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서중·일고와 고대법대를 나와 1969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뛰어다닌 임채정 전 국회의장.

 1975년이라면? 맞다. 유신정권을 강타한 동아일보 사태가 일어난 해다. 그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앞장서서 저항했고 해직당한다.

 광주항쟁 이후엔 문익환 목사 등이 이끌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상임위원장 등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다 1988년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에 입당한다.

 ‘민통련’은 1985년 김근태의 민청련 등 25개 재야 단체가 총결집, 제도권 정당 이상의 위상과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었다. 고문단이 무려 함석헌 김재준 지학순 등이었다.

 임 전 의장이 90년대 중반 어느 자리에서 필자에게 건넨 말이다.

 “서울 노원을에 출마한 13대 총선 때, 그래도 민통련 상임위원장 출신이라 유권자들이 좀 알아볼 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더라고...” 그는 낙선했고 14대 총선에서 재검표 끝에 신승했다.

 아무리 5공 정권에 비판적 유권자라도 민통련 간부가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임채정’은 운동권이나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 고관여층 사이에서만 돌던 이름이었다.

 # 광주 광산을에서 재선을 한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안타깝게 탈락했다.

 ‘이낙연 대세론’이 호남을 휩쓸던 2021년 초, 민 의원은 광주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주·전남 현역 의원 중 최초로 ‘이재명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이 인터뷰는 지역 정가에 충격을 던졌고 이낙연 전 총리 지지자들의 항의로 한때 지구당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른바 ‘검수완박’ 정국에서 단행된 탈당 역시 비판적 여론도 거셌으나 민 의원 입장에선 ‘당을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복당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

 그런 민 의원이 최고위원단에 들지 못했다. 호남, 특히 광주·전남 정치 이슈가 더 이상 전국 단위 화제로 부각되진 않는다는 증거다. 민형배가 걸어온 길을 타 지역 민주당 지지자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제 1야당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광주·전남 지지자들로선 당혹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선거 기간 상당수 지역 언론이 ‘민주 광주시당 당보’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평민당이 창당된 1987년 이래 37년간 호남은 민주당의 모태이자 아성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런데 80, 90년대 내내 민주당과 지지자들의 비원(悲願)은 ‘전국 정당화’였다. 특히 호남의 열망은 더 강렬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은 정말 전국 정당으로 단단하게 성장했다.

 어느새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권에 들지 못하는 지역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만큼 민주당은 당세가 커졌고 당원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민주당의 덩치가 1987년의 평민당에 비해 몰라보게 커진 것이다. 특히 수도권은 인구가 가장 많아 다수의 당원이 몰려있다. ‘민주당은 수도권 정당’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이와 함께 민주당의 조직과 논의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수권정당을 위해선 불가피한 변화일 것이다. 수도권에 산재한 평민당 이래의 고참 당원들 위상도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다양한 영역의 젊은 당원들이 대거 민주당의 문을 두드린 탓이다.

 이젠 민주당과 호남이 좀 더 ‘성숙한’ 관계로 재정립돼야 할 차례다.

 호남 몫 최고위원이라는 말 자체가 ‘지역당’ 시절의 레토릭일 수 있다. 호남에 절실한 지역 발전 방략 역시 정치권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전국 정당이다. 소외, 낙후라는 이유만으로 ‘알아서’ 특정지역에 자원을 집중시켜 줄 순 없다. 광주시와 전남도,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명분과 지혜를 짜내야 한다.

 물론 링커 역할을 할 큰 정치인은 필요하다. 광주·전남에서 대선후보와 당대표 최고위원 등을 만들고 싶으면, 충청이나 부산·경남처럼 될성싶은 인물을 여야 가리지 말고 키워야 한다. ‘싹쓸이’와 ‘물갈이’가 능사는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 수도권 향우들도 호남과 언제나 이해가 일치하진 않는다. 향우들의 2, 3세는 정서적으로 이미 수도권 유권자다.

 성인이 된 자녀를 놓아주지 못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 ‘의대생 학부모회’같이 남들 보기 민망할 뿐이다. 호남이 키운 민주당이 ‘대견할 정도로’ 성장했듯 호남의 품과 시야도 더 넓어질 때가 됐다고 본다.

 1987년 김대중의 ‘조선대 10만 집회’와 광주·전남 노사모가 일으킨 기적의 ‘광주 경선’, 그리고 문재인의 ‘우다방 번개’도 이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고즈넉한 저녁, 문득 떠오르는 추억일 뿐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한 민 의원의 투혼에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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