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성 “언젠가 광주로 다시 올 것”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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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가장 엄지성’
광주 에이스 엄지성이 영국 챔피언십 리그 스완지시티로 이적한다. 고교를 갓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했던 여드름 많던 소년이 어느덧 108경기 20골 8도움을 넣은 리그 대표 공격수로 성장해 유럽 리그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광주 유스 출신 선수라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입단 당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엄지성은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22년 1월,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올해는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나섰다. 광주FC에서 가장 이름난 선수였기에 경기가 끝나면 종종 언론 앞에 섰다. 본인의 활약 여부와 관계없이 패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내 탓’이라고 자책했다. 이겨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항상 모범답안만 내놓는 별로 재미없는 인터뷰이((interviewee)였다.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가도 그의 나이를 떠올려 보면, 애잔해졌다. “2002년생이 이토록 성숙하다고?, 얼마나 부담감이 컸으면 저럴까?”
팬들은 “변변치 않은 집안의 소년 가장” 같다고 그를 측은히 여겼다.
이적에 관한 동상이몽
그에게는 몇 번의 이적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중에 더 좋은 조건을 핑계로, 때론 팀의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이적이 미뤄졌다.
이번엔 달랐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구단에서도 내년이면 자유 계약 선수로 이적료 없이 그를 내줘야 했기에 서둘렀다. 선수도 이적 의사를 강력히 피력했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팀의 에이스를 쉽게 내놓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K리그,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코리아컵을 병행해야 하는 형편인데, 영입은커녕 주요 선수를 잃게 생겼으니 오죽하겠는가.
1부리그 12개 팀이 홈 앤드 어웨이로 총 3번씩 대결을 한 다음, 상위 6개 팀과 하위 6개 팀을 나뉜 뒤, 각각 한 번씩 더 붙어서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K리그 운영 방식을 고려하면 더욱 걱정이 컸을 법하다. 이런 탓에, 엄지성의 이적은 잡음이 참 많았다. 이적 협상 과정이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한쪽에선 헐값에 보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다른 한쪽에선 구단이 선수 앞날을 가로막는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조변석개하던 여론의 향방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엄지성, 너의 꿈을 응원해’
이처럼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고설킨 가운데, 정작 이적을 성사시킨 트리거(Trigger)는 ‘진정성’이었다. 스완지시티는 감독이 직접 나서 그동안 관찰해 온 스카우팅 리포트와 영입 후 활용 계획을 상세히 설명해 선수의 마음을 샀다고 한다. 그와 별다른 교류가 없던 기성용은 기꺼이 중재 역할을 맡아 후배의 기량을 보증해 줬다. 이정효 감독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선수 앞날이 막히면 안 된다고 결국 이적을 허용했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자, 서포터즈가 나섰다. 지난 제주전, ‘엄지성, 너의 꿈을 응원해’ 펼침막과 함께 응원가를 크게 부르며 힘을 실어줬다. ‘이젠 놓아줄 때가 됐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더 이상 그의 꿈을 우리의 핍진한 현실을 이유로 지체시키지 말자는 뜻이었다.
엄지성은 17억 원에 달하는 이적료를 팀에 안기고 떠난다. 구단에선 특별 환송식을 개최했다. 팬들은 따듯한 격려와 박수로 그의 앞날을 축복해 줬다. 엄지성은 “언젠가 광주FC로 다시 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타 팀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는 축구 이적 시장.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처절한 경쟁이 펼쳐지는 한편, 어떤 이는 팀을 구하지 못해 쓸쓸히 프로의 세계를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냉혹한 세계지만, ‘헤어질 결심’은 꿈이라든지 진심이라든지 친절과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도 알게 된다.
비단 축구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를 순수하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진정성이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꿈을 향해 도전해 나갈 희망과 용기를 준다.
김태관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