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과 이용, 그 경계는 어디쯤일까?
2020년 황룡강 장록습지가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광주의 첫 번째 습지보호지역이자 국내 첫 번째 도심습지보호지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장록습지는 광주의 우수한 자연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장록습지를 안내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멋진 경관을 가진 또 편하게 쉴 수 있는 장록습지가 있어서 참 좋다.’는 말이다. 키 큰 억새숲을 뛰어가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 봄이면 연둣빛 신록을 아낌없이 자랑하는 버드나무숲의 경관이 멋진 곳, 보랏빛 멀구슬나무 꽃이 뿜어내는 향긋한 내음과 해질녘 노을빛을 받아 불게 물든 강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른 아침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 밤에는 풀숲에서 열리는 수많은 곤충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곳. 가을밤, 깜깜한 산책로를 조용히 걷다 보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는 바로 이곳이 장록습지이다. 이제 광주의 습지와 생물다양성들을 이야기할 때 장록습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 되었고,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으로 생물다양성을 체험하고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습지, 생명을 가득 품은 습지가 광주에 또 있지 않을까? 자연의 모습을 잘 지켜온 야생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는, 생태계가 우수한 습지를 시민들과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시작한다. ‘보호지역 확대를 위한 영산강-황룡강 우수습지 답사’. 이제 우리가 직접 걸으며 만나는 습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편집자주)
기온이 35도까지 오른다는 오늘의 날씨. 이런 날씨에 강변을 걷는다고 누가 올려나 생각하며 북구 거징이쉼터로 향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9시 30분 약속 시간이 되기도 전에 속속 모이는 일행을 맞이하며 오늘 만나는 습지는 또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고 있는 서로의 마음이 느껴져 마냥 즐거워졌다.
‘이런 더위쯤…’이라는 기개로 시작한 두 번째 답사. 하지만, 역시나 날은 뜨겁고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니 뜨거운 태양을 이기기는 쉽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6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산강을 기록해본다.
이번 광주 우수습지 답사는 첨단대교 아래에 있는 거징이쉼터에서 영산강교 하류에 있는 북구 종합운동장까지 다녀왔다. 이곳은 영산강 제5하중도 일대로 담양을 지나 광주로 들어온 영산강이 구불구불 흘러가는 곳이다. 사행으로 흐르는 물길은 유속이 감소하면서 퇴적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습지가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이 구간은 지대가 낮은 탓에 홍수 시에는 침수가 잦아 배후습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행이 만난 ‘거징이쉼터’는 옛날 영산강을 건너기 위한 ‘거진나루’가 있던 터로 거진이 구전되면서 입에 편한 거징이로 불리워졌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2020년 큰 비로 인해 침수되었던 곳을 2023년 북구와 영산강유역청이 ‘거징이쉼터 조성사업’을 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넓은 둔치와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과 자전거길은 주변 주민들이 자연을 만나고,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넓은 잔디밭은 주말이면 캠핑을 위해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지난 달에 다녀온 용산습지와 달리 사람들이 즐겨 찾고, 그만큼 사람의 이용이 활발한 습지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보전’과 ‘이용’이라는 아주 오래된 화두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자신만의 모습을 뽐내는 자연의 생명들
영산강 넓은 둔치를 가득 채운 기생초 군락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노랑색의 꽃잎에 붉은색 무늬를 가진 눈에 띄게 화려한 기생초는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를 닮았다 해서 기생초라 불리웠다는 설도 있고, 기생들이 춤을 출 때 펼쳐지는 치마와 비슷해서 기생초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종으로 하천변에도 한때 경관용으로 활발히 식재가 되었던 꽃이다.
거징이쉼터의 기생초 군락은 식재가 되었는지, 아니면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렇게 무리를 이룬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사이를 파고 들어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는 개망초 군락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망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귀화식물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도시 주변의 빈터나 농사를 짓다가 방치한 땅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산책길을 걸으며 만난 붉은토끼풀과 꿀풀, 낭아초, 뚜껑덩굴…. 여기저기서 ‘나 여기 있다’고, ‘이렇게 살아 있다’고, ‘여기를 보라’고 부르는 몸짓들이 멈추질 않는다.
