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55)지리산에서 천년만년 살까? 왕괴불나무
괴불주머니 노리개와 비슷하게 생겨

왕괴불나무.
왕괴불나무.

 향기가 그윽하다.

 이 꽃을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을 이끄는 것은 꽃잎 모양도 새잎도 줄기도 아닌 코끝에 느껴지는 냄새다. 자주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자라는 왕괴불나무이다. 꽃이 인동꽃처럼 길게 피어나 눈길을 끈다.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는 서로 합쳐져 보는 이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8년째 지리산국립공원 심원계곡 복원지에서 만난 왕괴불나무는 꽃 피는 시기를 맞추지 못해 초록색으로 익어가고 있는 열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국내 분포역이 특이한 식물로 복원이 진행 중인 심원계곡 복원지는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곳이라서 더 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계곡물을 건너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으니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번 여름 조사(8월)에도 계곡물이 넘쳐서 빨간 열매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보려면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그리움을 키워야만 가능한 일이다.

왕괴불나무.
왕괴불나무.

 왕괴불나무는 꽃 모양이 옛날에 아이들이 차고 다니던 괴불주머니라는 노리개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정한다. 우리나라에는 30여 종이 있는데 올괴불나무, 길마가지나무, 청괴불나무, 왕괴불나무 등이 있다.

 올괴불나무는 분홍색의 꽃이 피고 진한 자주색 꽃밥을 가지며 열매가 완전히 분리된다. 반면 길마가지나무는 아이보리빛의 꽃잎과 노란색 꽃밥을 가지며, 열매 밑부분이 붙는다. 청괴불나무는 새 가지가 갈색 또는 붉은색이고 털이 없는데, 왕괴불나무는 연한 녹색이며 선점이 밀생하므로 구별된다. 이들 중 왕괴불나무는 꽃과 열매가 크다고 해서 ‘왕’를 붙여서 지어진 이름이다. 인동과에 속하며, 생육지가 적은 희귀식물이다. 관상 가치가 높은 생물자원이라 해외로 잎 한 장 반출 못 하는 국외반출 승인대상이다.

왕괴불나무.
왕괴불나무.

 생태적 특징은 숲속에 드물게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다. 줄기는 속이 흰색으로 꽉 차 있으며, 높이 2~3m 정도로 자란다. 잎은 마주나며 잎끝은 길게 뾰족하고 밑은 둥글거나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잎 뒷면은 샘점(냄새 나는 물질을 분비하는 점같은 조직)이 있고 연녹색이며 맥 위에 털이 밀생한다. 꽃은 5~6월에 새가지 밑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난 꽃자루 끝에 2개씩 달리며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열매는 2개가 가운데까지 합쳐지고 7~8월에 붉게 익는다. 나무껍질은 오래되면 긴 조각들이 벗겨져 나무가 매끈해지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 전북, 제주도 등에 자생하며, 일본에 분포한다.

 인동과에 속한 괴불나무 종류를 구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왕괴불나무, 괴불나무, 청괴불나무, 각시괴불나무, 섬괴불나무, 올괴불나무, 길마가지나무, 홍괴불나무, 흰괴불나무, 구슬댕댕이나무 등 이 식물들을 꼭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이름만이라도 불러줘도 의미가 크다. 지금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자연 속에서 그들을 알아준다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않겠는가? 특히나 보기 드문 왕괴불나무가 “지리산에서 천년만년 살까?” 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그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심원계곡 복원지 연구팀.
심원계곡 복원지 연구팀.

 이제 제법 왕괴불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심원계곡과 노고단 훼손복원지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광주폭염 35도 속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심원계곡과 노고단 정상부는 약 20도로 산오이풀과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비록 장마철 계곡물이 넘쳐서 왕괴불나무의 매력적인 빨간 하트모양의 열매는 볼 수 없더라도 국립공원공단 조사단들과 함께 모니터링 조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지리산심원계곡 복원지 합동조사단.
지리산심원계곡 복원지 합동조사단.

 사실 지리산국립공원 심원계곡 복원지(2013∼2017년)는 오염 문제 심화와 자연경관 훼손에 따라 마을을 이주(22가구, 건물 55동)하고 복원사업(7만 3941㎡)을 시행한 곳이다. 현재 복원공사 이후 8년이 경과 한 심원계곡 복원지는 모니터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숲이 빼곡이 우거졌다. 이는 국립공원공단 조사단뿐만 아니라 숲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도 자연천이 교과서와 같은 최적의 현장실습 장소이다. 향후 스위스국가공원처럼 100년 이상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여 숲의 천이를 연구할 수 있는 훼손 복원지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최초 노고단 복원실험구(오구균, 1992).
최초 노고단 복원실험구(오구균, 1992).

 다음으로 노고단 정상부 복원지는 오구균 교수(전 호남대)가 1992년에 우리나라 최초 복원 실험구를 설치하여 32년이 경과 한 곳이다. 이곳은 32년 전만 해도 텐트 치고 야영했던 벌거숭이 황무지 땅으로 훼손이 심각한 곳이었다. 게다가 주변 일대는 헬기장과 군부대, 방송통신시설 등 자연경관 훼손이 심각한 지역이었다. 이후 복원공사 후 이제 제법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고단 정상부의 열악한 환경과 바람 피해로 앞으로 털진달래, 철쭉 등 주변 숲과 비슷한 수준으로 식생이 회복하기까지는 100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 안내시설과 생태탐방교육을 통해 보호지역의 보전과 복원에 대한 전 국민의 인식 전환의 계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생물다양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거진 복원숲.
우거진 복원숲.

 한번 숲을 파괴하면 다시 회복하는 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특히 보호지역을 훼손하는 것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인류멸망의 빠른 지름길이다. 이제 국제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2030년까지 30% 보호지역 확대와 30% 훼손지 복원 목표를 위해 우리는 나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것도 담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심원계곡.
심원계곡.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한국환경생태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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