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비하인드캠] 기다림, 설레임, 스토리는 계속된다

지난 1일 제주전. 광주FC 에이스 엄지성 선수. 광주FC 제공
지난 1일 제주전. 광주FC 에이스 엄지성 선수. 광주FC 제공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3월, 이정효 감독과 함께 아주대학교와 대우 로얄즈 시절을 보낸 절친 안정환이 유튜브 촬영차 광주FC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안정환은 “감독 지시에 못 따라오는 선수가 있을 때, 어떻게 할 거냐”고 이정효 감독에게 물었다. 이 감독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라고 답했다. 안정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일, 광주FC는 제주 원정에서 3 대 1로 승리하며 마침내 6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불현듯 그 장면이 떠올랐다. 광주FC가 연패를 극복하는 과정은 기다림의 미학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정효 감독.  광주FC 제공
이정효 감독.  광주FC 제공

 이정효 감독의 기다림

 먼저, 이정효 감독이 선수들의 성장을 기다렸다. 장신 공격수 허율이 대표적 사례다. 193cm, 87kg에 이르는 우월한 체격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차세대 공격수로 손꼽히던 허율은 입단 후 성장세가 더뎌지면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한때 타 구단 선수와의 트레이드 대상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정효 감독은 그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렸다. 연패가 길어지자, 전격적인 포지션 변경을 단행했다. 비밀리에 센터백 훈련을 시킨 것이다. 지난 수원FC전에서 센터백으로 첫선을 보인 허율은 허약한 제공권을 보완하며 성공적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지는 제주전에서는 후반에 교체 투입돼, 상대의 롱볼 크로스를 수차례 머리로 걷어내며 연패 탈출에 기여했다.

 6연패 기간 동안 멀티 골을 넣은 문민서도 마찬가지다. 신인 문민서는 동계 전지훈련 기간 내내 감독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나쁜 습관이 몸에 뱄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좋은 선수로 만들어 보겠다’는 감독의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다. 뒤늦은 리그 데뷔전을 치른 4라운드 대구전, 이정효 감독은 문민서에게 PK 키커를 맡기는 파격을 선보였다. 묵묵히 때를 기다린 문민서는 PK 골에 이어 수원FC전 환상적인 필드 골로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베테랑의 품격, 이으뜸. 광주FC 제공
베테랑의 품격, 이으뜸. 광주FC 제공

 팀 내 최고참, 이으뜸도 사연이 많다. 23년 시즌 직전 큰 부상을 입으면서 주전에서 밀려났고, 이후론 출전 명단에도 쉽사리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89년생 올해 35세를 맞은 선수에겐 큰 위기였다. 하지만, 이정효 감독은 절실한 태도로 훈련에 임하는 베테랑을 외면하지 않았다. 6연패를 끊는 막중한 임무를 그에게 맡겼고, 2022년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이으뜸은 절묘한 로빙 패스를 선보이면서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팬들의 기다림

 팬들도 선수단을 기다려 줬다. 6경기 연속 추가 시간에 실점하며 패했지만, 팬들은 단 한 번도 선수단을 질책하지 않았다. 도리어 “힘을 내라 광주”를 큰 소리로 외치며 선수들의 기를 살렸다. ‘지금처럼 좋은(재밌는) 축구를 한다면 10연패를 하더라도 기다려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연패가 길어지면 선수단 버스를 막아 세우거나, 감독 퇴진 걸개를 내걸고 선수단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팬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승리 직후 단체샷. 광주FC 제공
승리 직후 단체샷. 광주FC 제공

 구단주의 기다림

 구단주와 대표이사도 감독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냈다. 제주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정효 감독은 강기정 구단주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연패 기간에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제목의 친필 편지를 보내 선수단에게 큰 힘을 줬다는 것이다. 구단주의 축구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홈경기 전부를 직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휴일에는 틈을 내 서울과 전북으로 원정 응원도 함께 한다. 이처럼 애정을 갖고 구단을 운영했기에, 연패에 빠진 와중에도 선수단에 절대적 신임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쐐기골 세레모니하는 이희균 정호연 가브리엘. 광주FC 제공
쐐기골 세레모니하는 이희균 정호연 가브리엘. 광주FC 제공

  새로운 기다림

 기다림의 결실은 이게 끝이 아니다. 작년 대활약을 펼친 알바니아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아사니가 컨디션을 끌어 올리며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안혁주, 정지훈 등 스무 살 안팎 신예 선수들도 ‘달고달디단’ 기다림의 열매를 수확할 채비를 하고 있다.

 기다림의 축구, 정효볼

 이정효 축구는 상대가 끌려올 때까지 후방 빌드업을 하며 기다리다가, 기민한 오프 더 볼 움직임과 연계 플레이로 상대 진영의 공간을 공략하는 축구다. 하지만 광주의 기다림은 지지 않으려고 골문을 걸어 잠그는 축구,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후반 70분 이후까지 지루하게 대치하는 축구와는 결이 다르다. 골을 넣기 위해 상대를 기다리고, ‘좋은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선수들의 도전과 성장을 기다린다. 오로지 결과로만 평가받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기다림’이라는 낭만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지난 1일 제주전 두번째 골 두헌석. 광주FC 제공
지난 1일 제주전 두번째 골 두헌석. 광주FC 제공

 ‘달고달디단’ 기다림, 광주FC

 하지만 광주 축구가 지역민이 염원하는 ‘꿀잼’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5월, 광주는 총 7경기를 치른다. 또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만 해도 설렌다. 이 설렘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김태관 PD.
김태관 PD.

 김태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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