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81)나이 들면 좁히라지만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편집자주>

거실에 놓여 있는 곰돌곰순의 기타
거실에 놓여 있는 곰돌곰순의 기타

 쿵 -, 쿵 -, 쿵 -, 쿵 -, 스르르르 ~. 어느 순간 고개가 떨구어지고 오른손이 같은 기타줄만 규칙적으로 퉁기는 게 느껴진다 싶을 때, 깜짝 놀라 얼른 고개를 듭니다. 규칙적인 메트로놈(박자기) 소리가 자장가 같아 깜빡 졸았나 봅니다. 잠을 깨야 하니 얼른 일어나서 돌아다닙니다.

 곰돌 스스로 ‘즐거운 지옥 훈련’이라 이름 붙인 오전 기타 연습 시간. 2020년 기타를 다시 잡으면서 딱, 3년만 쳐 보자며 시작한 이후, 두 번째 맞은 3년 중 2년째, 그러니까 이제 5년째. 해가 갈수록 내용은 조금씩 달라졌고, 수준 또한 달라졌지만, 스스로 정한 연습시간은 빼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피킹, 스트럼, 스케일, 코드, 코드 진행, 코드톤, 리듬, 그리고 아르페지오로 이어지는, 박자기 60에 맞춰 연습하는(피킹과 스트럼은 60~120) 기타 연습 스케줄과 루틴. 집안일과 마당일로 오전이 다 가버리면 점심을 먹지 않고 연습을 합니다. 밥보다 기타 연습을 더 하고 싶어서. 그리고는 부리나케 집앞 김밥집에 주문을 한 후, 출근해서야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여러 권의 화성학(기본)책, 스케일교본, 기타교재 등을 반복해서 보고 있고, 국내파, 유학파, 프로들의 인터넷 기타 동영상 강의들을 참고하며, 배우고, 익히고, 반복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자신만의 스케줄과 루틴 리듬’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규칙적인 박자기 소리에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조금만 쉬었다 하자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날은 기타를 만져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밤늦게 돌아오더라도 5분이라도 기타를 잡자며 아르페지오로 여러 연습을 합니다. 스포츠에서 통용되는 “하루를 쉬면 내 몸이 알고, 이틀을 쉬면 남이 안다”는 말이 악기를 연습할 때도 해당된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곰돌이 향나무에 서각해 대문에 건 문패
곰돌이 향나무에 서각해 대문에 건 문패

 서각을 배워 문패를 만들다

 귀촌한 지 2년째가 되었을 때(2020년) 행복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서각동아리를 알게 되어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주 1회 오전 두 시간. 귀촌해서 가장 먼저 ‘목공’을 3개월 과정으로 배운 후라, 무엇이든지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 갔을 때는 학생용 조각도를 들고 가서 웃음을 사기도 했더랍니다. 서각 칼을 구입하여 목재에 음각으로 “오늘보다 좀더 나은 내일이 되기를” 글귀를 작품으로 완성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서각회장님과 열성적인 ○○사장님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어느 날은 회원 모두가 목포의 서각 명인 벽산 정형준 명인을 찾아 뵙고, 수제자인 김미경 선생님까지, 두 분에게서 기본 방법과 색채 등 작품의 시작과 마무리까지 완성 과정을 배웠습니다.

 동아리에 가입한 지 두 달쯤 되었는데도 기초과정에 목말라 했던 곰돌이는 명인과 수제자분의 가르침에 내내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는데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친절하게, 전 과정을, 하나씩,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명인’과 그 길을 따라 걷는 수제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예술인의 혼’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 곰순이에게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씩 목포로 내려가 꾸준히 서각 연습을 하면 어떨까 진지하게 의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서각과 작품에 쏟는, 두 분에게서 받은 인상이 강렬했던 거지요. 명인께 감사의 인사를 장문으로 보냈더니 친절하게 답장도 보내주셨답니다.

