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 학교, ‘인간 성장’ 본질적 가치로 돌아가야
전쟁에서 생태적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어떤 소리를 들을까? 경제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우선하자면 또 어떤 소리를 들을까? 말이 안 되지는 않겠지만 주류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대입 선발을 목표로 삼고,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 육성을 내세우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시민성 제고를 내세우는 것은 어떤가? 당연한 말 아닌가? 이를 위해 교육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 논리를 인정하는 순간 학교와 교육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입시학원이나 정치인/경제인이나 시민운동가들이 주장할 법한 이 이야기를 공교육에서 받아들이는 순간 교육은 내재적 가치가 무너지며 오염되고 변질된다. 전쟁은 전쟁의 논리와 가치가 있으며, 경제는 경제적 논리와 가치가 있듯이 교육은 교육적 논리와 가치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근간을 삼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이 가져야 할 내재적 가치와 논리란 무엇인가? 인간 성장이다. 좀 풀자면 개인의 신체적, 정서적, 이성적, 사회적 성장이다. 옛스럽게 말하자면 ‘지덕체(智德體)’요, 교육계의 흔한 말로 하자면 ‘전인교육(全人敎育)’이다.
각종 ‘법’으로 오염된 학교 현장
대입 선발이나 부국강병, 시민성 제고가 중요하지 않거나 교육과는 무관한 다른 나라 이야기란 소리가 아니다. 이게 직접적 목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2차적, 3차적 목표여야 한다. 1차적 목표는 인간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 성장을 위한 가치와 논리가 가장 소중한 교육적 논리와 가치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왜 이리 말이 장황한가?
학교 교육이 너무도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1차적 가치와 논리가 아닌, 2차적, 3차적 가치와 논리가 힘을 발휘하면서 1차적 가치와 논리가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예방법은 세워지지 않았어야 했다. 2012년에 시행되었으니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심각한 학폭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정의감, 학교 안전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졌을 이 법으로 인해, 현재 학교에서 생활교육에 대한 주도권이 교사의 손을 떠난지 오래다. 갈등조차도 우정의 밑돌로 삼아야 할 학교생활이 이 법으로 인해 신고 문화가 자리잡아버렸으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아동학대예방법은 어떤가? 돌봄에 관한 정책은 어떤가? 교육복지나 안전에 관한 정책은 또 어떤가?
이게 나쁘다거나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1차적으로 우선해야 할 교육적 논리에 앞서 학교 현장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섬세하게 조절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을 때, 교육현장이 아수라장이 될 것은 예견된 일이다. 교권이 떨어지고, 민원은 폭주하고, 학교는 그 정체성을 점차 잃어간다. 이 부정성은 또 다른 정책을 도입하게 유도하고 악순환은 반복 증폭된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학교의 정체성을 교육적 가치와 논리를 제일차적 기준으로 삼아 재무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도권이 외부 시선이 아닌 학교 구성원에게 있어야 한다.
특히 교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생들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통해 학교의 비전을 세우고, 거리낌 없는 소통을 통해 교육공동체의 집단지성 문화를 가꿔가며,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모색해야 한다. 이런 학교가 있는가?
“교육적 가치로 학교 정체성 재무장”
최근에 혁신학교 평가단으로서 심사차 들른 진제초등학교에서 그 가능성을 엿봤다.
혁신학교 평가는 설문이나 자기평가 등의 서류심사뿐 아니라 현장 실사도 한다. 수업을 참관하고, 학부모, 학생, 교사, 업무전담팀, 행정실, 공무직, 교장·교감까지 대부분 그룹의 구성원들을 만나 면담한다.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이분들의 밝은 얼굴과 학교 자랑과 아이들의 자신감이었다. 각 그룹에서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뭘 더하고 노력할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서로들 고마워했다.
외부인에게도 활기차게 건네는 아이들의 인사와 학폭이 거의 없다는 내용은 덤이었다. 이것들이 가능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겠다는 염원들이 모아진 결과가 아니겠는가?
학생수가 20명대로 줄어들고, 교육과정을 침해하던 그 많던 학교 행사가 사라지고, 권위주의 문화가 청산되고, 행정업무가 줄어들고, 컴퓨터 등의 좋은 기자재가 들어오면 교육이 살아날 줄 알았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현실은 암담하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교육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그 출발점은 교육적 가치와 논리로 학교교육의 정체성을 바로잡아 가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정성화 광주 봉산초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