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92) 새끼 냥이들의 시간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이른 봄 셋째가 새끼들을 데려와서, 옥상에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한재골을 가지 않고 옥상에서 운동하러 올라간 어느 날 셋째가 박스로 만들어준 집 앞을 지키며 곰돌곰순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고는, 새끼들을 데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 밤 늦은 시간이나 이른 아침 옥상을 뛰어다니는 새끼냥이들의 발소리가 시끌시끌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모두 네 마리였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옥상에서 마당으로 내려와 뛰어다니면서 잡기 놀이하며 잘 크고 있던 새끼들이 6월말 갑자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이구, 셋째가 새끼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구나. 이런 경험이 몇 번 있다 보니 곰돌곰순은 새끼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름도 못 불러보고 헤어지게 되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간격으로 새끼들이 한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엥, 새끼들이 스스로 어미나 집을 찾아서 돌아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곰돌곰순이 신기해 하면서도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겠지요. 가만히 보니 셋째가 어느 새 임신을 했네요. 어이구, 새끼들이 아직 어린데, 그래서 일찍 독립을 시키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구나. 근데, 새끼들이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찾아왔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한두 주 지나 새끼들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점박이 무늬 냥이는, 밥을 주어도 모두가 겁을 먹고 멀찍이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제일 먼저 다가와서 먹고, 조금 익숙해져서 손으로 안아 들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용감한 냥이라는 뜻을 가진 ‘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적극적인 만큼 많이 먹어서 새끼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큽니다. 하얀 바탕에 등쪽만 호피 무늬를 가진 냥이는 가냘프고 약해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용이처럼 조금씩 다가오기도 하고, 먹을 때 쓰다듬으면 조금만 물러설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크라고 ‘강이’라고 했습니다.
호피 무늬 새끼들은 두 마리인데, 구분하려고 그렇게 관찰을 하고 연구를 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냥이들보다 둘이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해서, ‘쌍둥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지어준 후 한 달여가 훌쩍 지난 최근에서야 얼굴 윤곽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커 가면서 점점 개성이 드러나고 있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듯이, 냥이들도 그러는 거 같습니다. 용이, 강이, 쌍둥이라고 지어놓고, 날마다 밥 줄 때나 간식 줄 때 보면, 진짜 이름대로 특성들이 드러나는 거 같습니다. 그럴 때면 곰돌곰순은, 우리들이 이름을 아주 잘 짓기는 해, 하면서 또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깻잎이를 닮은 새끼들
셋째가 새끼들을 데려온 즈음 깻잎이도 새끼들을 데려왔습니다. 세 마리였는데, 지금은 두 마리입니다. 마당에 갑자기 새끼들이 많아져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는 현관문을 열면 순식간에 토방 여기저기로 몰려들고, 저녁에는 마당에 한두 마리만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토방을 점령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그런데 셋째 새끼들과 깻잎이 새끼들이 노는 마당이 다릅니다. 셋째 새끼들은 너른 앞마당이 자신들의 구역인데, 깻잎이 새끼들은 왼쪽 샘과 텃밭 주변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어찌 보면 셋째가 먼저 새끼들을 옥상에서 마당으로 데려왔기 때문일 수도. 깻잎이는 뒷집에서 넘어오는 담 바로 앞쪽을 주 무대로 살다 보니.
하지만 깻잎이네가 꼭 작은집 살림을 하듯 눈치를 보는 거 같아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집사들 눈치보랴, 엄마인 셋째네 가족 신경쓰랴, 온 마당을 마음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는 거 같아서요. 간식으로 새끼들을 앞마당으로 유인해 보아도 도망가거나 멀찍이 물러서 숨거나 지켜보기만 할뿐 도무지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깻잎이가 아무래도 첫 새끼들이다 보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매였던 깻잎이와 양이가 얼마나 집사들을 멀리하는지는 이전(87화)에 말 한 적이 있는데, 깻잎이는 새끼들을 기르고 있는 지금도 새끼 때 밴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 식사 시간에 토방으로 몰려드는 냥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가도 집사를 피해 숨어 있다 몰래 나와 얼른 먹고는 들어가고는 합니다. 집사들이 보이지 않아야 편히 나와서 먹을 정도이니.
깻잎이 새끼들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다른 새끼들이 토방에 올라와 식사할 때도, 근처 밭이나 주변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집사들을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요. 엄마를 닮아 여간해서는 집사들 곁으로 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부모 따라간다더니, 딱 그 격입니다. 옥상에서 운동을 하다 토방을 내려다 보면, 깻잎이 새끼들도 식사를 하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관찰하기가 어려워서인지 그래서 이름도 늦게 짓게 되었습니다.