 서각을 배워서인지 산책을 하다 동네 어느 집에서 마당을 정비하고 베어낸 향나무를 가지고 가도 된다고 하여, 제재소에서 3센티미터 두께로 켜서 옥상에서 말렸습니다. 반년쯤 지나 향나무 판재 중 하나를 골라 문패를 만들기로 하고 서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기타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고, 시간이 나지 않아 서각동아리는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서 문패는 서각만 끝낸 채 채색은 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지요.

 해를 바꾸어서야 곰돌이 문패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문패에 색을 입히고 칠을 해서 완성했습니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던 작업이, 색칠과 마감을 하는데 3, 4시간이 걸렸습니다. 문패 작업을 한 지 거의 1년여 만에 완성을 해서 대문에 걸게 되었는데, 걸어 놓고 보니 좀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저, 온전한 작품을 하나 완성한 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곰돌이 만든 짚공예품들
곰돌이 만든 짚공예품들

 어머님의 향수를 자극한 짚공예품

 2020년~2021년 겨울에 행복문화센터에서 짚공예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3개월 과정 주 1회 오전 두 시간. 주변이 논들이라 가을에 벼 베기 후 짚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배워두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신청을 했습니다.

 TV, 영화, 책으로만 접해 왔던 걸 직접 만들어 보다니, 작품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생활용품들을 만들어서 썼구나, 신기하기도 했고, 대단하기도 했습니다. 완성되어 가는 과정도 놀라웠지만, 완성품을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강사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할 뿐인데 신기하게도 작품이 뚝딱, 하고 만들어지니.

 집에 가져오니 어머님이 놀라셨겠지요. 대충 설명을 들으시더니,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 마디. 근디, 이걸, 왜 이렇게 투박하게 만들었다냐, 헐렁한 데다 새끼줄 털이 너무 많이 나왔잖냐.

 다음날부터 어디에서 구해오셨는지 짚들을 조금씩 모으시더니 며칠 뒤 저녁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곰돌이에게 일정한 길이의 새끼줄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이거 한 번 잡아 당겨보라고 하셨습니다. 지름 3~5밀리미터 정도 두께로 꼬아 놓으셨는데, 보기에도 미끈한 게 털 하나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짱짱하기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양손으로 당겨도 보고, 한쪽 끝을 발로 고정시키고 다른 쪽 끝을 양손으로 잡아 당겨도 풀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곰돌이의 그런 모습을 보시던 어머님이 참으로 흡족하신지 웃으시면서 한 말씀 하셨겠지요. “먼저 새끼줄을 요렇게 꼰 후에 물건들을 만들어야제, 저것들이 머시다냐.” 어머님의 그런 타박이 그리 싫지 않은지 곰돌이도 따라 웃었답니다.

 해가 갈수록 더 넓혀지니…

 서각과 짚공예는 기술을 배워두면 집안일을 하거나 꾸밀 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배운 겁니다. 그걸 계속해서 취미로 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타를 다시 잡고 연습하다 보니 아직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과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취미이면서 취미 그 이상의 의미가 되는 거 같은.

 프로연주자도, 가수도 아니지만, 그리고 전공생이나 입시생처럼 굳이 그걸 꿈꾸지는 않지만, 꾸준한 기본 연습 과정을 통해 하나씩 습득하고 익혀가는 것들에 뿌듯한 성취감과 재미 그 이상의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은 무엇이라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미’가 곰돌이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아마, 기타노래동아리를 하고 있어서 그러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보통 나이 들면 일이든 관계든 좁히라고 하지요. 나이 들면 삶의 에너지가 약해지니, 더 깊고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라는 거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 정신에 무리가 많이 와서 탈이 나는 법이니. 그런데 어째 곰돌곰순이는 해가 갈수록 더 넓혀지는 거 같습니다.

 큰일은 큰일이네요. 서로 조심하자고, 건강 관리 잘하자고, 멀리 보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자고 하면서도, 새해가 되니, 오히려 열정과 의지가 더욱 샘 솟고, 더 배우고만 싶으니. 아무래도 서로 믿고, 의지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요. 아무래도 올해 큰일이 날 거 같긴 합니다, 사람들이 대박이라고 하는.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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