 하기로 작정했다. 박완서의 소설을 소개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설명했고,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을 읽고 와서는 다양한 군상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스토리를 도입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배운 내용에서만 시험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별도의 예습이나 복습 없이도 수업 시간에만 집중한다면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폭발적이었다.

 학생들이 참여해야 재미있는 수업 

 그렇게 수업을 시도한 지 2~3주의 시간이 흐르자,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고 학생들은 물리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물리 공부를 위해서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중간고사 기간이 도래했다. 약속대로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배운 내용에서만 시험 문제를 제출했고,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놀랍게도 80점에 육박했다. 곧바로 교감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학생들 평균 성적이 이리 높은 것은 조 선생님이 잘 가르친 결과입니까? 아니면 다른 비법이 있는 겁니까?” 놀람과 꾸중을 뒤섞은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학생들이 한 번쯤 물리 성적을 잘 받아보아야 물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 혹은 물리 공부를 계속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어요, 교감 선생님”.

 그 당시 물리 성적을 높게 받아서 물리학을 계속 공부하게 되었다는 학생의 소식을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학교의 그 시절이 아마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가장 높은 물리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도 믿는다.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경험은 사람을 놀랍게 변모시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아주 사소한 칭찬이라도 사람들은 칭찬을 들으면 내재 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긍정적이면서 성공적인 경험을 쌓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로에 대한 칭찬에도 매우 인색해지고 있다.

 세상은 더욱 불확실하고 불안전하며 예측 불가능해짐에 따라 실패의 가능성이 더 커졌는데,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경험의 기회, 칭찬받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또 그것은 어떻게 키워줄 수 있는가?

 지난해 전남교육청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이 함께 추진한 ‘미래세대 교사 연수’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출발했다. 불확실한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 시대를 맞이하여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 4C - 즉,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적 사고(Creative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 를 키우기 위해 켄텍이 추진하는 혁신적 교육 방법 및 내용을 중등학교 교사들에게 알리고 그 적용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해서다.

 교육청 관계자와 대학 교수 그리고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교육을 바꾸고 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학생들이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견하면서 실패에 직면하는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이 연수에서 필자는 미네르바 교육을 소개했다.

 ‘켄텍-미네르바’ 교육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보다 입학하기가 더 어렵다고 알려진 미네르바 대학교의 교육 방식을 켄텍이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콘텐츠와 교육 방식 등을 현지화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온 새로운 교육 방식이다.

 주도 학생 몇몇 아닌 전체가 참여 

 켄텍-미네르바 교육의 특징은 인터랙티브 온라인 기술을 활용하는 에듀텍의 한 방식이라는 점, 그리고 학생들이 사전에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는 점이다. 교수의 역할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대화와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가 질문과 반응을 통해 정해진 주제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에 일정한 시간 동안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게 돼 있으며, 7개의 이모티콘을 활용하여 다른 학생들의 의견에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다.

 이는 기존의 토론식 수업이 흔히 주도하는 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며, 특히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거나 서투른 학생들도 반드시 참여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학생들의 서투름을 나머지 학생들이 귀 기울이며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토론식 수업이다.

 즉, 켄텍- 미네르바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참여하는 경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해보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다른 학생들이 보여준 반응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하는 교육 방식이다.

 개교와 함께 짧은 기간이지만 4개 교과목(과학적 학습법과 리더십/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 시스템과 사회/ 문학과 해석 및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으로 추진돼온 켄텍-미네르바 교육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크게 인정받았다. 작년에는 세계적인 교육자, 공학자, 기업 대표들이 참여하는 <홍콩 에스페란자 에듀텍 포럼>에 스탠포드대학교와 나란히 초청되어 켄텍-미네르바 교육의 성공 경험을 공유하였고, 미네르바 포럼으로부터 전 세계 수십 개의 파트너들 중 최우수 파트너로 선정되어 특별상도 수상했다. 요즘에도 국내 유수대학들은 미네르바 교육을 벤치마크하기 위해 켄텍을 방문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남교육청은 켄텍과 함께 제 2차 <미래세대 교사 연수>를 준비 중에 있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초등 현장에 적용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 2차 연수에는 작년에 참여했던 중등교사들이 선도 교사로 참여할 예정인데, 몇 분의 고등학교 교사들은 미네르바 교육을 고등학교 과학교육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를 공유하며 그 확장 가능성을 탐색할 것이다.

 벌써 교사들의 열기가 뜨겁다. 2024년 올해의 성과가 더해진다면 머지않아 전남에서 시작된 켄텍-미네르바 교육이 대한민국 교육 혁신의 새로운 모델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조숙경 (한국에너지공과대학 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