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대팍’에 엄지 척!

지난 11일 대구원정. 가브리엘의 볼경합 사진=광주FC.
지난 11일 대구원정. 가브리엘의 볼경합 장면. 광주FC 제공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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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두 번째 '달빛더비'가 지난 11일 토요일 DGB대구은행파크(이하 대팍)에서 열렸다. 1만 2000명을 수용하는 대팍은 올 시즌 4번째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리그 꼴찌 팀의 홈 경기라곤 믿을 수 없는 열기였다.

경기장 주변은 2시간 전부터 북적였다.

하늘색과 흰색 대구 유니폼을 입은 친구, 연인, 가족 단위 관람객들은 일찌감치 경기장 안 상가에 자리 잡았고, 구단 MD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장내 분위기도 들썩였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조명과 음향에 맞춰 응원 함성과 박수가 장내를 메아리쳤고, 대형 깃발을 앞세운 우-! 아-! 절도 넘치는 응원 구호는 경기장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원정 응원단을 압박했다.

동행한 스태프들은 연신 엄지척 포즈를 취했다. 유럽이나 미국 경기장 부럽지 않은 인프라였다.

‘원정 팀 무패’ 징크스 깨진 '달빛더비'

달빛더비는 ‘축구에서 가장 재밌는 스코어’ 2대3. 광주의 역전패로 끝났다.

비록 ‘원정 팀 무패’ 징크스는 깨졌지만, 원정 응원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은 최고의 명승부였다.

대구FC 신임 박창현 감독은 역습 한 방을 노리던 특유의 ‘딸깍 축구’를 완전히 탈피했다.

광주가 공격하면 곧바로 맞받아쳤다.

전반 10분 만에 양 팀 통틀어 3골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만원 관중의 함성에 고무된 선수들은 쉴 틈 없이 공수를 오갔고, 굶주린 맹수들처럼 골문 앞으로 돌진했다.

인터넷 중계 댓글 창에는 ‘EPL보다 더 박진감 넘친다’,  ‘직관 가성비 최고’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K리그 공식 SNS 계정은 ‘대팍’ 분위기를 ‘유럽 감성’으로 명명했다.

대구 원정까지 함께 해준 광주FC 원정팬들. 광주FC 제공.
대구 원정까지 함께 해준 광주FC 원정팬들. 광주FC 제공.

명승부는 경기장과 팬이 만든다

만약 이 경기가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대팍’만큼의 강렬한 감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축구 팬들의 로망인 ‘유럽 감성’에 취할 수 있었을까. 단연코 아닐 것이다.

비유컨대,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우리 집 안방 TV로 보느냐, 대형 스크린과 고품질 서라운드 스피커가 설치된 극장에서 보느냐-와 비슷한 문제랄까.

어쩌다 ‘대팍’은 ‘대박’이 났을까

사실, 대구와 광주의 축구 문화는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동소이했다.

그러던 2015년 말, ‘침체된 주변 상권을 살리고 K리그 관람 문화를 새롭게 조성해 보자’는 조광래 대구 FC 단장 겸 대표이사의 제안에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이 응답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국비 115억과 시비 400억을 들여 만든 ‘대구 포레스트 아레나’는 경기장 내 상가 조성, 구장 명칭 사용권 판매 등으로 열악한 재정을 확충했고, 도보, 버스, 지하철, 열차로도 쉽게 올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유럽과 미국의 중소 경기장 여러 곳을 본뜬 공간 설계로 관람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그 결과, 3500여 명에 불과하던 평균 관중 수가 1만 명대로 급등했다.

쇠퇴한 원도심은 상전벽해에 가까울 정도로 활성화됐고, 경기장 주변엔 주상복합 등 고층 건물들이 대거 들어섰다.

최근 K리그는 연간 3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새로운 관람 문화를 만든 ‘대팍’은 리그 중흥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지역 낙후성 상징된 광주축구전용구장

이를 바라보는 광주 팬들은 부러움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위험하고 누추한 광주축구전용구장, 이정효 감독이 앞서서 질타하는 지경에 이른 월드컵경기장 부실 관리, 잇따르는 구단 운영의 전문성 미비와 프런트의 비위 등은 비단 ‘광주는 야구 도시’, ‘예산 없는 가난한 도시’라서 빚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을 뜨겁게 달군 ‘대형복합쇼핑몰’처럼 낙후성, 행정 난맥상, 전문성이 실종된 거버넌스 문제를 드러낸 단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경기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모인 광주FC 선수들. 광주FC 제공.
경기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모인 광주FC 선수들. 광주FC 제공.

축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

그 대안 또한 간단치 않다.

시민구단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쯤으로 치부한 광주와 ‘로컬 콘텐츠 플랫폼’으로 활용한 대구의 시각 차이부터 좁혀야 한다.

‘시민구단의 축구는 90분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광주도 ‘대팍’처럼 경기 전후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결합하고, 축구를 매개로 원도심을 활성화하며, 지역 청년들이 ‘나의 사랑, 광주’를 힘껏 외치는 새로운 ‘광장’이자 ‘꿀잼 놀이터’로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도시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다.

이번 달빛 더비를 다룬 유튜브 <광주축구> 영상에는 ‘광주 팬들의 매너에 반했습니다’,  ‘다른 팀과 경기할 땐 광주를 응원할게요’,  ‘이것이 진짜 달빛 동맹’이라는 댓글이 줄줄 이다.

굳이 동서화합, 지역감정 타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축구로 이심전심 소통하고 있는 거다.

만약, 광주에 ‘대팍’에 버금가는 ‘IMAX’급 구장이 생긴다면 어떨까. 그 효과가 배가 되지 않을까. 시민들이 ‘축구 땜시’ 살 그날을 기다리며.. 부럽다 대팍!!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경기에서도 지고, 경기장에서도 지고 만다)

 김태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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