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학교 교구납품 기록 문서 확보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2006년 8월, 교육 담당 기자였던 필자는 직감했다. 전교조 광주지부가 입수한 자료의 파급력이 엄청난 것임을. 해서 드림에게 제공해달라고 했지만 확답을 받진 못했다.
전교조 역시 고민이 있었다. “저희가 내부 고발 자료를 제공받았는데,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중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제보자 동의 없인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단 말입니다.”
“제보자가 원하는 건 뭔데요?”
“그야 비리 척결이고, 책임자 문책이죠.”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수사기관에 제출하거나, 기자 회견을 하거나…. 효과적인 방식이 뭘까요? 제보자가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려해서 방법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내부 고발자를 만나야 했다. 기자 접촉을 극도로 꺼린 제보자와 몇 차례 실랑이 끝에 드디어 만남이 성사됐다.
광주지역 한 중학교 교장 박모 씨였다. 신설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박 씨는 행정실장 윤모 씨와 함께 개교 준비 작업을 했다.
문제의 문건은 이 과정에서 작성됐다. ‘신설학교 비품 구입 리베이트’ 액수가 적힌 종이 한 장. 세상을 발칵 뒤집은 교육 비리 척결의 동력은 A4용지 한 장으로도 충분했다.
방송 자재 납품업체 200만 원, 어학 기자재 납품업체 300만 원, 컴퓨터 650만 원, 사무기업체 100만 원 등 총 리베이트 액수 2580만 원이 내역별로 적혀 있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신설학교 교구 납품업체 뒷돈 제공 의혹이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행정실장 윤 씨가 업체로부터 받은 리베이트를 문서로 작성, 교장 박 씨에게 보고한 종이였다. 박 씨는 이 같은 정황을 몰랐다고 했다.
행정실장이 임의대로 업체를 선정하고 리베이트를 받았으며, 자신(교장)을 공모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 같은 문건을 보고한 것으로 보고 분개했다.
행정실장 친필 문서가 내부 고발된 사연이다.
필자는 사안의 중대성과 같은 비리 재발 방지를 위해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박 교장을 설득했다. 그리고 3시간 여 대화 끝에 드디어 제보를 끌어냈다.
‘리베이트 2580만 원 확인, 신설학교 비품 비리 사실로’라는 제목의 첫 보도 파장은 엄청났다.
필자는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새벽부터 부재중 전화 수십 통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확인해보니, 교육청 여러 부서,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 광주시의회 의원 몇 명, 친분 있는 언론사 기자들 몇 명….
이는 전례 없는 핵폭탄이 돼 광주 교육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신설학교 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들의 비품 구입도 도마에 올랐다. 각 학교가 자체적으로 점검해본 결과 발주 당시 실제 납품 사양이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가장 문제되는 건, 시방서와 달리 납품된 교구들 중에 값싼 중국산이 많았다는 점이다.
‘고양이에 생선 맡긴 꼴’. 각 학교에서 이뤄진 비품 구입은 이처럼 엉터리였고, 이 과정에서 업자와 학교 간 검은 거래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수사가 확대됐고, 교장. 행정실장, 납품업자 등 수 명이 입건, 기소됐다.
광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 이어, 그해 하반기 치러진 국회의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핵심 쟁점이 됐다.
반 년 동안 광주지역 교육계를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시끄러웠지만, 그럼에도 귀한 결실은 이후 광주지역 학교에서 교구 납품 비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