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기 탈진 지경…선수·관중 보호 필요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K리그는 지난 주말 25R 경기를 끝으로 약 2주간의 휴식기를 갖는다. 폭염과 장마가 이어진 7월 한 달 동안 무려 6경기를 치른 광주FC 이정효 감독은 지난 21일, 대구 원정 경기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여름이 정말 덥다.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무더위에 팬분들이 쓰러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혹서기 경기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실제로, 광주의 정호연 선수는 개막 이후 25라운드 전 경기를 출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뛴 거리만 260km가 넘는다. 특히 6월~8월, 체감온도 30도 씨를 훌쩍 넘기는 잔디밭에서 매 경기 10km 이상을 뛰는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다.
진땀을 흘리는 건 팬들도 마찬가지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관람석에 앉아 2시간 이상 응원하는 것도 갈수록 곤욕이다.
세계 주요 리그가 채택한 추춘제욕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추춘제 도입이 거론된다. 추춘제는 8월 하순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리그를 끝마치는 제도로, 축구 산업을 주도해 온 유럽과 남미 등 주요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추춘제는 여름철 혹서기를 피해 경기를 진행할 수 있어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도 유리하다. 팬들 또한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 리그와의 연계성을 높여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동 아시아 국가가 주도하는 아시아 축구도 추춘제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례로,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엘리트가 추춘제로 전환됐다.
올해 첫 시행되는 ACLE는 우승 상금이 1200만 달러(약 165억 원)로, 유럽챔피언스리그의 2000만 유로(약 300억 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회다. K리그 우승 상금(5억 원)의 30배를 넘는 상금 규모로 인해, 광주FC를 비롯한 K리그 팀들은 ACLE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등 춘추제 시행 국가들은 우승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회 예선이 자국 리그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즌 중반 이후에, 그리고 결선 토너먼트가 선수들의 컨디션이 하락한 동계 훈련 직후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추춘제 도입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겨울철 혹독한 날씨, 잔디 생육 문제, 막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올해 1월, 연합뉴스가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추춘제 도입에 K리그 구단 중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12대 12로 팽팽히 맞섰다. 기업 구단은 찬성 의견이, 재정이 열악한 시민 구단은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추춘제로 전환하면, 리그 경기 수가 줄어들어 스폰서, 중계권료의 하락이 불가피하단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추춘제 도입에 다소 미온적인 게 현재의 분위기다.
J리그 사례 바탕 변화 추진할 때
반면, 우리와 같이 춘추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 J리그는 2026년 8월부터 추춘제 도입을 선언하며 세계 축구의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홋카이도 등 겨울나기가 혹독한 지역은, 돔구장을 활용하거나 겨울 경기 일정을 남쪽지역으로 배정하는 방식 등으로 대안을 모색 중이다.
K리그도 혹서기(7월 초순~8월 중순)와 혹한기(12월~2월)를 피해 연중 리그를 개최한다면 인프라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선수, 팬, 구단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지 않을까.
추춘제 도입은 단순히 시즌 일정 변경을 넘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다.
최근 K리그에서 유럽으로 직행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을 바라보는 팬들의 기대치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PL 스타 린가드 한 명이 리그 전체의 흥행을 견인하듯이, 양질의 선수 수급을 위해서도 추춘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설령, 리그 경기 수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광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단이 여름철 관중 규모가 최저치를 기록한다.
체력이 고갈된 선수들의 경기력도 별로 좋지 못하다. 차라리 쾌적한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경기를 치르는 게 리그 흥행을 위해서도 낫다.
기후 위기가 일상화되는 시대, K리그가 안전하고 즐거운 축구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선택해야 할 때다.
김태관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