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경기장 관람석의 야구 기자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속 타게 경기가 왜 이리 박빙이래?”
창간 초기 프로야구를 취재하는 이성훈 기자는 경기 막판까지 팽팽한 경기가 싫다. 기사 마감이 늦어질 것이고, 편집진은 마냥 대기할 것이며, 당연하게 퇴근은 늦어질 테니 말이다.
“오늘도 기사 두 편을 써야할 팔자군.”
경기가 9회까지 무승부로 이어지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골이 날만도 하지만 종일 지친 육신은 분노 조절 실패로 이어져 가슴속 열기를 더한다. 후끈후끈 지끈지끈.
홈팀이 승리할 경우와 패배할 경우, 상황별로 두 편을 완성해야 한다. “오늘은 어떤 기사가 살아남을까?”
경기 종료 후 승패를 확인하고 쓰면 한번으로 끝날 일이지만, 이 기자에겐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노선은 ‘경기 종료 후 5분’이다.
편집국의 독촉 때문이라면 핑계나 명분이 없을까마는, 상대는 통제권 밖 요인이라 버틸 재간이 없다.
경기 종료 후 5분이 넘으면 관람석 조명이 꺼져버리는 게 문제다.
그렇다. 이 기자는 지금 기자석이 아닌 관중석에서 취재 중이다.
2004년, 신생 언론사의 취재 환경은 이렇게 열악했다. 통과의례랄까, 프로야구 취재기자 풀단 진입이 막힌 데 따른 것이다.
1층 덕아웃 쪽 기자석 출입이 불가능했던 이 기자는 관람석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광주드림 창간 때부터 프로야구를 담당했던 이 기자가 현장에서 접하는 설움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등경기장 야구장 관람석은 정해진 자리가 없는 구조였다.
해서 이 기자는 관람객보다 한참 일찍 경기장에 들어가야 한다. 노트북 전원 연결이 가능한 콘센트 옆자리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경기가 끝나는 3시간여를 버텨야 한다.
지금의 챔피언스필드보다 협소했던 당시의 무등경기장.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은 공간에서의 노트북 무게는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날씨가 흐려 빗방울이라도 하나둘 떨어지면 이젠 ‘재앙’ 수준이다. 경기가 취소된다면 기사 부담을 덜 수 있으니 ‘땡’잡았다 할 수 있지만, 중단과 속개를 반복하며 끝을 본 경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펼쳐지는 가관인 풍경, 서글프다 못해 웃프다.
우산을 편다. 머리와 어깨로 지지한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펼쳐진 우산을 버텨야 하는 물리적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도 있다.
“이러다 감전당하는 것 아냐?”
당시 홈경기뿐만 아니라 원정경기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따라다녔던 이 기자. 그런 그를 편집국에서 볼 수 있는 날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타이거즈를 전담하고, 매 경기 기사가 보도되면서 구단 측의 배려도 있었다.
테이블이 있는 좌석을 제공받은 것이다.
원정 경기 땐 거의 모텔에서 생활했다. 대구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대전에서 소식을 전해오는 이 기자는 드림에선 특파원급이었다.
어찌됐든 ‘경기 종료 후 5분 내 마감’은 전투와도 같이 치열한 것이었다.
“기사 빨리 쓰는 감각은 그때 익혔다.”
드림 최초 프로야구 전담 기자의 성장은 이토록 엄청난 고통의 대가였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