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인용문을 유심히 읽어보자.
“어느 대학에서 (의대 설립)할지를 전남도에서 의견 수렴해 알려주면 추진하겠다.” (지난 3월 14일 전남 민생토론회 당시 윤석열 대통령)
“의대가 없는 광역단체인 전남의 경우 지역 내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 절차에 따라 신청이 되면 정부가 신속히 검토해 추진하겠다” (같은 달 20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료개혁 대국민담화)
전남 의대 유치는 윤 대통령과 한 총리의 언급과 담화로 급물살을 탔다는데 이견이 없다. 당시 전남지역민은 숙원사업을 풀었다며 환호했다.
그런데 2개월간 흐르는 기간 환호는 탄식과 토로로 변질되는 상황을 맞았다.
왜? ‘법적 권한’ 때문이다. 의대를 어디로 가게 할지 선정하는 공모가 전남도 주도가 맞느냐, 교육부 주도가 맞느냐 하는 문제다.
후자 쪽은 순천대와 순천시 측 입장, 전자는 전남도의 입장이다. (목포대·목포시 경우 이에 ‘동의’)
교육법에는 교육부에 의대 선정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므로 교육부가 대학 상대로 공모를 실시하는 게 이치에 맞다.
순천대와 순천시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남도 주도 공모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면 전남도는 이런 간단한 법을 몰라 공모를 주도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답을 하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언급과 총리의 담화에 그 근거를 둔다.
대통령이 “전남도에서 의견 수렴”, 총리가 “신속히 검토”라고 밝힌 데서 연유한다.
전남도 입장에서는 의대 유치, 대학 선정 문제를 전남도에 ‘위임’한 것으로 보고, 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으로 여기며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순천대와 순천시는 대통령과 총리의 이런 일련의 ‘전남 배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아랑곳하지 않고 전남도 공모는 법적 권한이 없는 일이므로 전남도는 손을 떼야 한다고 한다면 전남도에 주도권을 준 (또는 그런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과 총리는 법을 몰랐거나, 이를 어기고 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꼴이 돼 버린다.
진정, 대통령과 총리는 법(법적 권한)을 모르고 “전남도에서 의견 수렴” 등을 발언했을까.
전남 의대 신설은 30년이 넘는 숙원사업이다. 역대 정부, 특히 호남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사업이다.
전국 광역시도에는 다 있다는 의대 설립, 이것만은 성취해야 한다고 전남지역민 전체가 들고 일어선 게 저간의 사정 아닌가. 표현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봉기’하듯 정부에, 정치권에 호소했던 것이다.
의대 설립, 유치는 상당한 정치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중순 대통령과 총리의 ‘입’에서 전남 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전남도가 의견 수렴해서’라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과 총리의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것이냐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전남도의 법적 권한을 문제 삼는 동부권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게 되는 셈이다.
애초 법적 권한은 교육부에 있는데 왜 전남도에 이 같은 권한을 주는 듯한 발언을 해서 혼란을 주는지, 의대 신설 발언은 고맙지만, 법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과 총리의 ‘전남 배려’는 그간 지역민의 정치적 결집이 결과물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천대와 순천시 측도 이에 자문자답해봤으면 한다.
동부권이 전남도 공모에 대한 법적 권한을 거론하는 이면에 무엇인가 다른 정치적 뜻을 숨기고 있다면 공모 방정식의 해법이 복잡해진다.
항간에 떠도는 동부권의 피해의식, 전남도에 대한 경쟁 또는 대항설이 나오는데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이런 얘기가 전남지역으로 의대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덧붙여 동부권에선 지난 2021년 전남도가 진행한 의대 설립 관련 용역이 서부권(목포대)으로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용역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전남도의 주장처럼 당연히 그때 용역은 전남 의대 신설 자체를 위한 것이었고, 지금 추진하는 공모(제3의 기관 의뢰)는 의대를 어디로 가게 할지 정하는 것이므로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용역 결과를 주저하지 말고 전면 공개했으면 한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더라도 차제에 털고 가야 할 것은 확실하게 털고 가야 한다. 지역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전남도 주도 공모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면 동부권이 내건 조건과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길 바란다.
이후 동부권에선 전남도 주도 공모에 대해 법적 권한을 거론하는 것을 자제했으면 한다.
그런 시각이라면 애초 전남도 주도로 진행한 순천대와 목포대의 의대 공동 유치, 통합 의대 유치 대열에도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전남도가 의대 신설, 선정 과정에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하는 주장하는 바에야 그러지 않는가.
이번 전남 의대 유치는 법과 절차를 기반으로 하지만 고도의 정치성을 요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전남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새겨볼 때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