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원로인 올해 일흔여섯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아직도 여야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쓴소리를 던진다.

 그는 낙천적인 호인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모진 고문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는 ‘하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미친 놈들, 그게 무슨 사형감이냐.” 방청석에서 졸고 있던 모친은 정작 아들의 선고 내용을 듣지도 못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때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도 가끔 졸았던 것을 보면 졸음도 유전인 듯하다.

 2016년 공천에서 ‘컷오프’되자 “저의 물러남이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깨끗이 승복했다. 구차한 것을 싫어하는 성품 탓이다.

 유 전 총장이 민주당 전당대회를 겨냥, 한마디 했다. 이재명 후보로선 정봉주 후보가 수석 최고위원 되는 걸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정봉주는 ‘미권스’(정봉주와 미래 권력들)라고 민주당에서 제일 큰 팬덤을 거느렸던 친구이고 이 후보보다 나이로도 좀 위이기 때문이다.”

 ‘BBK 주가조작’ 발언으로 기소된 정 후보는 2011년 12월, 징역 1년을 확정받고 홍성교도소에 수감됐는데 당시 전당대회에 나오려는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 모두 홍성으로 ‘접견’하러 갈 정도로 실제 팬덤이 막강했다. “그때 정봉주를 ‘알현’하려고 하면 안민석, 정청래 이런 친구들이 나서 교통 정리를 했다.”

 유 전 총장은 이어 “최고위원 후보들이 다 힘껏 뛰게 자유 경쟁의 판을 만들어줘야지, 자꾸 개입하는 게 확장의 길은 아니다”라며 “누가 1등이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그거(대표 옆에) 앉나, 저기 앉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일갈했다.

 # 유 전 총장이 워낙 큰 판만 봐서 그런지, 이 대목에서 필자의 시각은 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재명’은 지금 변신하고 있으며 김민석 후보를 대놓고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오는 18일 탄생할 ‘2기 이재명 대표’는 ‘중도 확장’으로 타깃을 바꾸려 할 것이다. 물론 2027년 3월 3일로 예정된 21대 대선 승리를 위해서다. 총선에서 비명계를 정리했고, 당권도 압도적으로 장악하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1기 목표를 거의 달성했기 때문이다.

 ‘1기 이재명 대표’의 위상은 안팎으로 불안했다. 그래서 정청래 의원을 수석 최고위원으로 지원했고 정청래는 이재명의 정치적 호위무사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곧 시작될 2기는 이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재명은 그 적임자로 김민석을 낙점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0일 지지자들 앞에서 “왜 이렇게 김민석 표가 안 나오냐”라고 반문했고 그때부터 김민석은 정봉주를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이재명은 당 정책위의장에 김민석을 발탁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민주당 정책 르네상스 10대 방향’을 발표했는데 역대 민주당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주 내용이었다.

 김 의원은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을 북핵이 존재하는 현재의 관점으로 진화시켜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을 재정립하겠다”며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정책 등 과거 민주당 정부 실책을 자성하고 이승만·박정희·노태우 정부의 정책도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파격적 중도 확장 어젠다에 이재명 대표가 크게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눈길을 끈 이재명의 몇가지 정책 스텐스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김민석의 예리한 정세 분석력을 인정한다. 정몽준의 ‘국민통합 21’ 합류와 피선거권 상실 등 2002년부터 시작된 18년간의 길고도 파란만장한 원외 시절 가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돌아보면 그의 정국 전망은 별다른 오차가 나지 않았다.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김민석은 전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배후 조종 등의 혐의로 3년간 징역을 살았다.

 수감 중이던 1987년 작은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으로 귀휴조치를 받았고 이때 조문객으로 찾아온 김대중과 첫 대면을 한다. DJ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던 시절인 2000년 그를 새천년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각별히 챙겼다.

 민주화운동 경험이 없고 민주당 뿌리인 ‘동교동’과도 이렇다 할 고리가 없는 이재명으로선 김민석의 상징 자산이 필요할 수 있다.

 김민석이 이대로 수석 최고위원이 된다면 2001년 당내 대선 후보 여론조사 2위, 2002년 38세 여당 서울시장 후보 이래 제2의 정치적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무려 22년 만에 찾아온 기회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역사상 유례없는 ‘사당화 논란’으로 견고한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있다. 입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의 ‘민주당’과 ‘이재명’으론 정권 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과연 김민석이 이재명의 기대대로 정권교체를 위한 중도 확장 전략에 일정한 성공을 거둬 자신의 이름값을 할 것인가. 차기 대선정국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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