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감독이 주목한 윤한봉

지난 6월 30일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 상영을 끝으로 13회 광주독립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영화로운 불빛으로 썬텐을’을 주제로 내건 이번 영화제는 개막작 ‘내 이름’을 포함하여 총 28편의 장·단편 작품이 상영됐다. 영화인 조대영 씨가 폐막작인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에 대한 영화 읽기를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주)

 유명 인물을 다룬 영화는 부지기수로 많다. 위인들의 삶은 이야기가 풍부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인물영화의 일반적인 방식은 위인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경우다. ‘간디’(1982, 리차드 아텐보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간디의 일대기에서 중요사건이 연대순으로 연출되고 있다.

 이 방식 말고도 각각의 인물영화들은 영화를 만드는 주체에 따라 제각각의 방법론을 구사한다. 몇 편의 영화만 언급해 보아도 이는 금방 확인 가능하다. ‘청년 링컨’(1939, 존 포드)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다. 링컨은 국가 통합에 앞장섰고,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암살로 생을 마감하며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청년 링컨’은 링컨이 변호사가 되어 재판에서 승리를 거두기까지의 이야기로 국한한다. 노무현을 다룬 ‘변호인’(2013, 양우석) 역시 특정 시기를 연출한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운 7년 동안을 극적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두 편의 영화는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들이다.

 ‘러빙 빈센트’(2017, 도로타 코비엘라)와 같은 방식도 있다. 고흐를 다룬 이 애니메이션은 고흐가 죽고 난 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통합해 고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윤동주를 다루고 있는 ‘동주’(2016, 이준익)는 조금 특별하다. 윤동주가 어떤 인물인지를 또렷이 보여주고자, 비슷한 또래지만 삶의 태도가 달랐던 송몽규를 동등한 비중으로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물영화의 방법론은 제각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인물영화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영화화하는 것이 대세라는 점이다. 그렇다. 간디, 링컨, 노무현, 고흐, 윤동주는 익히 알려진 이름인 것이다.

 인물 영화, 그러나 무명에 가까운

 이에 비한다면, ‘윤한봉’은 무명에 가깝다. 과연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 중에 윤한봉을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럴 만도 하다. 그는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하기 전 광주의 유력한 운동권 인사였는데, 5·18의 현장에서 도망쳤다. 이후 그는 ‘도망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았다. 이런 이유로 그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설령 그를 알고 있다고 해도 부정적인 시각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윤한봉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낸다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쩌자고 김경자 감독은 무명에 가깝고 역사의 현장에서 도망친 윤한봉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독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어림짐작하고 있다. 먼저 윤한봉의 자서전인 『운동화와 똥가방』(한마당, 1996)의 영향이다. 1979년 부마 항쟁과 5·18 당시의 상황 그리고 밀항과 미국에서의 조직 운동, 1993년 귀국과 이후 광주 생활까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1996년에 출간되었다.

 먼저, 책머리를 읽어보자. “나는 나를 숨겨주고 밀항 탈출시켜 준 분들에게 12년 망명 생활과 해외 운동에 대해 보고도 드리고 전두환 노태우 일당의 탄압과 DJ의 중상에 영향을 받아 지금도 나를 경계하고 있는 분들에게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새로 시작할 일의 준비를 위해서 잠시 지난날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윤한봉의 자기 변론이자 자신이 도망자로서 오월 영령들을 의식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운동화와 똥가방』은 5·18의 현장을 도망쳐 살아남은 자로서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다짐한 한 인간의 내면 고백인 것이다. 이 자서전을 읽으며 김경자 감독은 큰 감동과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윤한봉의 기획으로 1989년 북한에서 개최된 국제평화대행진 영상을 만난 것을 들 수 있다. 20분 남짓의 국제평화대행진 영상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가자 백두에서, 오라 한라에서, 만나자 판문점에서, 조국은 하나다”를 외치는 장면과 이들이 백두산을 출발해 판문점에 이르는 동안 북한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행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상을 보고 뭉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김경자 감독도 그러했을 것이다.

 인간 됨됨이·지략가다운 면모 다뤄

 영화가 시작하면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고, 지금도 광주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 ‘광주에 산다는 것은 5월의 멍에를 지고 사는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는 감독의 목소리로 윤한봉을 말하고,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을 통해 한 인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감독의 내레이션과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인간 윤한봉을 종합할 수 있게 된다.

 감독은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 윤한봉과 함께 호흡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관객들은 윤한봉이 ‘민족학교’(1983), ‘한국청년연합’(1984), ‘재미한겨레동포연합’(1987) 등의 단체를 미국 곳곳에 설립했음을 알게 된다. 이 단체들을 만들기 위해 윤한봉은 솔선수범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미국 동포사회에 민족 민주 운동을 펼쳤고, 한국현대사의 비극의 뿌리가 분단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널리 퍼트렸다.

 그리고 관객들은 윤한봉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중에 주목할 것은 ‘똥거름’이 되고자 했다는 대목이다. 윤한봉은 스스로를 ‘합수’라고 칭했다. ‘합수’란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하는 전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윤한봉은 민중의 똥거름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리고 윤한봉이 1989년 국제평화대행진을 기획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성과다. 윤한봉은 미국 한인사회에 민족 민주 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학습의 장을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진행했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피교육자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윤한봉은 ‘평화’라는 화두에 도달한다. 평화의 지속 상태만이 인류가 상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국제평화대행진이다.

 그렇게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백두산 정상에 모여 인류애를 외쳤고, 분단을 넘고자 하는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었다. 국제평화대행진은 윤한봉이 지략가임을 보여주는 예이자, 번득이는 상상력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인터뷰이로 나선 소설가 황석영은 작가인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것을 윤한봉이 상상했다고 언급하며 상상력의 힘을 피력한다.

 윤한봉 7년 넘게 탐구한 결과물

 이렇듯 영화는 12년 동안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행했던 윤한봉의 다양한 업적들과 인간 됨됨이 그리고 지략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는 윤한봉을 추앙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저 담담하게 한 인간을 조명하는 것에서 멈춘다. 그리고 윤한봉의 삶이 버겁고 고달팠음을 드러내는 것도 경계한다. 그저 의연하게 윤한봉의 삶을 중계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윤한봉의 삶을 ‘뜨겁게’ 다루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올바른 태도일 수 있을 것이다. 윤한봉은 크게 웃어서도 엉엉 울어서도 안 되는 절제의 감정을 익히면서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윤한봉은 5·18 당시 “같이 못 죽어서” 속죄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이런 윤한봉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했을 것이고, 이런 그를 조명하는 영화 역시 그의 태도를 존중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가 증언하는 윤한봉은, 스스로를 5월에서 살아남은 죄인으로 여겼고, 5월 영령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며, 그리고 실제로도 살아남은 자의 의무와 실천을 다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를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전달하고 있는 것에 있다.

 이쯤 되면, 김경자 감독이 윤한봉을 7년 넘게 탐구한 결과물인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는 ‘오월 영화’의 영역을 확장한 귀한 예로 남을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