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제주도만 간직한 매력
그렇게 한적하게 걸었던 곳에 갑자기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조리 식산봉 근처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성산 일출봉의 풍광이 멋지기 때문에 굳이 오르지 않고 수평으로 바라보는 망점을 잘 아는 이들의 발걸음 같았다. 바다를 끼고 한편으로는 봉우리 주변과 방조제 같은 길을 걷는 모습 자체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한낮의 풍경은 제주도만이 간직한 신의 선물다웠다.
그렇게 길을 빠져나와 다시 또 바닷가로 향한다. 썰물의 시간이니 일출봉으로 연결된 광치기 해변에 드러난 해초 자란 바위와 조응하는 풍경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역시 미끄럽지만 푸른 이끼처럼 드러난 해초와 검은 성곽 같은 봉우리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 일품이다.
동백꽃 대궐 이루는 마을
눈에 가득 이 광경을 담고 이제는 좀 더 멀리 서귀포 남원의 위미리로 향했다. 한겨울에도 동백꽃이 대궐을 이루는 마을이다. 제주도의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이곳은 1858년 생인 현맹춘이라는 여성이 17살에 시집와서 제땅말로는 ‘버득’이라는 황무지를 35냥에 매입하여 땅을 일구는데 바람이 몹시 심해서 이를 막고자 한라산에서 동백씨앗을 가져다 밭의 둘레에 심었던 것이 그 시작점이 되었다.
해초따기와 품팔이를 통해 모은 돈으로 구입한 땅이니 얼마나 애착이 가는 곳일까 짐작되었다. 사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농사를 일구는 모든 농토는 밭담이라는 용암으로 둘러쳐져 있다. 바람으로부터 경작지를 보호하는 제주만의 방식인데 그렇다고 농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밭 내부의 흙은 푸석푸석한 화산암질로 형성되거나 바닷바람이 실어온 석회질의 모래가 태반이다. 담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이 모래먼지를 일으켜 저쪽으로 퍼날리는 것이 일상으로 이뤄지는 곳이자 거름을 하거나 씨앗을 뿌려도 자리 잡기가 어려운 그런 흙 아닌 흙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다.
지금이야 기계화가 되어서 볼 수 없지만 30여년전만 해도 파종을 하면서 아예 거름과 함께 넣어뿌리고 그 밭으로 말이나 소가 가서 짓이기도록 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척박한 지역이니 생겨난 말들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기쁨은 모래알 만큼 작았고 슬픔은 모래알보다 많았다”고 할 정도다.
20살 무렵 한국의 발견 시리즈의 제주도편을 보다가 내 가슴을 주저앉게 했던 말이었다. 최고의 관광지로 알고 있는 제주도의 속살은 그러했지만 마냥 제주의 풍경만을 탐닉하는 여행자들은 새겨두어야 할 말씀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조성된 동백나무 울타리가 햇볕과 비바람을 견뎌내며 훌쩍 자라서 울타리가 되고 밭의 내부는 평화를 찾아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는 옥토로 바뀌어 간 내력이 위미리의 동백나무 군락지에 담겨 있었다. 현맹춘 여사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밭자락 언저리를 한 바퀴 돌며 우리 토종 동백의 위력을 실감하고 한편으로는 제주인에게 상징과 같은 동백꽃을 되뇌여 본다. 가슴 아픈 제노사이드 4·3을 상징하는 꽃으로 동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백과 관련한 이원규 시인의 “동백꽃을 줍다”라는 시의 한 구절도 스쳐간다.
‘이미 져버린 꽃은/더 이상 꽃이 아닌 줄 알았다/새야,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네게도 몸서리쳐지는 추억이 있느냐’ 라는 부분이다. 보길도에 들어서서 얻은 시상이라고 한데 그보다 더 처연한 시 구절은 김명인 시인의 ‘각혈 그 선명한 절정들’이라고 강제윤 시인이 통영에서 말하던 것까지 저 화려한 동백꽃 사이에서 상기한다.
생각은 슬픔이고 시각은 화려함으로 가득한 모순되고 뒤죽박죽이 되버린 위미리 길이 되었다. 그런 둘레길 안에 마을카페가 있다. 와랑와랑 이라는 간판을 지붕 위에 걸어 두었는데 제라늄이 핀 소박한 내부 풍경이 발길을 붙잡는다. 그러고 보니 제주는 과거에 유명관광지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는데 이제는 마을 안 깊숙이 카페나, 빵집, 편집숍, 책방,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이 들어서 있다. 이런 곳에서도 장사가 될까 싶지만 들어 가보면 꼭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점은 담양에서 향토사책방을 하면서 체득한 지라 나도 응원군이 되는 심정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지친 몸 회복하게 하는 제주
양지바른 곳에서 마시는 청귤차에 또 심신이 나른해지면서도 또렷함을 회복한다. 제주로의 퇴각이 나의 몸을 회복기로 접어들게 하는가 보다 싶어 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다음 길은 제주2공항의 활주로를 담당할지 모른다는 수산초등학교를 정했다.
