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3일 “수도권·영남권·호남권·충청권 4개 지역을 선정, 4개 강소국 프로젝트를 통해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부산 동서대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 주관 ‘서울-부산시 특별대담회’ 자리였다.
오 시장은 미국, 싱가포르, 아일랜드, 두바이 등을 예로 들며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지역이 재량껏 전략을 펼칠 때 경제적으로 더 부강해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전국을 4개 초광역권으로 재편, 각 도시가 지역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해 한국 사회를 ‘퀀텀 점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박형준 부산시장도 이날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인 서울’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용어로 자리 잡는 동안 기업과 자본, 인재는 서울로 몰리고 지역은 상대적으로 퇴락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부동산 격차 확대, 교육 불평등 확대, 청년층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 등이 뒤따랐습니다.”
박 시장은 새로운 국가경영 모델로, 함께 살고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의 ‘공진국가’를 제시했다. 수도권과 지역이 경쟁 관계 속에서 서로의 진화를 촉진해야 균형발전이 이뤄진다는 논리다.
지방 거점을 성장시켜 지역 경쟁력을 살리자는 오 시장의 주장과도 맥락이 같다. 고려대 동문인 두 시장이 수도권 일극 문제에 공감하고 지방분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건 어쨌든 반길 일이다.
그러나 오 시장은 지난달 9일엔 이명박 정부 이후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청년, 신혼부부 등 미래 세대를 위해 주택 공급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 이후 그린벨트 후보지들의 부동산은 들썩이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가 서울 과밀화를 부추겨 지역 균형 발전에 저해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오 시장이 ‘서울 개발’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상충되는 주장을 펴는 이유는 잠재적 대권주자인 그의 위상과 관련 있을 것이다.
이 정권은 인수위 당시 ‘지역균형발전특위’까지 만든 그 정부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초기부터 수도권 대학 증원에 이어 수도권 공장 신증설까지 허용한 바 있다.
지역 균형 정책은 지역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생존에 직결된 문제임에도 ‘수도권 초집중과 지역소멸 가속화 정책을 폐기하라’는 비수도권 목소리는 오늘도 허공을 떠돌고 있다.
# 그래도 부산은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 엑스포 유치 실패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을 방문, 가덕도신공항 등의 확실한 재추진을 약속했다. 부산시민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격려 간담회’ 자리였다.
윤 대통령의 특이 발언은 그 행사에서 나왔다.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은 부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산을 축으로 영호남 남부권 발전을 추진하고 전국 균형발전을 통한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한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수도이전 드라이브 이후 모든 정부에서 각종 균형발전 정책을 발표했으나, ‘부산을 축으로 영호남 남부권을 발전시키자’는 주장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처음 듣는 이론이다.
자칫 부산이 발전하면 광주가 발전하고 영남이 발전하면 호남도 덩달아 발전한다는 말씀으로도 들리는데, 이게 정말 현실화되면 학계부터 놀라고 흥분할 것 같다.
# 광주광역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과의 정책협약, 국민의힘과의 정책전달식을 통해 지방정부-국회-정당 간 협력 시스템을 마련했다.
강기정 시장은 “민주당의 ‘기본사회 모델’과 ‘에너지 대전환’ 등 당의 새로운 사회 비전을 펼치는데 광주가 실증의 공간이 되겠다”며 “광주가 민주주의의 표준이 됐듯이 기본사회와 에너지정책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나아가 ‘팀광주 국회의원 및 명예시민 위촉식’을 열어 위촉패와 명예시민증을 전달했다. 6명의 여야 ‘팀광주 의원’은 모두 광주 지역구 의원이 없는 국방위와 환경노동위 소속이다.
물론 민·군 통합공항 이전, 대한민국 제1호 노사상생형 모델인 ‘광주형일자리’ 고도화, 정부 계획보다 5년 빠른 2045탄소중립 이행 등 현안 추진을 위한 자구책이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시도된 이번 행사는 국회 경험이 있는 강 시장의 아이디어다. 행사장에서 마주친 강 시장은 “우린 정말 죽겠는데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고…”라며 최근의 정국 상황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틀간 진행된 행사들은 충분히 의미있고 참신했으나 마땅히 기댈 곳 없는 광주시의 안간힘, 필사적 몸부림이라는 측면도 들여다봐야 한다. 특정당 일색인 광주는 ‘용산’이나 중앙정부에 깊은 얘기를 나눌 변변한 창구가 없다. 하다못해 손잡고 함께 울기라도 해 줄 ‘실세’ 한 명 찾기 힘들다.
오세훈 박형준과 대비되는 강기정의 안쓰럽기까지 한 이틀간의 동분서주, 고군분투 세일즈 행보가 여야 정치권을 움직여 어떻게든 결실을 좀 맺었으면 좋겠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