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93) 보고 싶은 OO이모님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OO이모님(2020.7.28.)
OO이모님(2020.7.28.)

 OO이모님, 건강히 잘 계신가요?

 열대야가 끝날 줄 모르는 거 같더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붑니다. 낮에는 3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서 여전히 덥지만, 그래도 습도가 낮아진 듯해서 견딜만 하네요. 가을이 시작되었나 봐요. 몸 건강히 잘 계시지요.

 못 뵈온 지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귀촌해서 장날 국숫집에서 만난 인연인데, 함께 보냈던 2년여의 그 시간들로 참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이만 같습니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이제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들이, 그 시간들 속에 쌓여진 소중한 추억들이 바로 어제 같기만 합니다. OO이모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건강히 잘 계시지요.

 지금도 믿기지가 않답니다. 그 해 가을 어느 장날, 여느 장날처럼 양어머니랑 이모님들과 함께 국수와 돼지 머리고기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는데, 양어머니께서 물으셨더랍니다. OO하고 전화돼? 얼마 전까지 전화를 드리고 통화를 했었는데요, 오늘 여기 온다고 전화드렸는데 통화가 안 되더라구요. 그렇제? 에? OO이모님께 무슨 일이 있으셔요?

 양어머니도, 이모님들도 별 말씀이 없으셨답니다. 궁금해서 양어머니께 재차 여쭈었는데, 그냥, 전화가 안 돼서 물어본 거여, 하시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눈치였어요.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이번에는 이모님들께 여쭈었는데, 이모님들도 별 말씀은 안 하시고 양어머니 눈치를 보셨답니다. 전화해도 우리도 안 되더라고. 그러시면서 말끝을 흐리시기만 하고. 저도 계속 여쭙기가 뭐해서 그 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대치장 국숫집 앞 평상에서(2020.7.28.)
대치장 국숫집 앞 평상에서(2020.7.28.)

 “백선생, 이 봉투를 받으시게.”

 귀촌해서 집 앞에 오일장이 서는 대치장(3, 8일)이 있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쉬는 날 장날이 걸리면 장터 국수집에 들러 돼지머리고기 한 접시에 ‘죽향막걸리’ 한 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먹는 국수는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도시 사람들은 담양에 오면 관방제림 첫 들머리에 있는 □□국숫집을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담양 사람들은 그곳보다 담양 시장 입구 근처에 있는 ◇◇국숫집을 더 잘 이용한다는 숨겨진 정보가 있었지요. 저희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대치장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이곳 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광고하고 다닌답니다.

 이곳에서 인심좋고 인상좋은 국숫집이모님도 알게 되고, 자연스레 양어머니와 OO이모님, △△이모님을 알게 되었지요. 장날마다 만나는 그 만남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다음 장날이 기다려지고, 장날만 되면 일찍부터 전화드려서, 이따 국숫집에서 만나시게요, 이번에는 꼭 제가 계산할랍니다, 말씀드리면, 누가 내든, 그건 또 이따 보자고, 하셨지요.

 어느 장날에는 OO이모님께서 저를 어떻게 부르면 좋겠느냐고 하셨지요. 아이고, 이모님, 제가 이모님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조카라고 하시면 되지요,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그리고 생각해 오신 듯 ‘백선생’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몇 번이나 거절해도, 내가 그렇게 불러야 마음이 편하겠다셔서, 늘 저를 ‘백선생’이라고 부르셨지요.

 어느 날 양어머니와 이모님들을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마당에서 고기 구워서 막걸리 한 잔씩 하시자고 한 날 있었잖아요. 그때 양어머니는 아침 일찍 전화를 주셔서 쌈장 만들었다고, 와서 가져가라고 하셨고, 이모님들은 여러 과일들을 가져오셨지요. 늦은 시간까지 정자 앞 마당에서 마신 술은 또 어찌 그리 달콤하던지요.

 며칠 뒤 OO이모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점심때 백선생 집에 가고 싶은디, 가도 될까, 물으셨지요. 저와 곰순이는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편하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세상에, 보행기를 끌고, 그 안에 전을 부쳐서 담아오셨어요. 솔과 파가 적당히 섞인데다 두툼해서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던지, 그리고 식었음에도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씹었을 때의 그 식감이란 어찌나 맛있던지.

 고마워서 백선생 내외한테 꼭 맛난 걸 대접하고 싶었다는 말씀에, 곰돌곰순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답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먹으면서 눈물 쬐끔 흘렸을걸요.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신데도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으시고, 품위가 있으셔서 곰돌곰순은 OO이모님을 뵐 때마다 예사스런 분이 아니구나, 생각을 했답니다. 우리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늙어가세, 하곤 했지요.

