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연주하는’ 주차 정산원 박나원 씨
바이올린이 좋아 끈 놓을 수 없어 ‘연습 또 연습’
“음악을 틀어 놓은 줄 알고 봤더니 주차부스 안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거예요.”
광주 상무지구의 L 오피스텔 주민들의 목격담이 심상찮았다. 1층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클래식 연주 소리가 나서 ‘요즘은 쓰레기장에서 음악도 틀어주나’ 했다는 식이다.
L 오피스텔은 지하 주차장 출입구 부근에 쓰레기장이 마련돼 있다. 저녁마다 영문 모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쓰레기를 버리던 주민들은 근처 주차부스에 뚫린 작은 창 안을 들여다보고는 궁금증을 해소했다.
한 평 남짓한 주차부스 안에서 새어나오는 연주 소리, 작은 창 밖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바이올린 활. 주차요금 정산원 박나원(54) 씨는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로 도시의 저녁을 물들이고 있었다.
팔을 벌리면 한 품에 안아질 정도로 조그만 주차부스. 1평 남짓한 이곳 오피스텔 주차요금 정산소에서 박 씨가 일을 시작하게 된지는 3년 째다. 그는 “처음엔 워낙 좁다보니 여기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일어서서 하자니 바이올린 활이 천장에 닿고, 똑바로 앉아서 하면 활이 창 밖으로 튀어나가고…그래도 대각선으로 앉아서 연주하니 가능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박 씨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결혼 전에도 많은 활동을 했지만 결혼 이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실내악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하고 아이들 학교에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예전에 신문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아줌마들이 뭉쳤다!’라고 해서 바이올린 전공한 아줌마들끼리 실내악을 만들어 발표하고 학교로 공연도 다녔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교에서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죠.”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학교에서 공연을 할 수 없었던 박 씨는 새로운 일을 구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 곳 L 오피스텔에서 주차요즘 정산원으로 일하게 됐다.
“평일 낮부터 밤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도 격주로 근무하고 있어요.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바이올린 연습 모임이 있어 항상 악기를 가져왔는데 오피스텔이다보니 오전 근무 시간이 조금은 한가하더라구요. 그래서 처음 바이올린 연습을 시작하게 됐죠.”
박 씨는 토요일 근무시간마다 틈내서 하던 바이올린 연습을 조금씩 늘려 평일 6시 이후에도 하고 있다. 하루라도 연습을 쉬면 손가락이 굳기 때문이다.
박 씨는 “연습을 하다보면 밖에 소리가 크게 들리나봐요. 주민들도 와서 누가 음악을 틀어놓은 줄 알았다고 물어보시고 오피스텔 관리사무실 소장님도 근무 안하고 뭐 하냐고 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가끔 꾸중을 듣기도 하고 매일 사무실을 오가는 미등록 차량들을 관리하느라 일이 몰아치기도 하지만 박 씨는 한가한 저녁 시간과 주말 오전 시간을 틈 타 꾸준히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해서”다.
“같이 연습하는 후배들도 그 좁은 데서 어떻게 연주하냐고 묻기도 해요. 제가 연주를 엄청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하니까 끈을 놓지 않으려고 계속 하는 거죠.”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