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중국차(茶)] (53) 발효차가 보여주는 주수현상(走水現象)
물이 가지에서 엽맥, 다시 잎으로 고루 퍼져나가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다투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여 만물을 이롭게 한다”라는 뜻인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구절과 같이 오룡차 제다에서 물이 가지에서 엽맥으로 다시 잎으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역할로 만물을 이롭게 한다. 오룡차 제다에서 상선약수의 명구가 연상되는 과정이 있다.
오룡차의 제다를 설명할 적에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수현상(走水現象)이다. 앞서도 이야기하였듯이 기본적으로 ‘성숙한 시기에 채엽하여 쓰고 떫은 맛이 강한’ 오룡차의 찻잎에서 단맛을 내주려면 ‘복잡하고도 오랜 시간의 제다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오룡차는 찻잎의 줄기와 가지를 분리해 내지 않고, 모차(毛茶)가 완성될 때까지 함께한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오룡차의 초벌 제다에서는 차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주수현상을 위한 것이고, 주수현상의 여러 작용 가운데 우리의 혀에서 느끼는 단맛은 찻잎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함께 가지와 줄기의 성분인 섬유소(纖維素)가 복합다당(複合多糖)-이당(二糖)-단당(單糖)의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혀에서 느끼는 단맛은 이당류 단당류이다. 이러한 단맛의 원천인 주수현상의 선결 조건으로는 가지나 줄기가 부러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부러진 상태라면 물이 올라갈 수가 없으니 주수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주수현상은 차 대부분에 적용되고, 그 가운데서 변방으로 가던 흑차에서도 자주 볼 수가 있다. 변방의 유목민들에게 공급되는 흑차는 그 비용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등급이 매우 낮은 찻잎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차나무 가지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는 가지에서 나오는 주수현상이 의외로 차의 맛을 좋게 해 주는 이점을 가져다줬기 때문에 미관상의 이유로 그 가지를 제거할 이유가 없었다.
혹자는 어린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에 차나무 줄기를 집어넣으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어린잎은 일단 빛깔부터가 황색을 띠고 있어, 보통의 찻잎이 엽록소의 증가로 녹색을 띠고 있는 것과 다르다. 그에 따라 엽록소가 가득한 차에서 나오는 쓰고 떫은 고삽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당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굳이 차나무 가지를 넣어 미관상 좋지 않게 보일 뿐인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우를 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수현상은 가지와 줄기에 들어있는 수분이 찻잎의 엽맥을 따라 올라가다가 잎으로 고루 퍼지는 것을 말한다. 이를 과정별로 세분화해서 보자면,
▲위조 과정에서의 주수: 위조는 선엽에서 수분을 상실하는 과정이고, 오룡차의 향기 유형을 형성과 함께 두터운 맛을 내는 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찻잎에서 수분은 수분이 많은 부위 즉 줄기나 엽맥에서 수분이 적은 쪽으로 평형을 이룰 때까지 움직인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세포의 산화 반응이 촉진되어 선엽에서는 화향(花香)이 나기 시작한다.
▲주청 과정에서의 주수: 줄기와 엽맥 속의 수분을 잎으로의 수송을 가속 시킨다. 줄기와 주맥의 수분은 찻잎 속의 세포로 스며들어 보충된다. 이에 따라 찻잎의 광택이 회복되고, 풀 비린내가 뚜렷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며, 속칭 환양(還陽)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하여 찻잎 속의 카테킨과 아미노산은 변화를 일으켜 찻잎의 맛과 향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
▲모차에서 가지를 제거한 이후의 주수: 모차의 제다까지 달고 있었던 차나무 가지를 제거한 이후에 진행하는 초벌 홍배를 속칭하여 “주수배(走水焙)”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고온으로 효소를 없애주어 찻잎의 발효를 완전히 멈추게 만들어 주고, 뒤이어 이어질 ☞탄배(炭焙) 주수 과정에서 향기는 물에 의해 흩어지고, 맛은 물에 의해 나타난다.
탄배는 이번 회에 설명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길기에 다음 회로 넘기겠다.
류광일(덕생연차관 원장)
류광일 원장은 어려서 읽은 이백의 시를 계기로 중국문화에 심취했다.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덕생연차관 주덕생 선생을 만나 2014년 귀국 때까지 차를 사사받았다. 2012년 중국다예사 자격을, 2013년 고급차엽심평사 자격을 취득했다. 담양 창평면에 중국차 전문 덕생연차관(담양군 창평면 창평현로 777-82 102호)을 열고 다향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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