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보성 계당산(580.2m)
보성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조망 산행
보성군의 철쭉 명소로는 일림산, 초암산, 삼비산을 꼽는다. 광활한 능선에 펼쳐진 핑크빛 양탄자 같은 풍경은 레드카펫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명세로 이 시기에는 등산객이 몰려 기차놀이같은 긴 행렬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보성 계당산(桂棠山·580.2m)은 숨은 철쭉 명소다. 산을 많이 다녔다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에 있지만, 호남정맥꾼들 사이에서는 호젓하게 철쭉을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입소문 났다. 3만여㎡의 철쭉군락지는 올해로 11회째 철쭉 축제(5월5일)가 열린다. 계당산 철쭉은 유난히 짙은 선홍빛이 특징이다. .
계당산은 산책로 같은 편안함이 장점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곳이기에 이정표도 잘 갖추어져 있다. 가쁜 숨을 쉬지 않아도 좋을 만큼 정상까지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다.
계당산은 보성과 화순의 경계에 있으며 예전에는 쌍산, 쌍봉, 쌍치라 불렀다. 400m 이하의 낮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북으로는 무등산, 천운산, 두봉산 남으로는 봉화산, 군치산, 가지산 등이 있다. 구한말 이곳을 중심으로 왜경에 맞서 의병 활동을 했다. 그 거점 가운데 하나인 쌍산의소(雙山義所)가 계당산 서북 능선 아래에 있다. 쌍산의소는 숲과 계곡을 담장 삼아 막사 터와 훈련장, 본부 가옥 터, 진영 터가 남아있는 의병지다.
항일정신 당당한 기상 서린 곳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복내면사무소에서 출발하여 화순 쌍봉사까지 가는 지극히 단순한 외길이다. 복내면은 면사무소 표지석에 ‘생거복내(生居福內)’ 라고 표기할 만큼 ‘인심이 후하며 산세가 좋고 살기 좋은 청정지역이다’ 라고 말한다.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승려 철감선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로서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국보 제57호 철감선사탑을 품고 있다. 철감선사탑은 8각 원당형에 속하는 신라시대 부도로, 그 시대의 부도 중 최대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대웅전과 철감선사탑비 등 보물 2점이 있었다.
대웅전은 우리나라에서 3층 목탑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으나, 1984년 4월 초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진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며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
들머리는 복내면사무소에서 우측으로 100m 지점에 있는 복내우체국을 끼고 돌면서부터 시작한다. 복내면친환경종합복지관 앞에 커다란 등산 안내도가 있다. 계당산 정상까지는 5.4km 거리다.
보성군에서 관할하는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이정표도 세심하게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계당산 정상을 지나 화순 땅을 밟는 순간부터 쌍봉사까지 이어지는 3km 거리는 이정표는 고사하고 등산로도 방치되어 있어 길이 거칠다. 화순군청에서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등산 안내도에서 곧바로 잡목숲으로 들어서게 되며 뒷동산 수준의 길이 시작된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시야는 막혀 있지만 숲 그늘은 좋아서인지, 햇볕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경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고 조붓한 오솔길은 묵은 두엄을 밟는듯한 감촉이다.
소씨제각 삼거리에서 부터는 임도처럼 더욱 넓어지고 편안하다. 실타래 풀리듯 피로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굴참나무 사이로 립스틱처럼 붉은 철쭉이 슬슬 모습을 나타낼 즈음이면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꽃 군락이다. 그 주변으로 각시붓꽃, 둥굴레 등 야생화와 산야초가 동산을 이루고 있다.
철쭉 융단 길 지나, 걸작을 만나다
데크 전망대에서 부터는 뻥 뚫려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열린 철쭉 평전이다. 쉼터 구실하는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별천지에 온 듯하다. 철쭉은 촘촘한 뿌리로 인하여 다른 수종이 침범하지 못하며 민둥산처럼 보이는 특징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철쭉 군락지에는 산행 중 만나는 유일한 화강암이 있다. 어른 어깨높이 정도 높이의 바위에 올라서면 주암호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무등산, 화학산, 개천산 등 이름값 하는 산들과 남으로 방장산, 존재산, 고동산 등 호남정맥 연봉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잔디구장처럼 넓은 헬기장은 ‘개기재’에서 이어진 호남정맥과 합류하는 길목이다. 이곳부터 정상까지 400m 구간은 계당산을 찾아야 할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다. 초원지대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분재처럼 예쁘게 굽은 소나무와 철쭉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커다란 봉분에 정상석이 있다. 동서남북 시야가 막힘없는 장쾌한 풍광이다.
‘노동’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호남정맥 예재터널과 연결된다. 정상에서 쌍봉사까지는 3.3km,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정표가 전혀 없어 선답자들의 표지기를 잘 살펴야 한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벗어난 뒤 콘크리트 포장도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전주이씨 묘를 지나면 쌍봉사다. 독특한 모양의 대웅전 뒤 언덕에서 철감선사 부도를 만난다. 1,000년 전 신라 석공이 방금 정으로 방금 쪼아낸 듯 섬세하다.
▲산행 길잡이
복내면사무소-임도-염씨가족묘-철쭉군락지-정상-임도-갈림길-쌍봉사(8.5km 4시간 30분)
개기제-451봉-정상-451봉-개기제(왕복 6.4km)
올해로 11회 맞는 계당산 철쭉제는 복내면 청년회에서 주관한다. 정상에서 11:00 산신제를 비롯해 보물찾기, 경품추첨 등을 한다. 등산객 및 참가자에게 도시락도 제공한다.
▲교통
유스퀘어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있는 보성행 직통버스를 타면 복내면사무소 정류소까지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쌍봉사로 하산할 경우 화순으로 나가는 군내버스도 여의치 않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복내면 개인택시(061-852-5533)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요금은 1만 5000원.
▲맛집
하산지점 쌍봉사 인근이나 복내면 주변은 식사할 곳이 마땅치는 않다. 다만 화순의 대표 맛집으로 꼽는 두 곳이 있다. 능주면의 양지식당(061-372-1602)은 남도식으로 걸쭉한 추어탕(8000원)과 살코기와 비계가 조합된 돼지고기 주물럭(2인분 2만 4000원)이 인기 메뉴다. 화순 읍내에 있는 약산흑염소(061-373-9292)는 이 지역 미식가들의 입맛을 평정한지 오래다. 삼지구엽주를 곁들이면 보약이 따로 없다. 완도 약산 삼문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먹인 흑염소로 탕(1만 5000원)과 전골, 구이 등을 대중화한 원조격 식당이다.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