 또 어느 장날에 곰순이 맛있게 열무 김치를 담그는 집을 알게 되었는데, 맛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다음날 곰돌이 일일이 찾아 뵙고 김치를 배달했었더니, 다음 장날에 모두 맛있게 드셨다고, 양어머니랑 이모님들께서 서로 오늘은 내가 낸다고 하셨던.

 그때 OO이모님께서 그러셨죠. “내가 우리 백선생한테 봉투를 하나 줄려고 하는데, 받으실랑가?”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아니라니까, 내가 진짜 우리 백선생한테 봉투를 준다니까.” 내미시는 하얀 봉투. 반찬을 받았는데, 반찬값을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반찬값을 담은 거라고. 내가 한턱내도 되는데, 모두가 다 낸다고 할 거 같으니까, 나는 이렇게 봉투에 담아서 주고 싶다고.

어머님, 이모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사진을 찍었다. 양어머니는 사진에 나오면 안 되신다며 왼쪽 테이블로 옮기셨다(2020.7.28.).
어머님, 이모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사진을 찍었다. 양어머니는 사진에 나오면 안 되신다며 왼쪽 테이블로 옮기셨다(2020.7.28.).

 “80살이 넘도록 이렇게 노래해 본 건 처음이제.”

 그리고 드디어, 2020년 7월 28일 장날이 되었습니다. 그 날도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 거 마냥 오후에 양어머니랑 이모님들이랑 국숫집 앞 평상에 모였지요. 막걸리 한 병, 또 한 병.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날은 어두워지고, 국숫집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떠나서 우리도 안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었지요.

 그때 퇴근한 곰순이가 합류했는데 끊어질 거 같은 분위기가 새로 합류한 곰순이 덕에 안에서도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막걸리와 이야기가 끝나지를 않았지요. 그때 갑자기 OO이모님께서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던 거 기억하세요? 오른손의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시면서 “사~공~의~뱃~노~래 ~”하고 부르시는데, 음정과 박자가 어찌나 잘 맞으시던지, 거기다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는 데다 흥이 절로 나게 만드셨더라는.

 모두가 함께 따라 불렀는데, 한 곡이 끝나니 국숫집 이모님이 이어 받으시고, 끝나니 양어머니가 받으시고, 끝나니 △△이모님이 받으시고, 결국 저도 곰순이도 이어받고, 그래도 또 돌고 돌면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랫소리. “해~저~문 소~양~강~에~”,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가-랑-잎-이-휘날-리는-”, “불러봐도-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앉아서 노래하는 사람, 일어나서 춤을 추는 사람, 그렇게 노랫소리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때 갑자기 국숫집 이모님이 일어나서 누가 볼세라 창문을 닫으시고 출입문도 닫으셨지요. 이웃에 시끄러워서 그러시는 거 치고는 너무 조심스러우신 거 같아, 제가, 저희가 좀 시끄럽죠, 했던 거 같아요.

 그때 양어머님과 이모님들이 모두 그러셨지요. 80이 넘도록 이렇게 모여서 노래를 한 건 처음이라고. 진짜요? 어떻게, 여자들이 이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해? 아따, 이모님, 그게 왜요, 그게 어때서요, 했더니, 모두가, 그게 아니라니까, 진짜로 여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모여서 노래를 했겄어. 오늘이 진짜 처음이라니까. 세상 뒤집어지제. 그러제.

 술도 좀 들어가서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걸 느끼던 곰돌이 겉으로는 웃으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 진짜 많이 놀랐답니다. 세상에, 지금 이 연세에도 이렇게 세상을 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까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 오셨는지 알 것도 같고, 한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던지,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는 또 얼마나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쳐 올라오던지. 얼른 탁자의 막걸리잔을 들어 마셨지만, 눈물 한 방울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답니다.

 보고 싶은 OO이모님! 그 시간들이 꿈만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걸, 하루하루 갈수록 새록새록 느끼고 있답니다. 다른 분들이야 장날에도, 오며가며 만나기도 하는데요, 유독 OO이모님이 그립네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나중에 양어머니께 멀리 사는 자녀분이 모신다는 말씀을 들었답니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도 바꾼 거 같다고. 장날에 가끔 OO이모님 얘기를 한답니다. 모두가, 잘 있겄제, 잘 있을 거여, 하신답니다. 어디에 계시든 건강히 잘 계시면 되는 거죠. 지나는 추억은 추억대로, 추억을 추억하는 이 시간은 이 시간대로, 그리고 이모님이 계시는 그곳의 시간만큼 저 또한 이곳에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겠지요.

 OO이모님, 늘 평안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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