한 마리는 몸 전체적으로 하얀 바탕에 꼬리만 유독 검어서 ‘꼬미’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고등어 무늬인데, 셋째 새끼들인 ‘쌍둥이’와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 자세히 관찰해보니 쌍둥이를 닮긴 했는데, 무늬 색깔이 더 거무스름하면서도 선명했습니다. 그래서 ‘깸둥이’라고 이름 지어주었습니다.
새끼 유기묘 ‘까망이’
6월경 셋째가 새끼들을 대문 안쪽 선반으로 옮겨 지내고 있을 때입니다. 늦은 저녁 시간부터 이른 아침까지 새끼 냥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끊어질 듯 가느다라면서도 얼마나 처량하게 울어대던지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습니다.
셋째 새끼들 중 한 마리가 많이 아파서 그런가 싶어 가까이 가보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돌아와 한참을 있으면 다시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웃들도 저 소리를 들을 텐데, 하며, 냥이 걱정, 이웃들 걱정을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오전 선반에서 지내던 셋째 새끼들이 온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노라니 아파 보이는 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누가 그랬을까, 하는데, 선반쪽에서 또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가까이 가면 멈추고. 그래서 옥상에 올라 가만히 내려다보니, 세상에, 까만 새끼냥이가 선반 밑에서 나와 텃밭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울었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 곰돌곰순이 많이 놀랐답니다. 셋째가 밖에서 낳은 새끼인가, 아니, 그러면 셋째가 케어했겠지, 그럼, 깻잎이 새끼가 한 마리 더 있었나, 아니, 그럼 자기 엄마한테 가지, 왜 선반 밑에서 밤새도록 저렇게 울고 있어.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반 앞에 사료를 놓아두기도 하고, 닭가슴살과 쭉쭉이로 유인을 해 보기도 하고, 토방으로 유인을 해도 울기만 하지 도무지 먹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혹시 버려진 게 아닐까. 누가 새끼를 버려. 혹시 어떤 어미가 새끼를 독립시키려고 우리 집에 놓고 간 게 아닐까. 사람이 그럴 리는 없잖아. 괜찮은 추리같기도 해서, 알아 보니, 어미 냥이가 자기 새끼를 케어해 줄 집사를 선택하기도 한답니다. 자기야, 그럼, 우리가 엄마 냥이한테 선택받은 거야, 그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새끼 냥이를 받은 거네, 하며, 그렇게 또 웃었겠지요.
그런데 도무지 집사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어찌나 빨리 달려서 숨어 버리는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켜보니 자기도 살겠다고 그러는지 토방에 올라 사료도 먹고, 샘으로 가서 물도 먹고 그랬답니다. 다행스럽게 한 달여가 지나니 다른 새끼들과 같이 뛰어다니면서 잡기 놀이도 하고, 식사 때도 함께 어울려서 밥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미한테 그루밍을 받지 못하니 근처에 오면 냄새가 심했습니다. 어휴, 씻기지도 못하고, 약도 먹여야 하는데, 큰일이네, 저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날마다 지켜보면서도 곰돌곰순이 걱정이 좀 많았겠지요. 다른 새끼들은 이제 스스로 그루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마 좀더 시간이 지나야 본능적으로 스스로 그루밍을 하려나 봅니다.
집사들하고도 친해져서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쓰다듬거나 안아 들면 가만히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아직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몸부림을 치는데, 그때 다치기도 하지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처음 올 때부터 입에 붙었던 ‘검은고양이 네로’라고 이름 지어주자고 했는데, 곰순이 다른 이름으로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부르기 쉽게 ‘까망이’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름을 부른 이후부터인지 몰라도, 갈수록 더 의젓해 보이고 점점 태가 보입니다. 턱시도 냥이의 표본처럼 보이고 얼굴에서 포스가 느껴집니다. 곰돌곰순은 이 집에 처음 발길을 한 듬직했던 ‘검냥이’처럼 그렇게 컸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아직은 새끼들 중에서 가장 작고 약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새끼들을 위해
셋째 새끼들인 용이, 강이 쌍둥이도, 깻잎이 새끼들인 꼬미와 깸둥이도, 그리고 곰돌곰순이네 품으로 보내진 까망이도, 모두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요. 자고 일어나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신세계일지,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또 얼마나 새로운 날의 연속일지.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그러했고, 그리고 귀촌한 곰돌곰순이 경험하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그러니까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늘 이 하루, 이 시간.
이 시간이 지나면 새끼 냥이들도 독립을 하겠지요. 그리고 한 번도 오지 않거나, 한두 번 오거나, 자주 오거나, 아예 집냥이처럼 살거나 하겠지요. 새끼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새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겠지요.
다만, 지금, 이 시간에 곰돌곰순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한 듯합니다. 새끼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살고 있는 거처럼, 곰돌곰순이도 오늘 하루 우리들의 시간을 살면 되는 거겠지요.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