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91. 읍참능소화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능소화는 대문 앞쪽과 창고 옆쪽에 있었는데, 2024년 4월에 모두 줄기를 잘랐다. 이후 6월에 창고 옆 능소화는 뿌리를 뽑은 후 복토작업을 했다(위).
능소화는 대문 앞쪽과 창고 옆쪽에 있었는데, 2024년 4월에 모두 줄기를 잘랐다. 이후 6월에 창고 옆 능소화는 뿌리를 뽑은 후 복토작업을 했다(위).

 톱을 손에 쥐니 잠깐 망설여집니다. 약간의 긴장감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듯합니다. 톱을 들고 몇 걸음 걸어 능소화 앞에 섭니다. 접이식 톱이라 톱날이 날카로워 나무 베기에 좋다고, 귀촌했을 때 넷째형님이 주신 톱. 나중에 큰형님께서 보시고는 좋은 톱이라고, 목공용으로도 잘 쓰인다고.

 그래서인지 톱날을 빼기가 망설여집니다. 한번 빼면 돌이킬 수 없는지라. 곰돌이 잠시, 숨을 한 번 몰아쉽니다. 귀촌 이후 7년의 시간. “눈 한 번 깜빡이니 내 한 생이 다 갔구나” 하던데, 화원에서 어린 묘목을 사러 들를 때부터 지금, 여기까지, 파노라마처럼 휙~,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다시 한번 숨을 몰아쉬고는 톱을 쥔 오른손에 힘을 줍니다. 그리고 바로 쭈그려 앉아 왼손으로 능소화 밑둥을 그러쥡니다. 덩굴이 나이가 드니 나무처럼 굵습니다. 톱을 밑둥에 댑니다. 한번 마음먹었던 지라, 곰돌이의 오른손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순식간에 능소화 밑둥이 잘려나갑니다.

 내친 걸음. 대문 옆 선반 앞에 있는 능소화 밑둥을 잡습니다. 이건 창고 옆 능소화를 심은 다음 해에 심었던 건데, 얘는 한 6년 되었나. 생각을 떨쳐 버리려, 얼른 오른손에 힘을 주고 톱날을 능소화 밑둥에 갔다 댑니다. 두 개의 굵은 능소화 줄기가 순식간에 잘려나갑니다.

 일어서는데 잠깐, 어질합니다. 찰나의 틈 사이로 능소화에 대한 회한이 전류처럼 머리를 때립니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쉬고는 톱을 접어 창고에 걸어 두고 방으로 들어와 곰순이에게 말합니다. 능소화 베고 왔다고.

대문 옆 선반과 창고 옆 지붕 위로 능소화 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2022.6.15).
대문 옆 선반과 창고 옆 지붕 위로 능소화 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2022.6.15).

 마속을 베었던 제갈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삼국지의 고사에 울면서 마속을 베었다는 ‘읍참마속’이 있습니다. 사사로운 정보다 대의를 중시한다는 이야기. 요즘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에게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와 인물을 물어보면 물리학 개념을 물어보는 듯한 표정으로, 왜 나한테 이러세요, 하기도 합니다. ‘도원결의’나 ‘출사표’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기도 하니.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도 죽고, 위나라의 조조도 죽은 후 촉의 제갈량이 위를 정벌하려 대군을 몰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이에 맞서 위의 사마의도 대군을 몰고 내려왔습니다. 제갈량은 전쟁에서 중요한 식량을 옮기는 가정 지역을 방비할 장군으로 누굴 임명할까 고민하는데, 이때 절친 마량의 동생 마속이 자청합니다.

 말이 앞선 마속이었던지라 제갈량이 망설이자, 마속은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전투와 병법에 능한 마속이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은 제갈량은 마속에게 가정 지역은 세 면이 절벽이라 기슭에 진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마속이 가정 지역에 도착해서 지형을 살펴보고는 기습에 유리한 지형이라 명령을 어기고 산기슭이 아닌 산꼭대기에 진을 칩니다. 위의 사마의가 이걸 그냥 놔둘 리가 없습니다. 마속을 공격하는 대신 산을 빙 둘러 에워싸 버리고 물을 끊어 버리니 마속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겠지요.

 군사 태반을 잃고 간신히 탈출해 온 마속을 제갈량은 군법을 어겼다며 벌을 내립니다.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나서 말리지만, 전쟁을 물려야 할 상황을 만들었는데, 군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어떻게 통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참하라고 합니다. 마속은 울면서 제갈량에게 절을 하고 끌려나가고 이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제갈량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을 했다고 하지요.

 곰돌이 능소화 밑둥을 자른 지 두 달 후에 창고 옆 능소화 뿌리를 캐는 작업을 했습니다. 능소화가 심어져 있던 창고 옆은, 귀촌 당시, 말 그대로 흙은 하나도 없고 콘크리트 덩이들과 돌멩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걸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그렇게 얼마나 파냈는데, 바닥에 장판이 나왔습니다. 장판을 칼로 자르고 들어냈더니 또 장판이 나오고, 다시 파고 들어내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아, 농담 삼아, 이 정도 깊이면 혹시, 손가락이 나오는 거 아니냐며, 그냥 놔두자고 했던 곳입니다.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집수리를 하면서 나온 쓰레기 더미들을 이곳에 묻어둔 모양이었습니다.

 그곳에 황토와 마사를 섞어 영양도 좋고 물 빠짐도 좋은 화단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심을지 내정되어 있던 능소화를 심었습니다. 골목을 걸어들어오면 대문 지붕 위에서 흘러내린 능소화 가지들 사이로 귤색 능소화들이 반겨주었으면 해서. 능소화 꽃 모양이 나팔 모양 같아 우와, 곰돌곰순이 온다, 하며 소리없이 나팔을 불고 풍악을 울리는 걸 기대했기에.

