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평화 이룰 수 없다”

지난 9일 오전 5시 32분쯤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한 빌라 옥상에 북한 대남 오물풍선이 떨어져 있다.  뉴스1
지난 9일 오전 5시 32분쯤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한 빌라 옥상에 북한 대남 오물풍선이 떨어져 있다. 뉴스1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다시 부양하고 있음”,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시고 풍선을 발견하시면 접근하지 마시고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람”

 6월 들어 북한의 오물 풍선 경보를 알리는 재난 안전문자가 세 번이나 울렸다. 일부 탈북민 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리자 북한은 오물 풍선으로 되받아쳤고, 이에 정부가 직접 나서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하는 동시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가동했다. 그러자 북한은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강경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남북이 상대에 대한 위협수단을 높여가면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비상식적인 행위로서 중단되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오물’을 살포하는 저급하고 비정상적인 행위는 결코 북한 스스로에게도 득이 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게 풍선 살포 중단을 명분있고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먼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원인은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간의 합의를 누가 먼저 위반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전단 살포 금지’ 남북 합의 누가 깼나?

 남북 당국은 그간 주요 합의문을 체결할 때마다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 금지’를 매우 중요하게 다뤄 왔다. 최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공동발표문>에서 “쌍방은 서로 비방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남북공동성명의 조항에 따라”, “대남·대북방송,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그만두기로 하였다”라는 합의였다.

 이어 1992년 9월 노태우 정부때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에 담겼다.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에도 주요 내용으로 담겨있다. 이처럼 전단 살포 중단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이 합의하고 준수해 온 주요 합의사항이었던 것이다. .

 그런데 전단 살포가 간간히 남북 간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일부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리면서부터였다.

 그렇지만 역대 정부는 대체로 남북 합의 준수를 위해 탈북민 단체에 대해 전단 살포 중단을 설득하고 때때로 이를 제지했다.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이 증대하자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대북전단의 살포 금지를 법제화하였다. 그런데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위해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할 수 있게 하여 정부가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을 활용하여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당국의 판단에 따라 접경지 주민의 안전과 국민 안녕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윤 정부 ‘자유의 북진 정책’ 국민 생명 위협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현재까지 ‘자유의 북진 정책’에 따라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방조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2차 오물 풍선 살포 직후인 6월 3일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며 자제 요청을 하지 않았다.

 6월 6일 탈북민단체가 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했지만 현장에서 아무런 제지가 없었으며, 통일부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며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접경지 주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희생하더라도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일부 탈북민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정부의 대응 방식은 일부 탈북민 단체들이 USB에 담긴 가요들로 북한 정권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수준낮은 하책이다. 예전에나 통했을 법한 방식을 여전히 대북 심리전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국민들의 안전과 국가 안보에 틈이 발생한다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조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남한이 남북합의를 위반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도 이러한 합의 위반 사실을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바로 이 사실을 전제로 남북 갈등을 풀어가야 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지금이라도 합의 이행을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또한 이번 오물 풍선 사건으로 드러난 바와 같이 남북의 끝이 안보이는 군사적 상호 보복 행동 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를 명분으로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전면 효력정지시킴으로써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그 어떤 완충장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향후 남북한 간 긴장 고조와 이로 인한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경 대응과 한국 정부의 강경 맞대응이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보수 노태우가 평화체제 제안한 까닭

 남북의 공존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형성을 위한 근본적 해법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남북 당국은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대화를 통한 평화’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1991년 남북 당국은 ‘남북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서로 다짐하고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였다.

 그런데 30여년 넘게 조심스럽게 보듬고 지켜온 남북간의 ‘관계’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반도의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대결만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평화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남북미가 ‘전쟁 방지와 긴장 완화’ 를 최우선적인 의제로 삼고 다시금 대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의 의지와 역할이 중요하다.

 보수 정부인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가 평화 체제를 제안한 것은 남북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을 겪은 한반도에서 평화는 시대의 과제이고, 헌법정신이며, 국민 다수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특별히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이다”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9년 유엔 총회 연설을 들려주고 싶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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