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예술단, 노조 성향 따라 복직 판정?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광주문예회관.
광주문예회관.

 2005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메일을 확인하던 정현주 기자는 뭔가 굉장히 특이한 메일 한 통을 발견하고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뭐지?”

 통상의 보도자료들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보낸 이는 광주문화예술회관 직원이었는데 내용이 이상했다.

 메일의 내용은 ‘주무부서 의견’으로 네 명의 해고 노조원을 강성파와 온건파로 구분해 복직의 ‘허가’ ‘불가’를 건의하는 것이었다.

 ‘재위촉 탈락자 복직 관련 검토 보고’라는 제목을 단 첨부문서에는 오디션과 관련해 해고 노조원들의 처우에 대한 문예회관측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적혀 있었다.

 “…무조건적인 복직 요구시 ○○○와 ○○○는 강성으로 인하여 예술단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불가하고 △△△와 △△△ 2명은 온건 성향으로 복직을 건의 드림”이라고 작성돼 있었다.

 당시 문예회관 시립예술단에 소속된 단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실력 부족”을 이유로 오디션에서 탈락, 해고되면서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까 예술단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장기화되고 해고자 복직에 대한 지역사회의 요구가 커지는 과정에서 이 같은 메일이 기자에게 보내진 것이다.

 정 기자는 즉각 그 메일이 실수로 뿌려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광주시 문화예술회관이 노조 성향을 분석해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제도가 강성 노조원들을 정리하기 위한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해고 노동자들의 그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정 기자는 동료 기자 중 당시 노동조합을 드나들었던 황해윤 기자에게 우선 상담을 했다. 직원이 실수로 이런 메일을 보내왔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메일 내용을 본 황 기자는 “중대한 문제다. 기사화 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더불어 해당 노동조합과 사안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정 기자는 2월21일자로 이 문제를 기사화했다. 이상하게도 같은 메일을 받았을 다른 매체에서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시립예술단 해고 문제에 관심을 갖는 매체 자체가 별로 없기도 했다.

 기사가 나간 후 복직 투쟁을 벌이던 노동자들은 강력 반발했고 문예회관은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그 수습이라는 게 매우 전형적이었다. 문건은 내부 직원의 사견이라는 것.

 문제의 문서를 작성한 문예회관쪽 담당자는 “이 문서는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으며, 담당자 입장에서 쓴 사견서에 불과하다”고 했다.

 되레 기사를 쓴 정 기자에게 “실수로 보낸 문서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클텐데도 기자가 영웅 심리로 쓴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노조에 문서를 공개한 것은 담당 공무원을 보호하지 않은 것이라며 서운함을 표했다.

 “백 번 양보해 문예회관측 주장대로 이 내부문서가 담당자의 ‘사견서’라고 치자. 그래도 문예회관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서를 작성한 담당자는 문예회관 내 ‘여느’ 공무원이 아니라 지난 4년간 시립예술단노조를 상대한 ‘노조 담당자’였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해고 노조원들과의 공식면담 자리에 문예회관측 실무자로 참석했었다. 노조에 대한 담당자의 인식은 <○○○는 강성으로 인해 단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문서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언론에 엉뚱하게 유출되지만 않았어도 그 문서는 당초대로 ‘주무부서 의견’이란 이름을 달고 보고됐을 것이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노조원들의 ‘실력 부족’을 해촉 사유로 주장하는 문예회관측이 “오디션이 강성 노조원들을 정리하는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그간의 의혹을 어떻게 씻어낼지 주목된다. “

 당시 정 기자가 쓴 칼럼 중 일부다. 정 기자는 이 기사로 당시 편집국에서 매달 선정하는 ‘이 달의 좋은 기사상’을 받았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노조 성향따라 복직 판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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