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에 1·2세트 내주고 3세트 내리 승리
105일 만의 V…내부 갈등 딛고 눈물의 역전승
여자 프로배구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가 기나긴 연패의 악몽을 끊어냈다.
23일 AI페퍼스는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6라운드 한국도로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0-2를 뒤집고 풀세트 접전 끝에 3-2(23-25, 24-26, 25-22, 27-25, 15-9) 대역전승을 거뒀다.
작년 11월 10일 GS칼텍스에게서 거둔 2승째 이후로 무려 105일 만의 승리이다. 이번 승리로 여자부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은 23연패에서 멈춰 세웠다.
경기 시작 전부터 페퍼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연패도 연패지만, 팀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돼 조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베테랑 A 선수가 팀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한국배구연맹(KOVO) 상벌위원회에 회부 됐다. KOVO는 23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페퍼저축은행의 선수단 내 괴롭힘에 대해 심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상벌위원회는 “선수들이 제출한 자료 및 소명을 통해 본 건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좀 더 신중한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회의를 종료하고 다음 주 화요일(27일) 오전 9시에 상벌위원회를 재개최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어느 때보다 코트 위에서 팀워크가 빛났던 경기였다. 야스민, 이한비, 박정아, 필립스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고른 활약을 펼쳤다. 야스민과 이한비는 각각 34, 20점을 터뜨렸고, 박정아와 필립스도 18, 11점을 기록했다. 쉽게 득점을 내주지 않았고, 수비 이후에도 공격을 성공시키며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반면 한국도로공사는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이 거둔 3승 가운데 2승을 헌납, 아쉬움을 남겼다.
1, 2세트까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도로공사에게 세트를 내주며 분위기가 기울었었다.
1세트 초반까지는 야스민의 백어택과 박정아의 서브에이스 등으로 12-6로 앞서며 페퍼스가 기세를 잡아갔다. 하지만 도로공사도 블로킹과 부키리치의 공격으로 점수를 가져오며 꾸준히 쫓아왔다.
야스민이 퀵오픈과 백어택으로 점수 차를 벌려봤지만, 배유나의 시간차 공격과 이윤정의 블로킹으로 20-20 동점을 내줬다. 하지만 야스민의 연속 범실과 부키리치의 공격에 23-25로 1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양 팀은 2세트에서도 접전을 펼쳤다. 초반부터 쫓고 쫓기는 경기 양상을 보였다. 부키리치가 점수를 내면, 야스민도 점수를 내면서 10-10으로 동점이 오고 갔다. 박사랑과 이한비의 분발로 22-22까지 계속해서 치열한 승부가 진행됐다. 박경헌의 블로킹으로 23-23 동점을, 박정아의 한방으로 24-24 듀스까지 2세트를 끌고 갔다. 하지만 부키리치의 2연속 득점을 막지 못하며 24-26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날 가장 아쉬운 세트였다.
1, 2세트를 치열하게 싸우고도 내줘서인지 3세트 초반에는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부키리치의 득점과 상대의 블로킹에 1-5로 어렵게 시작했다. 하지만 야스민과 박정아의 득점포가 가동하고, 하혜진의 서브에이스까지 겹치며 9-10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상대도 쉽게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끈질기게 따라갔다. 박정아와 이한비의 끈질긴 공격과 상대의 범실로 19-19로 균형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야스민까지 힘을 보태며 25-22로 3세트를 가져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기세를 가져온 페퍼는 4세트도 접점을 이뤘다. 필립스의 속공에 7-8로 상대를 쫓아갔다. 하지만 상대방도 다 잡은 승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공격을 쏟아냈다. 도로공사가 10-14로 리드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한비가 빛났다. 3연속 득점을 따내며 17-17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야스민과 박정아가 이를 뒷받침하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두 선수가 번갈아 가며 득점을 성공, 21-21로 동률을 이뤘다. 이한비도 지지 않겠다는 듯 강력한 공격으로 24-24 듀스를 성공시켰다. 페퍼스는 야스민의 득점과 필립스의 서브로 26-25 역전에 성공, 부키리치의 공격이 아웃되며 27-25로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갔다.
5세트가 시작되자마자 페퍼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박정아가 2연속 득점포를, 필립스의 속공과 이한비의 퀵오픈, 야스민의 한방까지 6-1로 도로공사를 몰아붙였다. 상대방도 블로킹으로 반격했지만 야스민도 블로킹으로 응수하며 10-4까지 리드를 이어나갔다.
도로공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타나차의 2연속 득점 등 11-9로 추격을 했다. 그러나 페퍼스는 박정아와 야스민. 필립스의 블로킹으로 14-9로 매치포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박정아의 득점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으며 15-9로 5세트를 가져와 승리를 확정 지었다.
0-2에서 시작된 세트 스코어를 3-2로 대역전시키며 연패를 끊은 것이다. 페퍼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되자 서로를 껴안으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선수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날 페퍼저축은행은 야스민이 34득점을 폭발시키며 공격 성공률 63.46%를 기록했다. 에이스다운 면모였다. 이한비는 20득점에 공격 성공률 48.78%, 박정아는 19득점에 공격 성공률 38.1%로 뒤지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필립스 또한 블로킹 3개를 포함해 11득점으로 팀에 승리를 보탰다. 박사랑은 3득점, 박경현과 하혜진은 각각 1득점을 기록했다.
“가장 먼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시즌 내내 열심히 노력해왔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패가 지속되면서 오늘도 2세트를 내주고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음 점수, 다음 플레이에 대해 집중하자고 얘기를 했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서 조 트린지 감독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이한비가 특출나게 잘 보여줬다. 아웃사이드 히터에서 리시브를 하는 아포짓 자리에 들어서면서 공격까지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띄는 자리도 아니다. 하지만 불만을 갖지 않고 노력을 열심히 해줬다”면서 “경기 초반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좋은 수비, 유효블로킹 등 경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였다”고 격려했다.
기탁영 기자 young@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