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6일간의 일본 탐방

대지의 예술제 전체를 핸들링하는 사무국과 미술관 그리고 목욕탕이 있는 헤드쿼터 전시전경.
대지의 예술제 전체를 핸들링하는 사무국과 미술관 그리고 목욕탕이 있는 헤드쿼터 전시전경.

 영암의 여름은 뜨거웠다. 연일 35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는 멈추지 않았고 기찬랜드 물놀이장의 청량한 암반수를 찾아오는 발걸음도 작년보다 23% 정도를 증가해 6만 5000여분이 함께 했다. 그런 손님 중에 멀리 원주에서 온 벗이 마침 대지의 예술제 기간이니 공부겸 해서 일본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6일간의 대장정

 장장 6일간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다가 차츰 제안하는 코스가 눈에 밟혔다. 그래 떠나보자고 마음 먹고 항공권을 뒤져 보았다. 24일부터 29일까지 대한항공으로 가서 돌아오는 일정으로 표부터 예약했다. 늘 현지식에 적응하지 못해 국외를 기피하지만 왠지 이번에는 견뎌 보자는 다짐도 함께 일었다.

 캐리어 가방에 영암자활센터에서 만든 누룽지와 영암식품의 무화과 떡국 두봉지를 담았다. 현지에서 렌트를 해 이동하니 국제운전면허증도 필수라 경찰서에 들러 1년 유효한 증표를 받고 24일 새벽 광주 유스퀘어로 이동했다.

 4시간 20여분 소요되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담고 줄곧 꿈결에 빠졌다. 깨어보니 어느 사이 인천국제공항이다. 4시 05분. 재빨리 내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아뿔사 내가 당도해야 할 곳은 제2터미널인데 제1터미널의 정경이 펼쳐진다. 언제나처럼 인천공항은 나와 인연이 별로다 라는 자조섞인 탄식이 나온다. 예전에 후배들과 오키나와에 갈 적에도 얼찌나 헤매였던지 치를 떨었었다. 한데 이번에도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온 덕분에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게 되었다.

 이제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구경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 항공사의 라운지는 아직 오픈도 안한 상태인데 키오스크쪽은 가동이 된다. 나도 사전에 좌석을 예약했고 휴대폰에 E티켓이 있는지라 심드렁하게 그 모습 바라보다 눈을 조금 붙였다. 5시 05분 순환버스가 당도하여 제2터미널로 이동했다. 20여분 이상이 소요된다.

월출산의 깃대종이 남생이라 비슷한 것만 보여도 관심이 집중된다.
월출산의 깃대종이 남생이라 비슷한 것만 보여도 관심이 집중된다.

  압도되는 인천공항

 과거 싱가폴의 창이국제공항 등과 동아시아의 허브공항을 경쟁했던 인천공항답게 어머어마한 규모의 공간과 시설을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도착한 2터미널에서 이제 일행을 기다린다. 춘천과 원주에서 오는 벗들. 일곱시쯤이 되니 완성된 7명이 된다. 문화재단의 직원, 연구원, 화가, 교수 등으로 이뤄진 조합이다.

 모두 대지의 예술제라는 미술축제에 마음이 모아진 이들이다. 여권과 티켓을 들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 심사를 거쳐 면세품 매장 쪽으로 들어간다. 저마다 살것들이 있는지 9시 10분에 탑승항공편 게이트에서 보자며 흩어진다. 나도 어슬렁 거리다 담배 한보루를 사고 뒤돌아서는데 여행사를 경영하는 대학 후배가 보인다. 반가워하며 안부를 묻고 행선지를 여쭈니 백두산으로 간다고 한다. 좋은 여행 되라는 말로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 아침 겸해서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출국장에 모두 모여 일본 입국신고서를 작성한다. 이 또한 휴대폰으로 다 마감지은다. 간편한 것이 좋은데 어쩐지 쓰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오늘이 행복한 것인지 물음표가 던져진다. 니가타로 향하는 비행기는 무탈하게 하늘을 날고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나도 혹시 모를 현지 음식 부적응에 대비해 허겁지겁 식사를 들었다. 2시간 10분만에 공항에 착륙하고 이제 입국심사를 거쳐 공항 라운지에 나갔다.

일본 최고의 쌀 생산제의 명성을 지닌 니가타현 뜨락의 모습.
일본 최고의 쌀 생산제의 명성을 지닌 니가타현 뜨락의 모습.

  예술제의 중심으로

 광주공항만한 사이즈로 소담한 이곳에서 렌트카를 인계 받고 드디어 우리는 대지의 예술제의 중심 공간인 도카마치 에치고 쓰마리 스테이지로 향했다. 1인당 4만 원 정도하는 티켓을 구매하여 가슴에 걸고 지도 하나를 손에 쥐고 메인 공간을 살펴본다.

 4면이 회랑구조이고 텅빈 내부는 계단식으로 중정을 가졌는데 중정에는 물이 차 있다. 사이 사이로 다리가 있는데 이곳을 걷고자 하면 100엔을 내야 한다. 한 아이가 어머니의 보호 아래 다리를 걷다가 이내 물속으로 텀벙 들어간다.

 회랑과 회랑 사이 노출콘크리트 기둥으로 설치된 작품과 물에 투영된 그림자와 인간의 꿈틀거리는 모습에다 시원하게 드러난 하늘까지 모두가 조화스럽게 하나가 된다.