 능소화는 땅에 심은 이후 놀랍도록 빠르게 덩굴을 뻗쳐 올리더니 금세 대문 지붕 위를 덮었습니다. 덩굴들을 조심스레 줄기 하나씩 고르고 방향을 잡아 앞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대문 지붕 위로 해서 앞쪽으로 흘러내리도록 했습니다. 여름, 가을에 꽃을 피웠는데, 곰돌곰순이 기대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대문 오른쪽 지붕에서도 흘러내리도록 대문 옆 선반 앞에도 능소화를 하나 더 심었습니다.

 그런데 2, 3년이 흐른 뒤, 앞집에서 능소화뿐 아니라 나무들 가지들이 담을 넘어 온다는 말에, 담장 위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능소화 줄기들을 마당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대문 바로 위쪽 지붕으로 해서 아래로 흘러내리게 조정했습니다. 어떻게든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보려는 몸부림이었지요.

 하지만 올봄 초 앞집에서, 아직도 능소화 안 뽑았느냐고, 능소화꽃들이 밭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계속 뽑아내는 것도 힘들다고, 뽑고 다른 거 심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그냥 다른 거 심으라고. 다행스럽게 그동안 곰돌곰순이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왔던지라 앞집에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그럴게요, 하며 대답을 했지만, 곰돌곰순이 마음은 편치 않았겠지요.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의논을 해도 더 이상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울타리도 치고, 줄기 방향도 바꾸어보았는지만, 이웃에 피해를 주면, 그건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냐고. 결국 능소화를 베고, 뿌리를 뽑아 버리고, 다른 걸 심자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대문 옆 선반 앞쪽의 능소화는 앞집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쪽 능소화를 두고 곰돌곰순이 약간의 논쟁을 했습니다. 아무 상관도 없으니 오른쪽 능소화는 그대로 두자고. 하지만 앞집에서도 오가며 능소화를 볼 텐데, 그 능소화가 바람에 날려 또 앞집 밭으로 떨어져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오면 시끄러워지지 않겠느냐고. 결국, 베어 버리기로 했으니 그냥 다 없애버리자고 합의했습니다.

 결정하기까지 어떻게든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려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판단하고 의논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 곰돌곰순인지라 능소화를 베는 결정에 다른 미련은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기쁨과 만족보다 이웃의 피해가 더 중요하기에, 여러 방법에도 소용이 없다면, 기꺼이 베어야지요.

 다만, 몇 년의 세월 동안 심고, 가꾸고, 줄기들이 올라오고, 무성하게 푸른 잎들과 귤색, 주황색 꽃들이 피고 지던 모습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정 이후 잠깐의 숨 고르기가 필요했답니다.

능소화가 있던 자리에 심은 맥문동.
능소화가 있던 자리에 심은 맥문동.

 늘 푸른 맥문동을 심다

 어느 날 곰순이 농원에서 맥문동 한 무더기를 사왔습니다. 그늘진 곳이라 좀 어두웠기에 무얼 심을까 고민을 했더랬는데, 참 적절한 선택이었지요. 추위에도 강해 겨울에도 잎이 항상 푸른 상태이고, 여름철에 피는 가느다랗게 쭈-욱 뻗어서 올라오는 자줏빛의 꽃도 예쁘지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꽃말이 겸손, 인내, 기쁨의 연속. 어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그런 꽃말이 있는 식물을 사왔는지. 곰순이의 선택과 결정을 보면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 늘 배우게 됩니다.

 심어 놓고 보니 그쪽이 환한 느낌이었습니다. 흰담벼락을 배경으로 황토색 대지 위에 피어나는 푸른 맥문동 잎들. 내친 김에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화단에도 맥문동을 심었습니다. 이사 올 때부터 심어져 있던 노간주나무를 기준으로 담벼락까지 화단을 만들었었는데, 노간주나무 가지 때문에 늘 그늘져 있던 곳입니다. 맥문동을 심어 놓고 보니, 화단 전체가 환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곰돌곰순이 가끔 농반진반으로 바로 어제 일인데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며칠 전 일 같기도 해서. 심지어 일주일 일이 마치 몇 개월 전 일처럼 여겨질 때도 있고, 한두 달 전 일이 까마득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현명해서 자신이 살려고 힘든 일은 얼른 잊어버리려고 하고,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려고 한다고 하지요. 여기에 곰돌곰순은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지나간 일을 잘 기억하기가 어렵겠지요.

 맥문동을 벤 지 두 달쯤 지나니, 처음부터 그 자리에 맥문동을 심은 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관하고 있던 사진들을 검색하면서 푸릇푸릇했던 능소화 가지들과 겸손하게 은은한 빛으로 자신을 빛내고 있던 능소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이 바로 어제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가슴 한쪽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이제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보물창고에 보관해 놓고 있던 걸 꺼냈는데, 아직 상처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 글을 보내고 나면, 바로 뒤돌아서서 또 잊어버리겠지요. 그건 잊어버리려는 노력일 테지만, 그러한 과정이 점점 익숙해져서 진짜로 익숙하게 되고 있어, 잊어버리게 됩니다. 다만,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도 “베푼 건 모래에 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 “손해 보더라도 사람을 잃지는 말아라”, “잘못을 했으면 꼭 사과를 해라”, “선공사후(선민사후)”라는 말은 늘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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