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구축의 핵심
윤석렬 정부가 지난 8월1일, 기록적인 폭우로 대규모 수해를 입은 북한에 긴급 지원을 실행하겠다고 북한에 제안했다. 박종술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비롯한 북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북한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밝히면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견지에서 북한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 지원 품목, 규모, 지원 방식 등에 대해서 북한적십자회 중앙위원회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조속한 호응을 기대한다”고 북한에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지난달 27일 폭우로 압록강이 범람하면서 북한의 인근 지역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7월31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압록강 하류에 있는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에서 폭우로 4100여 세대와 농경지 3000정보를 비롯해 공공건물과 시설물, 도로, 철길이 침수됐다고 보도했다. 인명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소집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구체적 피해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이 이번 정부의 긴급 지원 제안을 수락할 가능성은 솔직히 크지 않아 보인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과 그해 10월 북미간 실무접촉 이후 북한은 사실상 남한 및 미국과 대화를 중단하였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상호간의 통신조차 끊은 남북이 전단과 오물풍선을 상대에게 보내는 등 남북관계가 최악인 현 상황에서 인도적 분야의 협력이 재개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난망할 뿐이다.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 홍수로 인한 인명 피해를 추산 보도한 남한 측 언론 내용과 관련해 “적들의 쓰레기 언론들이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는 발언이 보도되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실시한다는 역대 우리 정부의 끊임없는 입장 표명과 정부와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 행위가 중요한 시점마다 남북관계 변화의 모멘텀이 되었었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 북한이 이번 지원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남북관계에 활용할지 아직 속단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 대북 수해지원 제안 “긍정적”
여하튼 금번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 제안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동시에 북한 당국의 긍정적인 화답 또한 기대해 본다. 정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이 아니라, 남북 간 협의를 통한 직접지원 의사를 명확히 하였다. 수해지원의 긴급성을 감안한다면 북한과의 원활한 협의를 통해 직접 지원이 성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수해의 여파는 몇 주,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긴급지원 뿐 아니라 보다 중장기적인 협력과 지원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더불어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 경색을 고려할 때, 당장 남북 간 직접 협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북측 수재민들에게 도움이 닿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남북 당국 간 직접지원은 물론, 민간 차원의 지원, 해외동포를 통한 지원,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등 모든 채널을 열어 놓아야 한다.
특히 민간 차원의 인도지원 활동에 대한 윤석렬 정부의 부정적 태도는 이번 정부의 수해지원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고 있다. 정부가 보다 진정성과 책임감을 갖고 이번 제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한다면 적십자사와 통일부의 제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북한에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북한 수재민에 대한 긴급지원을 위해 북한주민접촉신고를 제출한 민간단체들의 접촉신고를 조건없이 수리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 당국도 그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활동해 온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측 주민과 다시금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해 주어야 한다.
섣부르고 거친 발언들 자제해야
지난 2019년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다. 남북 간 모든 대화 채널이 끊어지며, 한 순간의 오해와 오판으로 인한 우발충돌의 위험마저 높아져 있다. 대화의 단절, 우발충돌의 위험, 남북관계 경색 장기화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다. 과거 남북은 최악의 자연 재해를 새로운 관계 수립의 기회로 만든 경험을 갖고 있다. 그 협력의 경험을 되살려, 남북 공히 겪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하고, 더 나아가 다시금 화해와 협력을 얘기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관계 개선이나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사업들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득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간 합의사항을 준수하고 교류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성과와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정부와 민간의 몫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두 개의 축으로 달성 가능하며, 정치·군사적인 신뢰구축이 그 하나라면 각 분야의 다양한 남북 교류협력이 또 하나의 축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큰물피해와 기근을 돕기 위한 민간의 인도지원 활동이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듯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다시 우리 민간단체들의 힘으로 돌파해 낼 수 있도록 ‘낙관적 의지’를 가지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평화는 교류협력의 지속적 상태에 다름아니다. 교류와 협력만이 한반도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열쇠이며, 교류와 협력은 압박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외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덧붙힌다면 이번 제안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대한 윤대통령의 철학과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북한이 이번 제안을 받지 않더라도 “북한에 1원도 안준다” “통일부가 대북지원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등의 섣부르고 거친 발언들이 자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현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현실적인 방법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것을 역사는 가르켜주고 있다. 우리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신뢰관계를 회복해 남북 관계를 다시 복원해야 할 것이다. 전단 풍선과 오물 풍선 만이 오가는 한반도의 하늘을 이번 폭우가 강타한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