 9회째를 맞이하는 예술제는 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드러내 보이는 중요한 사례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마성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런 자장에 끌려 여기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무국의 역할을 하는 이곳은 도심 안에 있기 때문에 그저 예술가들만의 영토로 두지 않고 대중 목욕탕을 함께 구비하고 있다.

 예술제가 끝난 후나 준비되는 동안에도 공간은 주민들의 것으로 언제고 방문하여 이용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주민곁의 예술제임을 강하게 내포한 것이라 보여진다. 애초에 대지의 예술제는 니가타의 자연과 산업과 주민의 삶과 깊숙이 관여하며 시작되었다.

 지방의 위기, 인구소멸, 고령화, 빈집의 증가, 청년의 이탈 등 오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일본은 20여년전에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오늘 ‘고향사랑 기부금제’로 불리는 고향납세 같은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예술제는 또 하나의 깊은 사례를 남겨주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 예술이 지역 사회에 무엇을 공헌하는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예술제와 지역만들기”라는 요시다 다까유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6.6억엔를 투여했는데 국고 2,5억엔, 도카마쓰시 1.1억엔, 쯔난초는 0.1억엔, 협찬금 1,3억엔으로 집계했다.

쌀의 고장다움은 172종의 사케 자판기를 통해서도 드러나 보인다. 
쌀의 고장다움은 172종의 사케 자판기를 통해서도 드러나 보인다. 

  예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에 따른 작품수는 이미 축적된 것을 포함하여 378개이고, 내방객 58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 파급효과는 53.9억엔에 이른다고 하니 조용히 농사만 짓던 이 동네에 낯선 탐방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이들이 지역 곳곳에서 머물며 지출하는 비용이 생기와 활력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연구라 할 수 있겠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후배가 보내준 사전학습자료가 논문 세편이었다. 대지의 예술제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리포트였는데 “기타가와 후라” 감독이 총괄지휘하고 지역의 대지가 공간을 내어주고, 주민들이 적극 호응하며,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한껏 발산된 이 판이 가지는 내재적 가치와 외부적 효과를 담지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폐교와 빈집을 활용하여 거기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공생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기법이나, 쌀의 생산 과정에서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작품을 통해 응원하는 방식, 작품이 작가의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대지와 관람객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장에 계속 축적되며 트리엔날레 기간이 아니어도 각종의 이벤트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해 가는 방식 등이 시각예술이 지역과 어떻게 긴밀하게 관계하고 공감하는지를 보여주는 값진 선례가 된 것이다.

 이런 곳에 왔으니 나와 우리 일행의 발걸음은 한시도 여유로울 수 없었다. 작품 하나라도 더 봐야하고, 한 곳이라도 더 다녀와야 되니 말이다. 토요일 오후 3시경에 도착한 컨트롤 타워부터 시작하여 숙소가 있는 스키와 온천의 중심 유자와까지 질풍처럼 쏘다녔다.

 저녁이 되자 일행들이 한데 모여 배움여행 첫날의 소회를 들었다.

 그중 이 작가는 “공연예술은 사람을 빠르게 흥분하고 감동 시키지만 오랫동안 마음을 가져가는 것은 시각예술이예요”라는 말씀의 울림이 큰 밤이었다.

 문득, 담양에서 양곡창고를 담빛예술창고로 거듭나게 하며 어느 사이에 담양을 시각예술의 중심으로 바꿔놓은 장현우 감독이 떠올랐다. 지금은 나주시로 자리를 옮겨 고도인 나주를 예술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시다.

 사실 대지의 예술제를 찾은 나의 가장 큰 이유는 영암군이 가진 자산 중에서 월출산국립공원과 이것을 내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했다. 액자만 놓으면 그림인 것을, 조금만 들춰내면 매력물인 것을 나는 지금 월출산이 정제해놓은 물만 뽑아 먹고 사는 것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경험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길 위에서 고스란히 비춰졌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경험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길 위에서 고스란히 비춰졌다.

 여행 둘째날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고 길에 나섰다. 두 대의 렌트카가 나란히 가는데 길섶에 전통복식을 하고 가마(신사)를 멘 아이들과 그길을 인도하는 어른의 모습이 스쳐간다. 앞서가는 차를 돌리게 하고 이 마을의 전통의례를 지켜보자고 했다.

 내 마음에 지역과 연계하여 내내 떠나지 않는 씬은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의 장면이다. 주인공이 고향의 재건을 위해 마을회의에도 열심이고, 부녀모임에도 혼신을 다하다가 훌쩍 떠나 버렸다. 그리고 몇 해 후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남편이 있었다. 동네잔치가 있던 날, 아이를 어른들에게 맡기고 전통춤을 추는데 그녀의 남편은 북을 두드리고 있었던 장면이 저기 아이들의 모습으로 오마주된다.

 그렇게 지켜보는 우리에게 사케를 든 어르신과 안주를 든 어르신이 다가와 모두에게 한잔씩 돌린다. 안주는 이번에 추수한 쌀이고 소금에 찍어 먹으라한다.

 우리는 이제 대지의 예술제에 깊숙이 동화되어감을 거부하지 못하게 되었다.(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