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똥, 멧돼지 쫓았을까
우치동물원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의 파장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광주우치동물원 호랑이들.
광주우치동물원 호랑이들.

 2005년 9월, 광주전남지역에서 유일한 우치동물원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호랑이똥 좀 구할 수 없으까?”

 “호랑이똥요? 어디에 쓸려구요?”

 “효과가 있을랑가 몰겄지만, 멧돼지가 하도 기승을 부링께, 밭에다가 한 번 뿌려볼라고 그라요.”

 동물원 관계자도 난생 처음 겪어본 상황.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전화한 사람은 장흥군 장동면의 한 주민이었다.

 시골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야생 멧돼지가 수시로 출몰해 농작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멧돼지 퇴치가 과제였던 주민들이 논의 끝에 호랑이를 떠올렸다고 했다.

 “동물의 왕인데, 무서워하지 않을 종자가 어디 있겠냐? 한 거죠.”

 들판에 호랑이를 풀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생각해낸 게 동물원이었다고.

 해서 걸려온 전화였다.

 필자는 나중에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치동물원이 모아둔 호랑이똥을 주민들이 직접 실어간 며칠 뒤였다.

 이때 우치동물원이 제공한 분량은 호랑이 9마리의 1주일치 배변을 모은, 20여kg이었다.

 드림은 호랑이똥의 실제 효과가 궁금했다.

 농민들이 호랑이똥을 밭에 뿌린지 4일 째 되는 날, 장흥 농가로 찾아갔다.

 “고구마 밭 주변에 호랑이 똥을 뿌렸더니, 지금까지 멧돼지가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요.”

 농민 박모 씨는 “최근 들어 발 뻗고 잠을 잤다”고 감탄했다.

 “보름간 밭에서 기거하면서 지킨 적도 있어. 이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먹었다고. 숨바꼭질이 다반사고, 내가 멧돼지에게 당한 거지. 사람이 지키니까 제 욕심껏은 아니었겠지만 대략 하룻밤에 30㎏ 정도씩은 작살을 냈다니까.”

 그런데 호랑이 똥을 뿌리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손 댄 흔적이 없었어. 멧돼지뿐만 아니라 노루나 고라니 등도 얼씬거리지 않았더라고.”

 효능은 하룻밤에 그치지 않고, 4일째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비도 오고 날씨가 고르지 못했던 악조건이었지만 ‘기대 이상’ 효과가 이어진 것이다.

 전국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멧돼지 퇴치 길이 열린 것일까?

 드림은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를 수소문해, 호랑이똥 처방의 허실을 취재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의 진단은 냉정했다.

 “멧돼지들이 똥을 처음 접하면 뭔가 대단한 놈이 나타났구나하고 느끼긴 할 거에요. 그런데 수일 동안 실체는 보이지 않고, 똥 냄새도 희미해지면 경각심이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본 농민들에겐 ‘호랑이가 과연 영물’이라는 믿음이 충분히 각인된 에피소드였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호랑이 똥이 멧돼지 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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