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올바른 방향’ 늘 고민한 과학자

2023년 2월 전북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송상용 교수(1937-2024). 오른쪽은 도쿄이과대의 신창건 교수로, 송상용 교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장례식장을 찾았다. 사진 제공: 전북대 신동원 교수
2023년 2월 전북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송상용 교수(1937-2024). 오른쪽은 도쿄이과대의 신창건 교수로, 송상용 교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장례식장을 찾았다. 사진 제공: 전북대 신동원 교수

 한국과 에콰도르는 1962년 공식 수교하여 2022년 수교 60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에콰도르는 6·25 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 10만 달러 상당의 쌀과 의약품 등을 한국에 제공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두 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2022년 8월 에콰도르 미디어 ‘엘우니베르소’에는 “한국-에콰도르, 60년”이라는 칼럼이 게재되었다. 이 글을 쓴 리처드 살라자르 메디나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대학원(FLACSO) 에콰도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에콰도르가 한국을 위해 500톤의 쌀을 보내기도 했지만 현재 두 국가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경험에서 에콰도르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한국 경제·사회의 빠른 발전은 압축적 성장이라 불리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한 과학기술의 성취에 에콰도르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 과학기술의 성장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함께 각자의 영역에서 묵묵히 활동한 다수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한편으로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의 가치를 알리면서 한국 과학기술의 올바른 방향과 전망에 대해 고민하며 과학기술을 인문사회과학으로 분석하던 많은 과학학자의 노력이 있었다. 그들 중 한국 과학학을 개척한 ‘대부’로 평가받는 송상용 교수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송상용 교수의 삶

 송상용 교수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한 후 철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석사학위까지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과학사·과학 철학을 공부하여 과학기술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갖추었다.

 그는 1970년 귀국하여 여러 대학에서 과학사·자연과학개론 등을 강의하면서 한국 사회에 과학학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1973년부터 전파과학사가 ‘과학 지식의 대중화’를 내걸고 펴내기 시작한 교양 과학문고인 ‘현대과학신서’ 시리즈를 만들어, 제1권의 공동필자를 비롯해 이후 여러 권의 번역자로 참여했다.

 이를 토대로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창립을 주도해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활동에 앞장섰다.

 성균관대 교수로 근무하던 그는 1980년 5월 15일의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했다.

 1984년 한림대 사학과로 돌아온 송상용 교수는 과학사, 과학철학을 넘어 STS, 생명윤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학학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를 이끌었다. 신문 기사, 행사 프로그램, 스냅 사진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수집했던 그는 짧은 글에도 정확한 데이터와 기록을 활용하고자 했다.

 그가 과학사학회, 철학연구회, 과학철학회 등 여러 학회에 사재를 기증했다는 이야기는 한국 과학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넘나들면서 과학학 분야를 선도한 송상용 교수의 삶은 이미 만들어진 틀에서 활동하는 일반적인 학자의 그것과는 달랐다.

 또한 정권에 맞서 바른 소리를 냈다가 몇 년간 야인으로 지내야했던 그의 삶은 그가 단순히 글로만 공부하는 지식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송상용 교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좋은 스승이었다. 몇 년 전 전주에 오셨을 때 평소 좋아하실 것 같던 막걸리집으로 모셨을 때 “그동안 이 좋은 걸 자네만 마셨나”라는 핀잔을 받았지만, 이는 만족을 표시하는 그만의 화법이었다. 그는 대학원생이 하는 설익은 공부에도 관심을 갖고 연이은 질문으로 올바른 길을 찾도록 해주었다.

 내가 한국 현대과학의 역사를 공부할 때 송상용 교수가 1977년에 발표한 ‘과학기술의 전진’이라는 자신의 글 한 편을 주셨다. 이는 한국 현대과학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지니는 문제까지 함께 성찰하는 글이었다.

 한국 과학기술의 압축적 성장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내게 이는 새로운 접근이었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나 역사적 분석을 꾀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한국 사회 과학기술의 당시 모습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꺼리지 않았던 송상용 교수의 시각은 한국 과학기술의 전개를 보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빨리빨리”를 넘어서

 한국 과학기술의 압축적 성장을 모델로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자국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서두에서 소개했던 FLACSO 에콰도르에서 2023년 가을에 학술대회가 개최되었고, 나는 발표자의 한 명으로 원격으로 참여했다.

 이 대학의 총장, 에콰도르 한국대사, 담당 교수에 이르기까지 축사가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모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였지만, 똑똑하게 들리는 한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빨리빨리”였다.

 짐작건대 한국의 빨리빨리 태도를 에콰도르도 본받아 과학기술과 사회를 빨리빨리 발전시켜야 된다는 얘기였으리라. 그 기대에 맞게 나도 모방에서 창조에 이르기까지 한국 과학기술 혁신의 역사를 설명했다.

 나의 발표 이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한국 과학기술이 빨리빨리 정신으로 이루어낸 성취는 잘 알겠는데, 빨리빨리 때문에 생겨난 문제점이나 부작용은 없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해외에서 보이는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빛나는 성공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송상용 교수를 비롯한 과학학 연구자들이 밝히려는 한국 과학에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한국 과학’에서 ‘과학 한국’”이라는 제목을 내세운 이 칼럼을 어떤 주제로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적지 않게 고민을 했고, 나름의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6월 6일 송상용 교수의 별세 소식을 듣고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글로 칼럼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에 급하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국의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우리가 진정 과학적인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던 그의 삶은 나와 같은 과학사학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줄 것이라 믿는다.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 K-학술확산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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