서귀포 지역의 환해장성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아늑한 곳에 자리했다. 바람도 잦은 곳이면서 조용한 곳에 성터의 외벽을 담장 삼고 그 담장이 학교의 구역을 경계해 주는 곳이라서 더 포근했다.
근처에는 곶자왈이 많이 있고 여러개의 자연형 호수도 자리잡아 다양한 식물과 새들의 정주지이자 정거장 역할을 하는 생태적 거점이라고 일컷는 곳에 학교가 있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포스도 심상치 않을 정도로 피부에 느껴졌는데 성터라는 역사적 공간 말고도 학교 뒤편으로 이 지역의 신을 모신 당집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운동장 주변을 서성거린다.
사스레피나무, 굴거리나무, 후박나무, 황근나무 같은 제주에 어울리는 수종들이 낙낙장송처럼 울을 이룬다. 어린 시절 졸업식에서 걸었던 둥그런 꽃다발을 만드는 주재료로 쓰인 것이 사스레피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 대부분을 신안군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세상에 여기의 나무는 가로수 덩치만큼 커 있다. 생육환경에 따라 이들의 성장이 다름을 또 확연하게 느낀다. 올망졸망 할 것 같던 초등학교에 대한 기시감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와 왜 이런 아름다운 역사와 생태 위에 또 활주로를 얹어야 하는지 관광이란 이름으로 자본의 탐욕은 어디까지 이르러야 하는지 관광학을 전공한 나로서 분노의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관광지도 휴식이 필요하다
관광지 또한 한계 수용량이 있다. 무한정으로 관광객을 받아들이고자 한들 그들이 지내야 할 공간, 소비해야 할 공간, 휴식하고 놀아야 할 공간, 이동에 필요한 것과 소요 되는 시간 등등의 쾌적함이 있어야 한다. 제주가 가진 관광매력물이 차고 넘치더라도 도로의 수용성, 숙박 및 식음 시설의 수용성 같은 인프라들이 백업 되어야 하는데, 섬으로 고립된 지역에 지하수의 총량은 유한하고, 도로망의 체증이나 사고율 또한 증대되며 사회적 비용이나 미래세대를 위한 지구의 돌봄과 자원의 활용도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계산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저 아름다운 편백나무 숲길의 가로수를 하루 아침에 넘어뜨리고 도로 확장을 꾀하는 일환이다.
제2 비행장으로 들어설 수산초등학교 일원은 석회 동굴의 존재가 곳곳에 포진한 곳이기도 하고, 곶자왈을 비롯한 곳곳의 연못에는 계절별 철새들의 도래지이자 텃새들의 요람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비행에 가장 장애물이 되는게 새들이라고 지속적으로 초주파를 쌓아 대는 제주공항과 같이 이곳에도 새들이 세상을 뜨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설이 들어선다는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강정마을에 항구가, 성산에는 비행장이 들어서는 것은 또 제2의 오키나와 같은 전초기지화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마을서점에 들어갔다. 요조라고 하는 뮤지션이 운영하는 책방이다. 주인장의 생태적 감수성과 젠더에 대한 부분, 철학부분까지 콜렉션된 책에서 읽혀진다. 첫눈에 반한 책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하지만 인내력을 가지고 다시 돌았다.
성산 제2비행장의 건립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이 새의 눈으로, 생태의 눈으로, 현지인의 시각으로 만든 책이 가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2일째 제주여행은 마감되고 제주 막걸리로 오늘 여행을 되새김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 3일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걷기로 했다. 흑룡만리라고 하는 제주의 밭담길을 걸었다. 전년에 걸었던 길이었고, 광주드림의 지면에 투고했던지라 그 길을 걸었던 것 소감은 생략한다. 다만 바람이 거세서 월정리의 해수욕장의 모래가 도로에 쌓이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모래 언덕에 바람의 지문이 밭고랑처럼 나와 있는 기이한 형상을 만나기도 했다.
숨골도 보였다. 동굴이 연결된 지점이라는 표식이다. 비자림이나 곶자왈, 그리고 이런 제주의 밭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가는 곳인데 그 아래에 동굴이 연결되어 있어 이곳을 숨골이라고 한다. 이런 숨골이 어제 들렸던 성산 일원에도 조사된 것 외에도 수없이 만다는 것 또한 비행장에 들어서면 안될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제주의 마지막 밤. 그간 친구가 제주에서 읽었던 책들을 살펴본다. 허은실 선생님이 쓰고 고현주 작가가 촬영한 “기억의 목소리”, ‘사물에 스민 제주 4·3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 제주 방문에서는 김순이선생님의 제주의 신화가 띄였는데 구매해서 읽어야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 여행에서 언제나 거치는 아픈 손가락인데 잠시 해찰하면 그 동백꽃 떨구어진 역사를 망각하는 버릇이라서 그러하다.
제주 4일째 제주문학관으로 들어선다. 1층은 문해교실에서 수학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담은 글과 그림이 이젤에 담겨 있고, 기획실에서는 제주 섬과 바다 사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제주문학관의 정체성을 담은 전시실에는 해양문학의 산실답게 눈에 확 띠는 지도가 있었다. 제주문학지도. 이 일목요연함이 다시 곧 육지를 퇴각하고 제주를 찾게 될 것 같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