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보성 오봉산 (344m)
변화무쌍한 조망과 암릉, 계곡까지 ‘점입가경’
강골마을 문화탐방까지 즐길 수 있어

암릉지대.
암릉지대.

 보성지역은 이순신 장군에게 의미가 남다른 땅이다. 1597(선조 30년)년 7월 16일(이하 날짜 모두 음력)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 100여 척이 왜군에 의해 궤멸되었다. 이후, 8월 3일 이순신은 백의종군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모진 고문에 의해 지친 몸이었지만 장군은 구례와 보성을 거쳐 조선 수군 재건을 위한 약 450km 대장정을 시작한다. 장군이 조양창에서 물자를 확보하고 13척의 판옥선, 그리고 병력을 정비해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 바로 보성이었다. 장군은 이를 기반으로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일본의 배 133척을 격파하며 대승을 거둔다. 이순신은 물자를 확보했으니 싸울 수 있는 수군水軍이 필요했다. 그때 한 장수가 “백성들이 산속에 숨었다”며 “오봉산五峰山(344m) 칼바위 아래에 있는 천연동굴은 족히 100명이 숨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산에서 내려온 백성들은 명량해전 승리의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칼바위.
칼바위.

 오봉산은 득량만 바닷가에 접해있는 바위산이다. 다섯 개의 봉우리를 지녔다는 뜻은 그만큼 산의 굴곡이 크다는 것이다. 규모만 작을 뿐 암릉과 계곡, 폭포 등 명산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오봉산의 포인트는 칼바위와 용추폭포다. 칼바위는 독수리 부리처럼 날카롭게 생긴 모양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인다. 용추폭포는 20여m 높이에서 산삼 뿌리처럼 물줄기가 떨어진다. 오봉산 바로 옆의 작은 오봉산(284m)도 걸출하다. 형제처럼 마주 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오봉산의 석질은 점판암(slate, 시골집 구들장 용도)이 주층을 이루고 있지만 작은 오봉산은 역암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오봉산은 빤한 풍경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포물선 형태를 이루는 등산로는 위치마다 조망이 다르다. 또한 경치 좋은 곳과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3~4m 높이의 돌탑이 세워져 있어 석탑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돌탑은 군에서 지원해 개인이 쌓았다고 한다. 납작한 방돌로 정교하게 쌓여있는 돌탑은 하산지점까지 50개 가까이 세워져 있다.

용추폭포.
용추폭포.

 작은 오봉산의 매력은 오목조목한 암릉의 조화에 있다. 암벽 아랫부분이 깎여 있는 니치(niche) 지형과 구상풍화球狀風化의 절정을 보이는 장구바위, 누에바위, 외계인바위 등이 마치 미니어처(miniature) 전시장 같다. 득량역 뒤에 있는 방죽안 마을에서 하작마을 오봉사五峰寺까지 쉬엄쉬엄 걸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봉산은 들머리를 어디에서부터 잡느냐에 따라 걷는 정도가 달라진다. 용추폭포를 기점으로 하면 편안하고 여유롭다. 반면 득량남초등학교에서 출발하면 계속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어느 위치에서나 바다와 암릉이 빚어내는 해벽 풍경은 감탄사 연속이다.

돌탑지대.
돌탑지대.

  광활한 간척지, 득량만 앞바다가 한눈에

 우리는 남초등학교 코스를 선택했다. 학교 정문 앞에 산행 개념도가 있다. 언덕을 5분 정도 오르면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부터는 구들을 깔아 놓은 것처럼 넓적한 돌들이 널려있다. 이정표에서 20분 후부터는 왼편으로 광활한 간척지가 펼쳐지며 정상 버금가는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득량만 간척지는 전라남도 최대의 간척지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득량 금능에서 고흥군 대서까지 8km 바다를 막은 뒤로 거대한 농토가 생겼다. 고흥반도 일대 섬들을 비롯해 일직선으로 뻗은 득량만 방조제와 조성면 일대가 훤히 보이고 그 뒤로 호남정맥 방장산(532.9m), 주월산(556.9m) 벌교 존제산(712m)이 힘차게 지나간다.