영산강 물 위에는 노랑어리연꽃이 얼굴을 내밀어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고, 이제 막 나온 듯 붉은 잎의 마름도 보인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여울 위에 서 있는 중대백로와 쇠백로의 모습은 일행의 눈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며 걸으니 모든 경관 하나 하나가 담아가고 싶은 소중한 장면이 된다.
앞서가는 일행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더니 소란스럽다. 무슨일인가 얼굴을 들이미니 누군가의 잘린 꼬리가 꼬물거린다. 줄장지뱀의 꼬리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 한참을 꿈틀대는 꼬리를 보며 뜨겁게 달궈진 산책로에서 누군가에게 쫓겨 스스로 꼬리를 끊고 달아난 줄장지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도마뱀과 줄장지뱀은 언뜻 비슷해 보여 구별이 어려울 수 있는데, 도마뱀의 피부가 미끌미끌한 느낌이라면 줄장지뱀은 건조하고 거칠한 느낌이 든다. 또 줄장지뱀은 눈에서 꼬리까지 등 옆쪽에 흰색의 줄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꼬리를 끊고 달아난 줄장지뱀의 꼬리는 또 자랄테니 다행이다 위안을 하며 나머지 걸음을 재촉해 본다.
강변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파크골프장
일행의 발길이 멈춘 곳은 북구종합운동장.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파크골프장이 있다. 축구장과 야구장이 뜨거운 날씨에 당연한 듯 텅 비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파크골프장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운동을 끝냈는지 일행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도 여럿이다.
이곳 북구파크골프장은 지난 6월 1일에 개장했다. 13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18홀의 파크골프장. 조성 계획 당시부터 습지의 수질정화기능 저하와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훼손, 상습적인 침수로 인한 피해 등 문제 제기가 많았지만 결국 조성이 되었다.
많은 파크골프장이 하천부지에 들어서고 있다. 왜냐면 하천부지는 국공유지로 보상비나 매입비를 들이지 않아도 되니 조성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환경부로부터 국가 하천 부지 점유 허가를 받기만 하면 된다. 강변 습지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면 습지 훼손과 강변 주차장 문제, 수질 문제 등 환경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요구로 파크골프장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또 다른 주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음과 쓰레기, 주차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용해야 하는 하천 부지를 일부 동호인들이 점유하여 사용하는 것은 공익적 차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인데, 벌써 여러 곳에서 이러한 민-민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용, 어디까지 합의할 것인가?
영산강과 습지에 산책로가 있어서 산책할 수 있고, 자전거도로가 있어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탈 수 있고, 파크골프장이 있어 운동을 할 수 있고 참 좋은데, 우리는 강과 습지의 땅을 어디까지 개발하고 이용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아직도 노는 땅이 많다고, 더 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한쪽에서는 이미 많이 훼손되었다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지켜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강을 이용하자는 사람들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강을 보전하자는 사람들도 이용을 아예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보전’과 ‘이용’은 ‘합의’의 문제이다.
강은 행정구역을 나누듯 나누어질 수 없다. 강에 운동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저쪽 구에는 있는데, 저쪽 동에는 있는데, 저쪽 마을에는 있는데, 우리 구에도, 우리 동에도, 우리 마을에도 만들자고 해서 만드는 민원을 해결하는 식의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강은 공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영산강을 전체적으로 보고, 시설은 얼마나 있는지, 어느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지 현황도 파악해야 한다.
주민들과 시민들의 이용 욕구는 어떠한지도 알아야 하고, 영산강과 습지의 가치와 혜택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시민들과 나누고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보전과 이용의 경계, 기준을 합의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는 이 자연을 이용하는데,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우리가 말하는 자연과 사람의 공생과 공존은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지 숙의하고 그 기준을 합의해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다.
박경희 광주전남녹색연합 생태보전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