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지역감정 같은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더욱 적대적 감정을 갖거나 하지 않습니다.”
26일 나주 혁신도시에서 취재차 만난 30대 공공기관 직원의 이같은 말이 귓전에 맴돈다.
말투와 억양이 확연히 달라 출신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남이라고 했다. 그래서 경남 어디? 라고 재차 묻자 부산이 고향이고 밀양 등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아하, 그래요?”라고 기자가 반문하며 한마디 더 물었다. 아예 업무와는 관계없는 질문이었다.
“그럼, 광주와 전남지역 인상이 어떤가요? 불편한 점은 없나요? 혹시 정치적 색깔이 거북하다든지?”
이 공공기관 직원은 대번에 답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뭐 지역감정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세대에게 없다고 봐야합니다. 부모님 세대나 있을런지?”
순간 기자는 속으로 실수했구나 했다. 정치적 질문을 해서라기보다 왠지 ‘아저씨 질문’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의 말대로 당대 젊은이들이 전라도, 경상도, 민주당, 국민의힘 같은 데에 별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전라도 어른들’, ‘경상도 어른들’은 정치적 물을 엄청나게 빼야겠구나, 왜 그토록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지? 라고.
지금 광주·전남 젊은이들은 ‘전라도 어른들’의 관심과는 판이한 삶을 희구하고 있겠다는 생각이다.
중장년 세대인 586그룹은 어쩔 수 없이 청년 시절 정치적 삶을 살았다면 지금 세대는 실무형, 비즈니스형 삶을 산다고 할까?
어디든 좋은 곳이 있거나 호기심 가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고 거기서 정보 교류, 공유의 삶을 살며, 이상한 이데올로기적 삶을 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전남도와 광주시는 이런 젊은이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지 묻는다.
올해 1분기에만 전남과 광주에서 청년 인구유출이 5000명을 넘었고, 이는 추세적 증가다. 욕구가 충족된다면 이렇게 많이 떠날 리 없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 문화복지, 이동(교통)이 편한 삶을 뒷받침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이제 어른으로 갓 성장해 젊음을 구가하는 젊은이들 자체의 문제인가 말이다.
‘전라도 어른들’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역 젊은이들이 호기롭게 다닐 수 있게 복합쇼핑몰을 진즉 유치했어야 하고, 이들이 여유롭게 해외로 나가게끔 국제공항 관문을 대폭 넒혔어야 했다.
어른들이 할 일은 하지 않고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그 에너지 낭비처는 어디일까?
나가도 너무 나간 정치성이라는 건 언급한 바고, 아마 강력한 눈앞의 잇속 챙기기도 많은 부분 차지할 것으로 본다.
지자체의 각종 현안사업이 제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상당 부분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지역민의 협조가 안 돼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행정기관을 출입하다 보면 막무가내형 민원인을 종종 본다. 근거 없이 큰소리부터 치고,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공무원을 다그치는 경우다.
최근 전남도 한 공무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민원인이 다짜고짜 와서는 도청 출입증을 달라고 우겨 규정상 그렇게 안 된다는 설명을 1시간 넘게 하느라 진이 빠졌다”라고. 기자는 공무원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빈정 상하게 하는 민원인, 이들에게 시달리는 공직자가 의외로 많다. 요즘에도 꼰대 민원인이 흔하고 영혼이 탁한 지역민이 있어서다.
이런 현상이 개인으로 그치지 않고 집단으로 발현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다.
여기에 위선의 가면을 쓴 정치인이 가세하면 지역 발전 토대는 기대 난망이고 젊은이들의 탈출은 더 빨라진다.(위선의 가면이라고 함은 지역 현안에 소홀하고 자리보전에 급급, 여의도 정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거나 설령 지역 현안을 거든다고 하더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해 가는 경우다.)
엘리트 전라도 부모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빠른 눈치’가 이런 현상을 포착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이곳은 더 이싱 기대할 게 없다. 젊었을 때 어서 떠냐야 한다.” 이런 심리가 기저에서 발동하는 것이다.
요컨대 낡고 과도한 정치성, 꼰대 지역민, 잇속에 눈먼 이, 침묵하며 눈치 빠르게 살길을 찾아가는 엘리트 사이로 젊은이들은 유출되고 이들의 길이 막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무슨 죄인가?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