정상 조망대.
정상 조망대.

 등산로 잘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도 양호하다. 한껏 내려갔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지만 바다가 주는 몽환적인 풍경 덕분에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작은 삼각점에서 5분 정도 지나면 굴 따는 도구인 ’조새‘를 닮은 조새 바위가 있다. 다시 20분 정도 지긋하게 걷다가 급 경사면 위에 거대한 암봉을 만난다. 코끼리의 등 같은 낭떠러지와 돌탑, 바다, 간척지가 빚어낸 한 폭의 그림이다. 키 작은 숲을 10분 가량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 보면 바닷가 쪽에 체육관 지붕같이 보이는 건축물이 보인다. 비봉리 공룡알화석산지 박물관이다. 이 근방은 8500만 년 전 초식공룡의 알 200여 개가 발굴되어 학술적 가치가 큰 곳이다.

 30여 분 더 가면 철계단이다. 너덜지대와 비슷하게 방돌이 많다. 오봉산 방돌은 웬만한 아궁이 불길에도 튀지 않아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노출된 바위에서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 묻힌걸 쪼개서 캤다고 한다. 공기 중에 드러난 구들을 방돌로 쓰면 불을 맞아 곧 터져버렸지만 흙에 깊이 묻힌 것은 불을 견뎠기 때문이다. 칼바위로 내려가는 갈림길은 채석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돌조각 지천이라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거대한 암벽을 만나 우측으로 돌아가면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고, 칼바위는 왼쪽 안내문을 따라간다. 동굴 같은 통로를 들어서면 하늘이 열려있고 성인 60~70명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암벽에는 마애불이 희미하게 음각되어 있다.

열화정.
열화정.

 칼바위의 위용은 능선에 올라서면 알 수 있다. 거대한 판석이 3개로 날카롭게 쪼개진 모습은 보기에 따라 버선 같기도 하고 익룡이 날아 갈듯한 모양이기도 하다. 칼바위를 조망하는 청암마을 분기점에서 오봉산 정상까지는 1.5km가 남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푹신한 촉감의 오솔길이다. 굴참나무, 철쭉 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판석이 비스듬히 누워있어 오래 머물기는 어렵다. 근처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고흥반도 두방산, 팔영산까지 조망된다. 여러 기의 돌탑은 모양이 다양해서 구도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용추폭포, 탁족을 즐길 수 있는 넓은 바위

 용추폭포는 움푹 팬 계곡 막다른 곳에 있다. 암반계류 바닥이 고르고 깊지 않아 수십 명이 앉아 탁족을 즐길 수 있다. 이제는 긴장을 풀어도 되는 하산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협곡 좌우 석벽의 위용이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웅장하다. 용추교를 건너 임도를 따라 1.4km 정도 더 내려가면 주차장이다.

보성 오봉산 개념도.
보성 오봉산 개념도.

  ▲산행길잡이

 득량역-방죽안 마을-작은 오봉산 정상-암릉지대-외계인바위-하작마을-도로-득량남초교-

 조새바위-262봉-암릉지대-칼바위-오봉산 정상-용추폭포-주차장(12.2km 6시간 20분)

 득량남초교-조새바위-암릉지대-칼바위-오봉산 정상-용추폭포-주차장(7.2km 4시간 10분)

 ▲볼거리

 400년을 지켜온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廣州 李氏) 광원군파(廣原君派) 씨족마을이다. 민속촌처럼 대대적인 개발의 바람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과 운치 있는 탱자나무 고샅길이 그대로 살아 있다.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이금재 가옥, 이용욱 가옥, 이식래 가옥, 열화정悅話亭 등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열화정은 김용균 감독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명성황후가 입궁 하기 전 사가私家로 나온 한옥집으로, 주변 조경이 아름다워 영화나 드라마 단골 촬영지로 자주 이용된다.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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