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잔디, 또다시 ‘죽음의 땅’으로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광주 FC 훈련장 잔디가 또다시 축구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3개월 전, 3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새롭게 깔았던 천연 잔디가 배수 불량으로 인해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것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훈련장 잔디 훼손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과거의 실패, 되풀이되는 악몽
옛 염주양궁장 부지에 약 30억 원을 들여 2019년 2월 준공한 광주축구센터는 개장하자마자 배수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결국 제대로 된 훈련도 몇 번 못 한 채, 보수 공사에 돌입했다. 2020년 7월 재개장했지만, 배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시 체육회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비가 많이 내린 뒤 빗물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온이 높아지니 잔디가 썩었다. 배수 문제였기에 하자보수를 요청했다”며 “광주시에 하자보수 요청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답이 없다”고 설명한다. 이에 “광주시는 ‘천연구장은 광주FC 선수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 무책임 행정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일갈한다. (전남매일, 2020년 6월 4일 자)
새로운 희망, 그리고 또다시 절망
이후 광주축구센터는 심한 악취와 잔디 괴사로 선수들이 훈련 중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눈병을 앓기도 했다. 선수들은 인조 구장에서 ‘반쪽 훈련’을 하거나 잔디 구장을 찾아 다니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지난해 이정효 감독과 선수단이 열악한 훈련 여건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광주축구센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구단주인 강기정 시장까지 나서 훈련장 마련을 지시했고, 30억 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해 올해 6월, 최신 배수 공법을 적용한 천연 잔디 구장 2면이 완공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배수 문제가 발생하면서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시공사가 개장 행사에서 호언장담했던 ‘새로운 공법’은 어떻게 된 건가? 7월의 폭우와 폭염 속에서 잔디는 신음했고, 그나마 나은 천연 잔디 1면에서 훈련을 진행했지만, 잦은 사용으로 훼손돼 선수들이 훈련 중 심한 무릎 부상까지 입었다.
월드컵경기장도 ‘땜질’ 수준…총체적 난국
지난 7월 초, 싸이 콘서트 이후 복구 공사를 진행 중인 월드컵경기장 역시 잔디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곳곳이 패이고 잔디는 듬성듬성 나 있다. 시 체육회 관리 소관이라, 구단은 정확한 현황 파악조차 어렵다고 한다. 팬들은 오는 17일 열릴 요코하마.F 마리노스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한다. 자칫 잔디 문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다. 광주FC 선수단 역시 홈구장 잔디를 몇 번 밟아보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야 할 판이다.
물론, 잔디 관리가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K리그 구단들은 폭염과 폭우라는 ‘이상 기후‘ 속에서 잔디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지성 호우가 내린 뒤 배수가 제대로 안 되면 통기성이 저하되고, 산소가 토양 내부로 침투하지 못해 뿌리의 호흡이 어려워져 잔디가 쉽게 파헤쳐진다. 또한, 경기 전후, 메마른 잔디에 물을 주면 잔디가 타 죽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 축구장 잔디로 사용하는 ‘켄터키 블루’는 생육 적정 온도가 15~25도 씨 까지다. 그런데 지금처럼 30도 씨가 넘는 날씨라면 지표면 온도는 최소 40도 씨 이상이 된다. 올 여름과 같은 살인적 폭염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이브리드 잔디, 첨단 배수, 대류 시스템 도입과 지열 관리, 에어돔 설치를 통해 생육과 사용을 분리하는 방안 등… 해결책은 있지만, ‘돈’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천안은 되는데 왜 광주는 안 돼?” 팬들의 분노
하지만, 팬들은 답답하다. 2부 리그 천안 시티 FC 등 일부 K리그 팀들은 잔디를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광주FC 일부 팬들은 트럭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것이다. 시는 시공사와의 협의를 통한 보수 공사를 약속하지만, 시공사는 ‘입찰 조건‘과 ‘주변 환경’ 등에서 원인을 찾는다. 구단은 ‘잔디 관리 문제’가 아니라고 한 발짝 물러선다. ‘네 탓 공방’ 속에서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선수들이다.
광주FC, ‘잔디 트라우마’ 극복해야
광주FC 훈련장 잔디 훼손 문제는 경기력 저하를 넘어 구단의 이미지와 팬들의 신뢰를 해치는 심각한 문제다. 잔디는 선수들의 ‘무대’이자 팬들의 ‘즐거움’이다. 광주FC처럼 짧은 패스 중심의 빌드업 축구를 추구하는 팀일수록 논두렁 축구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 지금이라도 ‘지속 가능한 축구장으로의 대혁신’을 계획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들을 총망라해 국내외 선진 사례들을 조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전용 구장 건립 및 잔디(인프라) 관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십억 줄줄 새는 예산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없다. K리그 팬들로부터 조롱받는 광주 축구의 ‘잔디 트라우마’, 이번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김태관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