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작은책들] '곰곰 걷다' 남윤잎
지난 3일, 푸바오가 한국을 떠났다. 오랜 시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사들과 함께한 푸바오는 유튜브 영상, 공중파 뉴스, 각종 예능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푸바오의 푸짐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매료되었다. 푸바오를 실은 트럭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푸바오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민참여 플랫폼 ‘상상대로 서울’에는 다시 푸바오를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돌려받자는 내용의 민원이 제기되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의했고, 푸바오가 돌아간 중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사소한 정보마저도 기삿거리로 만들던 기자들은 이 또한 지면에 실었다.
푸바오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란 누군가 윽박지른다고 해서 사라질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마음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알지 않나. 하지만 푸바오를 다시금 동물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마리의 ‘동물’을 본질적으로는 전시회장이라 볼 수 있는 ‘동물원’으로 복귀시키자는 것이 과연 올바른 애정 표현의 방법인가?
오늘 소개할 남윤잎 작가의 그림책 ‘곰곰 걷다’(2022, 문학동네)는 책의 양 면을 모두 사용해 두 갈래의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책의 시작과 끝(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좋다)에는 각각 흰 곰과 갈색 곰이 등장한다. 두 마리의 곰은 자기 갈 길을 곰곰 걷는다. 흰 곰은 눈과 얼음 가득한 극점-툰드라 지형을 걸어가고, 갈색 곰은 침엽수들과 잎 떨어진 겨울나무 가득한 숲을 걸어간다.
가끔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어디를 가든 나만의 속도로
하루하루 꿈을 꾸면서
가고 또 가다 보면
어제와 다른 날이 올지도 몰라
‘곰곰 걷다’ 중에서.
흰 곰과 갈색 곰은 ‘중간’에서 만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고요히 전한다.
거기 머무는 게 나았을까?
(…)
나 잘 가고 있는 거겠지
발앞이 어지럽고 때론 헤맬 때도 있겠지만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겠지만
가고 또 가다 보면
특별한 순간을 만날지도 몰라
‘곰곰 걷다’ 중에서.
두 마리 곰은 곰곰 걸어가면서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불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마음. 어쩌면 ‘곰곰 걷다’는 발 디딜 틈 없는 자들을 위한 위로인 것 같다. 결국 그렇게 홀로 걷고 또 걸은 두 곰이 ‘중간’에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곰은 서로를 마주치기 전 표지판에 그려진 곰과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슴들같이 ‘나 아닌 존재’를 만났었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든지간에 결국 계속 걸어가야 하는 건 ‘나’다. 결국 계속해서 나의 길을 걷다 보면 그 끝에 ‘나와 같은 존재’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바로 이 막막한 걸음의 시작이며 힘이다.
‘곰곰 걷다’를 읽으면서 자꾸만 푸바오 환송의 날 트럭 뒤를 따라가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푸바오는 태어나서부터 생활하는 나라를 옮기는 과정에까지 인간들의 손에 자기 몸을 맡겨야 했다. 그것이 푸바오를 무력한 존재로 만들진 않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푸바오는 그런 존재가 된다. 푸바오가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우리는 모른다. 결국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역학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곰을 나도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아 ‘다시 푸바오를 우리와 가까운 거리의 동물원으로 옮기자’고 외치게 된다.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그 존재의 길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곁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궤적을 사랑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인간들이 동물의 길과 나아갈 수 있는 방향까지 제어하고 있는 2024년이다. 이런 시대에 어떤 동물이 스스로 나아가는 길을 응원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푸바오를 마음에서 보내줘야 하는지 낯설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동물원에 있는 푸바오’에 집착하다보면 그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어떤 존재도 격리된 공간에만 갇히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비인간 동물들과 함께 곰곰 걷고자 노력하는 모든 인간 동물들을 응원한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