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작은책들] ‘도서관 할아버지’ 최지혜

 책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도서관법이 개정된 이후 도서관의 날이 지정되었음을 아는가? 매년 4월 12일과 그로부터 일주일간의 기간은 각각 도서관의 날, 그리고 도서관 주간이다. 달력에 공식적으로 찍히는 도서관의 날은 4월을 도서관의 달로 만들기 충분하다. 4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 한 달간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돌이켜보니 부끄럽게도 한 손을 꽉 채울 정도로도 권수를 셀 수가 없었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글을 쓰기 위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 책을 읽고 온전히 나의 정신을 위해서만 책을 읽는 일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도서관의 날’을 위한 특별 코너를 발견했다. 도서관의 날이라! 도서관에서 일한 적도 있는 내가 이런 정보를 몰랐다니? 생각하고 알아보니 제1회 도서관의 날이 2023년이었다고 한다. 1964년부터 한국도서관협회가 주도하여 독서문화 캠페인 등을 진행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도서관의 날·도서관주간 조직위원회가 23년 4월 발표한 선언문에서는 총 다섯 가지 원칙을 이야기했다. 도서관은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이고, 포용적이어야 하며, 삶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키워 나가는, 국민의 행복한 일상과 함께하는, 지속가능 발전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더 좋은 삶을 위해 도와주는 장소라는 것이다. 일찍이 이러한 공간을 어린이들에게도 제공하기 위하여 고심하고 애썼던 사람이 있다. 내게 주어진 이번 달의 마지막 지면은 이 사람을 기리기 위해 사용하고 싶다.

 최지혜가 글을 쓰고 엄정원이 그림을 그린 <도서관 할아버지>(2014, 고래가숨쉬는도서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만든 이인표 회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서관 할아버지>는 서사를 따라가는 산문적 특징이 있다거나 미술적 섬세함을 중점에 둔 작품이 아니다. 표지에 부제처럼 적힌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보물 창고를 만든 사람, 이인표”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일생 자체가 어린이 도서관과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져있는지를 증언하는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도서관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으나, 당시 우리나라에는 어린이들이 갈 만한 도서관이 없었다. 책이 있는 집을 찾아다니던 어린이가 한국전쟁을 겪고, 피난길에 올라 부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른이 된 뒤였다. ‘도서관 할아버지’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하는 외국인들과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문화들을 익혔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토록 풍요로운 문화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게 되었다.

 ‘사람을 위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세계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을까?

 세계무대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이 아는 것이다.

 무조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많은 것을 알아 가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래, 다양한 책이 많이 있는 공간,

 바로 도서관이야!’

 '도서관 할아버지' 중에서.

 그리하여 ‘도서관 할아버지’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은 지역부터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도서관 할아버지’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돈을 투자해야 했다. 이득은 생기지 않고 소모는 계속되니 회사 직원들은 걱정했지만, ‘도서관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990년 서울 노원구의 <인표어린이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 심지어는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중국과 옛 소련 지역에까지 ‘도서관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어린이 도서관이 지어졌다.

 이런 사람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선언문에 있었던 원칙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불평등한 환경과 구조 속에서도 아이들이 책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2024년 상반기가 벌써 반 이상 지나갔다. 각지의 공공도서관이 각각 어떠한 지원을 얼마나 받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는지 알려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인데, 이용자에게도 운영자에게도 반가운 소식은 드물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개별 도서관과 공모사업 혹은 지원사업을 진행하던 곳들이 줄줄이 지원을 통합하거나 축소한 것이다.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이용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공간은 유지되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유지되어야만 한다. 누군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지 이인표 회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책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책은 억지로 읽는다고 되는게 아니고 익숙해져야 한다. 자발적이어야 한다. 저도 모르는 사이 흥미가 생기고 책과 친해지는 사건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놀이처럼 되어야 한다. 편안한 도서관에서 몸을 아무렇게나 눕히고 한 장 한 장 종이 넘겨가며 이야기를 즐기는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이토록 소중한 경험에 우리는 어째서 이리도 쉽게 소홀해질까. 소홀함이 먼저인지, 소홀함을 부추기는 장벽이 세워진 것이 먼저인지 명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외면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소홀함도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도서관 할아버지’가 그토록 오랜 세월 사명감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서 결정권자가 아닌 ‘우리들’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알고 있어야 요구할 수 있고, 알고 있어야 소홀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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