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멜 트레고닝 ‘작은 생각’
더운 날은 가고 더위로 인해 사람이 죽는 일도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희망이라도 가져보려는 차에 의료 파업과 응급실 대란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제는 아마 이 심란함이 끝나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닥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 그것은 당연한 사실관계가 되고, 바로 절망이 된다. 이 모든 문제와 힘겨움들이 끝나지 않을거고 난 무엇도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 모든 사람들이 그럴거고 답은 없을 거라는 속상함.
멜 트레고닝의 <작은 생각>(2018, 더모스트북)은 이러한 무력감과 아픔,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지 못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숀 탠 작가의 <이름 없는 나라에서>와 몇몇 그림책처럼 작은 생각도 대사가 없이 그림으로만 빼곡하게 채운 그림책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외톨이다. 학급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끼어들어보려 했다가도 거부당해 얼굴이 붉어진다. 쪽지시험에서도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뒤쳐진 점수를 받는다. 집에 돌아오면 자기보다 훨씬 잘난, 최우수상을 잔뜩 받은 누나가 있다. 주인공의 힘겨움과 외로움, 두려움이나 자괴감 같은 것들은 그림자 속에서 피라냐같은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주인공의 몸을 파먹는다. 주인공의 몸은 마치 오랜 세월 바람이나 모래에 침식된 거대한 암석처럼 갈라지고 떨어진다. 그 표현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 몸이 떨어져나가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나와 부모님은 의기소침한 주인공을 돕는다. 숙제를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잠자기 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인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그 모든 것은 와닿지 않는 속 빈 말들일 뿐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물어뜯는 괴물들만이 진짜고, 자신의 초라함만이 실존하는 것이 된다.
그의 몸은 자꾸만 자꾸만 부식되어가고,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만 같다. 당연하다. 주인공이 그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 붕대를 감고 감추었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위태롭게, 마치 금방이라도 몸 전체가 부서져 없어질 것처럼 틈이 갈라질 뿐이다.
완전히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누나가 찾아온다. 잠에 취해 있던 밤중이다. 용기를 내 자신의 팔에 갈라진 부분을 보여주니, 누나가 자신의 갈라진 부분들도 보여준다. 그제야 주인공은 자신 아닌 다른 이들도 이러한 두려움과 외로움, 고통을 겪으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로 돌아가니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각자의 균열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끝에, 모두 힘드니 나도 힘내자 라는 방식으로 해결되지만 <작은 생각>의 이야기는 결국 ‘누나’가 주인공에게 먼저 자신의 상처를 내어보인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 사실을 알고 주인공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 덕분에 부모님에게도 침식된 몸을 드러내고, 친구에게도 먼저 다가가 괜찮느냐고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 아프다는 사실을 알면 나의 아픔도 내어놓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이것은 타인의 아픔을 알지 못하면 나의 외로움과 허망함이 그저 나 혼자만의 것으로 내 영혼을 짓누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대의 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이야기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연대라 함은 너무도 거창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언가를 내어놓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대란 꼭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외로움과 나의 아픔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용기있게 내어놓는 것이 연대다. 남들이 나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돕는 것이 연대다. 작은 생각들이 모여 큰 생각이 되고, 큰 생각들이 연대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은 작은 생각이 없으면 가능하지조차 않다.
그러니 우리는 거창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작은 생각과 작은 일에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진심을 말하는 법을, 두려움을 내어놓는 법을, 외롭다고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 목소리들이 모여 우리는 홀로 불안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결집될 수 있다.
무엇도 나를, 우리를, 우리의 앞길을 보장해주지 않을 것만 같은 시대에 할 수 있는 말이 참으로 기초적인 것들 뿐이라는 사실이 절망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조차 허상으로 멀어져버리고만 말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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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